오귀스탱 루이 코시가 교수직을 버리고 망명한 이유
코시는 1830년 충성 서약을 거부하고 망명했다
유럽 최고의 수학자가 어느 날 책상을 비우고 외국행 마차에 올랐어요.
새 왕에게 머리를 숙일 수 없다는 이유 하나 때문이었죠.
1830년, 프랑스에서 7월 혁명이 일어났어요.
시민들이 왕을 몰아내고 새 국왕 루이 필리프를 세웠고, 정부는 모든 공직자에게 새 왕에 대한 충성 서약을 요구했어요.
오늘날로 치면, 회사가 인수합병된 후 새 대표가 임원 전원에게 서명을 요구한 것과 같아요.
대부분은 서명했어요.
하지만 오귀스탱 루이 코시는 펜을 내려놓았어요.
그 결과로 잃은 건 에콜 폴리테크니크 교수직이었는데, 이 학교는 당시 유럽 수학의 심장부나 다름없는 곳이었죠.
코시는 이탈리아 토리노로 떠났고, 이후 프라하까지 갔어요.
거기서 폐위된 부르봉 왕가의 후계자인 보르도 공작의 가정교사를 맡았어요.
그렇게 8년간 프랑스를 떠나 있었어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