존 내시가 약 없이 이긴 조현병 30년

존 내시의 박사논문은 단 28쪽이었다
1950년, 프린스턴 대학원생 존 내시는 박사논문을 28쪽으로 제출했어요.
보통 박사논문이 200쪽을 훌쩍 넘는다는 걸 생각하면, 대학 기말시험에서 답안지 한 장만 내고 만점을 받은 것과 같은 일이에요.
이 논문에 담긴 핵심 개념이 바로 내시 균형이에요.
게임이론이란 여러 사람이 서로의 선택을 예측하며 행동할 때 어떤 결과가 나오는지를 다루는 수학인데, 내시 균형은 그 안에서 "모든 참가자가 자기 전략을 바꿀 이유가 없는 상태"를 말해요.
가위바위보에서 한 쪽만 계속 바위를 낸다면 상대는 보를 낼 것이고, 그러면 바위 쪽도 전략을 바꿔야 하죠. 아무도 바꿀 이유가 없는 균형점을 수학으로 증명한 게 이 28쪽 안에 들어 있었어요.
그리고 이 논문이 44년 뒤 그에게 노벨경제학상을 안겨줍니다.
천재 소리를 들으며 시작한 20대였어요.
하지만 그다음에 벌어진 일은, 아무도 예상하지 못했어요.

존 내시는 프린스턴에서 유령이라 불렸다
30대 초반, 내시에게 조현병 진단이 내려졌어요.
조현병은 현실과 환각을 구분하기 어려워지는 정신질환이에요. 없는 소리가 들리고, 없는 사람이 보이고, 자신을 향한 음모가 존재한다고 느끼는 상태가 이어져요.
그 뒤 1960~70년대 내내, 내시는 프린스턴 캠퍼스를 말없이 배회했어요.
빈 강의실에 들어가 칠판에 알 수 없는 기호와 메시지를 써 놓고 사라졌어요.
학생들은 그를 "파인 홀의 유령(Phantom of Fine Hall)"이라고 불렀는데, 파인 홀은 수학과 건물 이름이에요.
같은 회사에서 임원까지 지낸 사람이 어느 날부터 복도에서 혼잣말을 하며 서류에 낙서하는 사람으로 마주쳐지는 것과 비슷한 광경이에요.
한때 세계 최고 수준의 수학자였던 내시가, 이제 동료들에게는 칠판 낙서로만 존재하는 사람이 돼 있었어요.
그리고 그 상태가 수십 년간 이어졌어요.

존 내시는 의사가 준 약을 30년간 거부했다
내시가 더 놀라운 건, 약을 안 먹었다는 게 아니에요.
약 없이 스스로 회복했다는 거예요.
입원 치료 중 받은 항정신병 약물이 사고력을 둔하게 만든다고 느낀 내시는, 퇴원 후 복용을 끊었어요.
의학계는 약 없이 조현병에서 회복한 사례를 거의 인정하지 않아요. 그런데 내시는 그걸 해냈어요.
그가 나중에 직접 설명한 방식은 이래요.
환청이 들릴 때마다 "이건 내 뇌가 만들어낸 가짜다"라고 의식적으로 판단하고 무시하는 훈련을 30년간 반복했다는 거예요.
꺼지지 않는 라디오 소리를 매번 "이건 진짜 소리가 아니다"라고 자신에게 알려주며 수십 년을 사는 일이에요.
그는 이렇게 표현했어요.
"나는 망상을 지적으로 거부하는 법을 배웠어요. 마치 미신을 거부하듯이요."
의학적으로 매우 드문 자력 회복 사례로 기록된 이유예요.

존 내시 부부는 아벨상 받고 나흘 뒤 죽었다
2015년 5월 19일, 내시는 노르웨이에서 아벨상을 받았어요.
아벨상은 수학 분야에서 노벨상이 없기 때문에 만들어진 최고 영예로, 수학자가 받을 수 있는 가장 큰 상이에요.
1994년 노벨경제학상에 이어, 수학자로서 마지막으로 인정받는 순간이었어요.
그리고 나흘 뒤인 5월 23일, 뉴저지 공항에서 집으로 돌아오던 택시가 고속도로에서 다른 차와 충돌했어요.
내시와 그의 아내 앨리샤가 함께 사망했어요.
앨리샤는 조현병 증세가 가장 심하던 시절에도 내시 곁을 떠나지 않은 사람이에요.
이혼했다가 다시 재결합할 만큼, 그의 회복을 평생 옆에서 지켜봤어요.
가장 큰 인정을 받은 직후, 둘이 함께였어요.
내시가 평생 연구한 게임이론은 합리적인 선택자들이 만들어내는 결과를 예측하는 수학이에요.
하지만 그의 마지막 나흘은, 어떤 수식으로도 예측할 수 없는 것이었어요.
인생이 게임이라면, 이건 어떤 균형이었을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