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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에는 덕이면 충분하다안티스테네스
1660년대 일본 무사들은 자신의 직업이 이미 사라졌다는 사실을 받아들여야 했어요.
전쟁이 없었거든요.
도쿠가와 막부가 일본을 통일한 뒤 50년이 넘도록 칼 쓸 일이 없었어요.
원래 무사는 전쟁터에서 싸우고 주군을 지키는 존재였는데, 그 전쟁터 자체가 사라진 거예요.
오늘날로 치면 이런 상황이에요.
아무도 다치지 않는 공장에서 매일 안전모를 쓰고 앉아 있는 소방관이 "내가 왜 여기 있지?"를 묻는 것처럼요.
무사들은 농민 위에 군림하는 특권층처럼 보였지만, 실제로는 상인·장인보다 경제적으로 빈곤한 경우도 많았어요.
야마가 소코는 바로 이 시대를 살았어요.
그는 당시 막부의 공식 학파인 하야시 가문 주자학에서 인재로 꼽히는 엘리트였어요.
그런데 그 엘리트가 길거리에서 무사들을 보고 충격을 받아요.
"무사는 왜 존재해야 하는가."
이 질문이 야마가 소코의 평생을 바꾸었어요.
그것은 철학적 호기심이 아니었어요.
수십만 명의 무사들이 존재 이유를 잃은 채 무너져가는 현실을 본 사람의 절박한 물음이었어요.

야마가 소코는 자신을 출세시킨 학파에 펜으로 칼을 겨눴어요.
1666년, 그는 『성교요록(聖敎要錄)』을 출간했어요.
이 책은 간단히 말하면 "막부의 공식 이념은 틀렸다"고 선언하는 책이에요.
주자학은 송나라 시대 유학자 주희가 정리한 유교 해석 체계예요.
도쿠가와 막부는 이걸 국가 공식 이념으로 채택했어요.
야마가 소코는 그 주자학이 공자·맹자의 원래 가르침을 왜곡했다고 정면으로 비판했어요.
비유하면 이런 거예요.
삼성 사장의 추천으로 입사한 임원이 "삼성식 경영은 근본부터 잘못됐다"는 책을 자기 이름으로 출간한 격이에요.
막부는 그를 키운 학파였고, 그는 그 학파의 핵심 인물이었어요.
결과는 즉각적이었어요.
책 출간 두 달 만에 막부는 그를 체포했어요.
유배지는 아코 번, 지금의 효고현에 있는 변방 영지였어요.
"나는 공자와 맹자를 직접 읽었다. 주희가 해석한 공자가 아니라."
그게 그의 죄목이었어요.
옳은 말을 했지만, 그 말이 권력에 불편했던 거예요.

막부는 그를 침묵시키려 유배 보냈지만, 결과는 정반대였어요.
아코 번의 영주 아사노 가문은 야마가 소코를 죄인이 아닌 스승으로 대접했어요.
그는 9년간 아코에 머물며 강의하고, 쓰고, 생각했어요.
막부에 봉직했다면 절대 쓰지 못했을 책을 바로 거기서 썼어요.
그 책이 『산록어류(山鹿語類)』예요.
아코에서 강의한 내용을 집대성한 이 책에서 그는 사도(士道)를 체계화했어요.
사도는 "무사의 길"이라는 뜻인데, 단순히 싸움을 잘하는 법이 아니에요.
무사가 왜 존재해야 하는지,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를 정의한 윤리 체계예요.
그의 답은 이랬어요.
"무사는 전쟁터가 없어도 존재한다. 무사의 역할은 농민, 상인, 장인이 자기 일에만 집중할 수 있도록 도덕의 모범이 되는 것이다."
쉽게 말하면, 무사는 싸우는 직업이 아니라 사회의 기준을 세우는 존재라는 거예요.
회사가 한직으로 좌천시켰는데, 그 한직에서 인생 최고의 책을 쓴 사람처럼요.
처벌이 그를 자유롭게 했어요.
막부의 눈치를 볼 필요가 없어지자, 그의 사상은 비로소 완성됐어요.

야마가 소코의 사후 17년, 47명의 사무라이가 그가 정의한 사도를 자기 목숨으로 증명했어요.
1685년 야마가 소코는 사면 후 세상을 떠났어요.
그리고 1702년, 그가 9년을 머물렀던 바로 그 아코 번에서 역사상 가장 유명한 사건이 터졌어요.
47 로닌 사건이에요.
사건의 경위는 이래요.
아코 번 영주 아사노가 막부 의식을 관장하던 기라에게 모욕을 당하고 흥분해 칼을 빼들었어요.
막부는 아사노에게 즉각 할복을 명했어요.
그런데 기라는 처벌받지 않았어요.
아사노의 가신 47명은 그 불공평함을 참지 못했어요.
이들은 주군의 원수를 갚기 위해 1년 반을 숨어 기다렸어요.
그리고 눈 오는 밤, 기라의 저택을 습격해 원수를 처단했어요.
막부는 이들을 체포하고 처형했어요.
하지만 민중은 이들을 영웅으로 추앙했어요.
이들의 행동이 야마가 소코가 정의한 사도의 핵심, 즉 주군에 대한 충성과 도덕적 용기를 글자 그대로 실천했기 때문이에요.
그가 책상 위에서 정의한 윤리를, 그의 제자들의 제자들이 자기 목숨으로 실증했어요.
야마가 소코의 사도는 이후 일본 무사도(武士道)의 표준 정의가 됐어요.
무사도는 일본 무사 계층의 행동 강령 전체를 가리키는 말이에요.
야마가 소코는 이것을 미리 알았을까요.
자기가 아코 번에서 9년간 가르친 그 사람들의 후손들이, 자기 이름을 역사에 새겨줄 거라고.
TTS 음성이 없어요.
아래 버튼으로 나레이션을 생성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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