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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에는 덕이면 충분하다안티스테네스

전국시대 최고의 군사가는 두 무릎이 없었어요.
그렇게 만든 사람은 함께 공부하던 친구였습니다.
손빈과 방연은 같은 스승 아래서 병법을 배웠어요.
스승은 귀곡자, 전국시대를 주름잡은 전략 사상가예요.
두 사람은 같은 책을 읽고, 같은 전술을 함께 연습했습니다.
방연이 먼저 출세했어요.
위나라 혜왕의 총애를 받아 대장군이 된 방연은 친구를 불렀습니다.
"같이 공부하던 때 기억하지? 와서 같이 일하자."
하지만 그건 함정이었어요.
방연은 손빈의 재능이 자신보다 뛰어나다는 걸 이미 알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위나라에 도착한 손빈에게 첩자 누명을 씌웠어요.
결국 손빈은 빈형(臏刑)을 당했어요.
빈형이란 무릎뼈를 도려내는 형벌로, 다시는 두 발로 걸을 수 없게 만드는 겁니다.
거기에 얼굴에 죄인 표시를 새기는 경형(黥刑)까지 더해졌어요.
오늘날로 치면 회사 동기가 먼저 임원이 되더니 후배를 불러 누명을 씌우는 꼴이에요.
가장 잘 안다고 믿었던 사람이 가장 정교한 함정을 판 거예요.

손빈은 살기 위해 인간으로서의 존엄까지 버렸어요.
그 굴욕이 훗날 복수의 자본이 됐습니다.
형벌을 당한 뒤에도 방연은 손빈을 가만두지 않았어요.
살아있는 손빈이 언제든 복수할 수 있다는 걸 알았으니까요.
그래서 손빈을 완전히 망가뜨리거나 죽여야 했습니다.
손빈이 선택한 방법은 광인 행세였어요.
돼지우리에 들어가 자기 배설물을 입에 넣고 횡설수설했습니다.
방연의 부하들이 "저 자는 정말 미쳤다"고 완전히 확신하도록요.
기회는 제나라 사신이 위나라를 방문했을 때 왔어요.
손빈은 몰래 사신의 수레 밑에 숨어 탈출했습니다.
제나라에 도착한 그는 장군 전기(田忌)의 빈객이 됐어요.
전기는 제나라 왕의 사촌이자 명장으로, 손빈의 재능을 알아본 첫 번째 후원자예요.
돼지우리에서 버텼던 굴욕이 없었다면, 이후의 복수도 병법도 존재하지 않았을 겁니다.

방연은 죽기 직전 한 그루의 나무를 횃불로 비췄어요.
거기엔 자신의 이름이 새겨져 있었습니다.
손빈의 복수는 두 번의 전투로 완성됐어요.
첫 번째는 기원전 354년경 계릉 전투였습니다.
방연이 조나라를 포위 공격하자, 손빈은 전기에게 말했어요.
"조나라로 달려가 봤자 소용없어요. 대신 위나라 수도를 직접 치면 방연이 스스로 물러나야 하거든요."
이것이 위위구조(圍魏救趙)예요.
포위된 쪽을 직접 구하는 대신, 포위한 쪽의 본거지를 쳐서 스스로 물러나게 하는 전략입니다.
오늘날로 치면 적 팀 선수를 막으러 가는 대신, 그 팀의 라커룸 열쇠를 빼앗아 경기 자체를 무산시키는 거예요.
두 번째는 기원전 341년경 마릉(馬陵) 전투였어요.
마릉은 나무가 빽빽하고 길이 좁은 협곡으로, 매복에 최적인 지형입니다.
손빈은 이번에 훨씬 정교한 함정을 팠어요.
매일 군영의 아궁이 수를 절반씩 줄였어요.
오늘 10만 명이 먹을 밥을 지은 흔적이라면, 다음 날은 5만 명 분, 그다음 날은 2만 5천 명 분처럼 보이도록 위장했습니다.
방연은 "제군이 겁쟁이라 도망치고 있다"고 판단하고 협곡으로 추격했어요.
손빈은 미리 협곡 안의 나무 한 그루 껍질을 깎아 글자를 새겨뒀어요.
"방연사어차수하(龐涓死於此樹下)", 방연은 이 나무 아래서 죽는다는 뜻입니다.
방연이 횃불을 들어 그 글자를 읽는 순간, 사방에서 화살이 쏟아졌어요.
방연은 "결국 그놈의 명성을 이루어주고 마는구나"라고 탄식하며 자결했다고 전해져요.
두 다리로 뛰던 자가 다리 없는 자의 함정에 빠져 죽은 거예요.
수레에 앉은 손빈은 끝내 방연이 오는 걸 기다렸습니다.

1972년 어느 무덤 속에서 한 권의 책이 다시 빛을 봤어요.
그 책의 저자는 두 무릎이 없었습니다.
오랫동안 손빈이 책을 썼는지조차 불분명했어요.
한나라 이후 손빈병법은 역사 기록에서 사라졌고, 천 년이 넘도록 "손빈병법은 손자병법과 같은 책"이라는 설이 유력했습니다.
손빈이 손무(孫武)의 또 다른 이름이 아닐까 의심하는 학자들도 있었어요.
그런데 1972년, 중국 산둥성 임기의 인췌산(銀雀山) 한나라 묘에서 발굴이 시작됐어요.
거기서 죽간(竹簡)이 쏟아져 나왔습니다.
죽간이란 대나무 조각에 글자를 새긴 고대의 책 형태로, 종이가 발명되기 전 중국에서 쓰이던 기록 방식이에요.
그 죽간 안에 손무의 손자병법과 손빈의 손빈병법이 각각 따로 있었어요.
두 사람이 다른 저자라는 게, 2000년 만에 확인된 거예요.
손빈은 스승 손무의 병법에서 멈추지 않았어요.
손무가 정면 돌파 위주의 정공(正攻)을 중심으로 썼다면, 손빈은 기기묘묘한 속임수인 기정(奇正)과 전장의 흐름을 읽는 세(勢)를 한 단계 더 파고들었습니다.
계릉과 마릉이 바로 그 원리의 실험장이었어요.
돼지우리에서 배설물을 입에 넣으면서까지 살아남으려 했던 사람이 끝내 남긴 건, 전쟁을 이기는 방법이었어요.
그것이 복수 때문이었는지, 아니면 그냥 살고 싶었기 때문인지, 이제는 물어볼 수 없습니다.
TTS 음성이 없어요.
아래 버튼으로 나레이션을 생성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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