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잔 차가 잔을 들고 이미 깨졌다 한 날

아잔 차는 멀쩡한 잔을 깨졌다고 가르쳤다
아잔 차는 손에 든 유리잔을 들어 보이며 말했어요. "이 잔은 나에게 이미 깨져 있어요."
잔은 멀쩡했습니다. 금 하나 없었어요. 그런데도 그는 깨진 것이라고 했습니다.
이게 말장난처럼 들릴 수 있어요. 하지만 새 스마트폰을 사자마자 "언젠가 이거 깨지겠지"라고 생각해본 적 있나요? 그 마음으로 쓰면, 실제로 떨어뜨렸을 때 충격이 훨씬 작아집니다.
아잔 차가 가르친 건 정확히 그 관점이에요. 불교에서는 이것을 무상(아닛짜)이라고 불러요. 모든 것은 언젠가 변하고 사라진다는 원칙입니다.
대부분의 스승은 이것을 말로 설명했습니다. 하지만 아잔 차는 손에 든 유리잔을 들어올려 보여줬어요.
멀쩡한 물건을 이미 깨진 것으로 본다는 게 비관론처럼 들릴 수 있어요. 그런데 실제로는 반대예요. 언젠가 사라진다는 걸 알기 때문에, 지금 이 순간이 오히려 소중해지는 거거든요.

그는 화장터 곁에서 잠을 자며 떠돌았다
아잔 차는 마을 사람들이 가장 피하는 자리에 자리를 폈어요. 시신을 태우고 재가 식어가는 화장터 옆이었습니다.
1939년, 청년 아잔 차는 태국 동북부의 숲을 걷고 또 걸었어요. 이 수행을 두돈(tudong)이라고 합니다. 아무것도 소유하지 않고, 정처 없이 숲을 떠도는 수행이에요.
오늘날로 치면 카드도, 예약도, 목적지도 없이 배낭 하나만 메고 몇 년을 걷는 겁니다. 그것만으로도 이미 극단적이에요.
그런데 두돈 중에서도 가장 무서운 수행이 따로 있었습니다. 화장터 옆에서 자는 것이었어요. 태국 시골에서 화장터는 밤에 절대 가지 않는 곳입니다.
아잔 차는 그 자리를 일부러 골랐어요. 이것이 태국 숲속 전통(Forest Tradition)의 핵심입니다. 화려한 사원 대신 숲에서 가장 원초적인 두려움과 정면으로 마주하는 수행 방식이에요.
무서운 영화관 맨 앞 자리에 일부러 앉는 사람과 비슷하지만, 강도는 비교가 안 됩니다. 사람이 타고 남은 재가 식어가는 옆에서, 밤새 죽음을 생각하는 거니까요.

그는 영어를 모른 채 서양인 제자들을 길렀다
아잔 차는 영어를 한 마디도 몰랐어요. 그런데도 옥스퍼드와 케임브리지 출신들이 그의 발치에 앉으러 왔습니다.
1967년, 미국인 청년 로버트 잭만이 태국 동북부의 작은 숲 속 사찰을 찾아왔어요. 이미 2년간 태국어로 불교를 공부한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아잔 차 앞에 무릎을 꿇었어요.
아잔 차는 시골 출신이었습니다. 영어는 물론, 표준 태국어도 유창하지 않았어요. 그런데도 그는 이 미국인 청년을 첫 서양인 제자로 받아들였습니다.
이 청년이 훗날 아잔 수메도가 됩니다. 아잔 차의 가르침을 서양에 전한 가장 중요한 인물이에요. 그 후 영국, 호주, 유럽에서 출가자들이 몰려들기 시작했습니다.
결국 1975년, 아잔 차는 외국인 수도승만을 위한 사찰을 따로 세웠어요. 이름은 와트 파 나나차트(Wat Pah Nanachat), 직역하면 '국제숲속사찰'입니다.
아잔 수메도는 훗날 영국에 아마라바티 사찰을 세웠고, 또 다른 제자는 호주에 보디나야나 사찰을 세웠어요. 오늘날 서구 불교 수행의 두 중심지입니다.
한국말 한 마디 못하는 외국인 노인에게 무릎 꿇으러 가는 청년을 상상해보세요. 그 노인이 시골 태국어밖에 못하는 무명 승려였는데, 결국 서구 불교의 출발점이 된 거예요.

10년간 말을 잃은 그가 더 큰 스승이 됐다
1981년, 아잔 차의 입은 닫혔습니다. 그리고 그때부터 그의 사찰은 더 빠르게 자랐어요.
그해 뇌졸중으로 쓰러진 아잔 차는 회복하지 못했어요. 말을 완전히 잃었습니다. 1992년 세상을 떠날 때까지, 약 11년 동안 단 한 마디도 하지 못한 채 침대에 누워 지냈어요.
그런데 이상한 일이 벌어졌습니다. 제자들과 순례자들이 매일 그의 방으로 모여들었어요. 아무 말도 없는 병실 앞에서, 사람들은 침묵 속에 앉았습니다.
명강의로 유명한 교수가 목소리를 잃었는데, 텅 빈 강의실 앞에서 학생들이 매일 묵묵히 앉아 있는 것과 같았어요.
그동안 그가 평생 가르쳤던 것이 그의 몸을 통해 직접 시연됐습니다. 불교 용어로 아낫타(무아)라고 해요. "이 몸은 내 것이 아니다", 즉 내 몸도 내 마음대로 할 수 없다는 가르침입니다.
아잔 차는 평생 이것을 말로 가르쳤어요. 뇌졸중 이후 11년 동안은, 몸으로 보여줬습니다.
그의 사찰 와트 파 퐁과 분원들은 그 11년 사이에 오히려 더 빠르게 늘어났어요. 가르침이 멈춘 게 아니었습니다. 형태가 바뀐 거였어요.
말이 없어도 가르침은 이어질 수 있을까요? 어쩌면, 말이 없었기 때문에 가르침이 더 깊어진 게 아닐까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