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마스 쿤: 물리학자가 아리스토텔레스 앞에서 과학을 다시 쓴 날

1947년 여름, 그는 아리스토텔레스 앞에서 멈췄다
쿤이 아리스토텔레스를 이해하기 시작한 그 순간, 과학이 진보한다는 그의 믿음도 같이 무너졌어요.
1947년 여름, 하버드 물리학 박사과정 25세의 토머스 쿤은 당혹스러운 숙제를 받아 든 상태였어요.
총장 코넌트가 이공계가 아닌 학생들을 위한 과학사 강의를 준비해달라고 부탁한 거예요.
그는 고대 물리학 텍스트를 뒤적이다가 아리스토텔레스의 『자연학』을 펼쳤어요.
아리스토텔레스의 『자연학』은 운동과 물체를 다룬 고대 물리학 저작이에요.
쿤이 읽기 시작하면서 든 첫 반응은 이거였어요.
"이 사람, 왜 이렇게 틀린 얘기만 하는 거야?"
아리스토텔레스는 무거운 물체가 더 빨리 떨어진다고 했어요.
돌과 깃털이 같은 속도로 떨어진다는 뉴턴의 세계관에서 보면 명백히 틀린 말이에요.
쿤은 처음에 이 체계를 그냥 "틀린 물리학"으로 넘기려 했어요.
그런데 책을 덮으려던 순간, 뭔가 이상했어요.
"왜 2천 년 동안 그토록 많은 사람이 이 바보 같은 이론을 믿었을까?"
이 질문이 손을 멈추게 했어요.
쿤은 다시 읽었어요.
그러다 갑자기 깨달았어요.
아리스토텔레스는 틀린 게 아니라, 뉴턴과는 완전히 다른 출발점에서 세계를 보고 있었던 거예요.
비유하자면 이래요.
외국어를 처음 배울 때 "이 문법은 엉터리야"라고 생각했는데, 알고 보니 그 언어는 원래부터 그런 규칙이 있는 거였던 거예요.
아리스토텔레스에게 '운동'은 위치 변화가 아니라 잠재성이 현실로 실현되는 과정이었어요.
이 깨달음이 쿤을 물리학에서 과학철학으로 끌어당겼어요.
"왜 아리스토텔레스는 틀렸는가"가 아니라 "왜 우리는 그를 틀렸다고 당연히 생각하는가"라는 질문이 그를 사로잡았어요.
그 답을 찾는 데 15년이 걸렸어요.

1962년, 논리실증주의 백과사전이 자기 무덤을 출판했다
쿤의 책이 실린 자리는, 정확히 그 책이 반박하려던 학파의 기관지였어요.
1962년, 시카고대 출판부가 야심 찬 기획을 진행하고 있었어요.
과학이 차곡차곡 쌓여 하나의 진리로 수렴한다는 걸 증명하겠다는 '통합과학 국제백과사전'이에요.
오토 노이라트, 루돌프 카르납 같은 논리실증주의 학자들이 기획한 시리즈였어요.
논리실증주의는 쉽게 말하면 이런 믿음이에요.
"과학적 지식은 벽돌처럼 하나씩 쌓인다. 오래 쌓이면 진리의 건물이 완성된다."
이 시리즈는 그 건물의 조감도를 그리려 했어요.
그런데 그 시리즈의 제2권 2호에 끼워 들어간 글이 있었어요.
바로 쿤의 『과학혁명의 구조』예요.
이 책의 핵심 주장은 이거예요. 과학은 쌓이는 게 아니라, 혁명을 통해 완전히 뒤집힌다.
보수 정당 기관지에 급진 선언문이 실린 꼴이에요.
성당 회보에 무신론 에세이가 끼워 들어간 거예요.
편집자들이 원고를 제대로 읽었는지 의심스러울 정도예요.
쿤은 책에서 이렇게 썼어요.
"정상과학의 시기에 과학자들은 기존 이론의 틀 안에서 퍼즐을 푼다. 그러다 그 틀로 설명이 안 되는 이상 현상이 쌓이면 위기가 온다. 그리고 결국 이전 틀 전체가 새로운 틀로 교체된다."
이걸 그는 패러다임 전환이라고 불렀어요.
코페르니쿠스가 지구 중심 우주를 태양 중심으로 바꾼 것, 뉴턴이 아리스토텔레스의 운동 개념을 갈아엎은 것이 그 사례예요.
이때 이전 패러다임과 새 패러다임은 단순히 업그레이드 관계가 아니에요.
세계를 보는 방식 자체가 달라지는 거예요.
그 백과사전 시리즈는 결국 쿤의 책 때문에 가장 유명해졌어요.
과학의 누적적 진보를 증명하려 만든 기획이, 그 주장을 정면으로 반박한 책으로 기억되는 아이러니예요.

'패러다임'이 세상을 덮자 그는 그 단어를 버리려 했다
쿤은 자기 책에서 가장 유명한 단어를 빼고 다시 쓰고 싶어 했어요.
책이 나오고 나서 무슨 일이 벌어졌냐면, 패러다임(paradigm)이라는 단어가 걷잡을 수 없이 퍼지기 시작했어요.
경영 컨설턴트들이 "패러다임 전환"을 외치고, 마케터들이 "새로운 패러다임"을 팔고, 종교인들이 "영성의 패러다임"을 얘기하기 시작했어요.
20세기 후반 가장 유행한 학술어 중 하나가 된 거예요.
그런데 쿤은 이게 싫었어요.
1970년 2판 후기에서 그는 충격적인 고백을 해요.
"나는 이 책 한 권에서 패러다임을 최소 22가지 다른 의미로 썼다."
자기 책에서 핵심 단어를 22가지 다른 뜻으로 썼다는 게 무슨 의미냐면요.
독자마다 각자 다른 의미로 이해해도 전부 "맞는 독해"가 된다는 거예요.
단어가 너무 넓어진 거예요.
그래서 쿤은 대체어를 제안했어요.
'전문 분야 매트릭스(disciplinary matrix)'.
특정 과학자 공동체가 공유하는 이론, 방법, 가치의 묶음을 뜻하는 더 정확한 말이에요.
아무도 따라오지 않았어요.
'패러다임'은 이미 언어에 박혀버린 뒤였어요.
창작자가 자신이 만든 밈을 되돌리려 했지만 실패한 거예요.
쿤이 아이러니한 건 이거예요.
그는 과학적 언어가 패러다임에 따라 달라진다고 주장한 사람이에요.
그런데 정작 자기 언어는 자기가 통제하지 못했어요.

1972년 프린스턴, 재떨이가 대학원생의 얼굴을 스쳤다
과학혁명을 설명한 철학자는, 자기 연구실에서 유리 재떨이를 날렸어요.
프린스턴대에 재직하던 시기, 쿤의 지도 학생 중에 에롤 모리스라는 이름의 청년이 있었어요.
모리스는 나중에 다큐멘터리 영화 『가늘고 푸른 선』으로 억울하게 감옥에 간 사람의 무죄를 밝혀내 아카데미 후보에 오른 감독이 돼요.
하지만 그 전에 먼저 쿤과 맞닥뜨렸어요.
어느 날 모리스와 쿤이 격렬하게 논쟁을 벌였어요.
쿤의 이론에 대한 철학적 반론이었는데, 논쟁이 격해지면서 쿤이 유리 재떨이를 모리스에게 집어 던졌다고 해요.
모리스는 이 일을 여러 차례 공개적으로 증언했어요.
쿤이 직접 쓴 건 이거예요.
서로 다른 패러다임을 가진 과학자들도 서로의 세계관을 '이해'할 수 있어야 한다고요.
그런데 자신의 이론에 대한 비판 앞에서는 대화를 멈추고 물건을 집어 던진 거예요.
온라인에서 "열린 토론이 중요합니다"를 강조하던 사람이 반론 댓글이 달리자 차단 버튼부터 누르는 장면이랑 비슷해요.
모리스는 그 일 이후 결국 학계를 떠나 영화감독이 됐어요.
재떨이 하나가 진로를 바꿔버린 셈이에요.
쿤은 1996년, 폐암으로 세상을 떠났어요.
그가 남긴 단 한 권의 책은 20세기 학문 세계를 가로지르며 경계를 허물었어요.
하지만 정작 그 책을 쓴 사람 자신은, 자기 단어 하나 회수하지 못했고, 자기 연구실에서 대화 대신 유리를 던졌어요.
어쩌면 그게 쿤의 주장을 가장 잘 보여주는 증거일 수도 있어요.
새로운 패러다임을 만든 사람도, 결국 자기 패러다임의 안쪽에서 살아가는 거라는 거요.
당신은 지금 어떤 패러다임 안에 있나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