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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에는 덕이면 충분하다안티스테네스

자기 콩팥이 잘못 잘려나간 환자가 신문에 직접 글을 써서 의사를 변호한 일이 있어요.
1926년 베이징, 그 환자의 이름은 양계초였어요.
양계초는 당시 중국에서 가장 유명한 사상가이자 언론인이었어요.
혈뇨가 멈추지 않자 그는 베이징 협화병원을 찾았어요.
협화병원은 미국 록펠러 재단이 세운 곳으로, 당시 중국 최고의 서양식 의료기관이었어요.
의사들은 우측 콩팥을 잘라내기로 결정했어요.
그런데 수술 후, 동생 양계훈이 충격적인 사실을 폭로해요.
잘려나간 콩팥은 병든 쪽이 아니라 멀쩡한 쪽이었다는 거예요.
음식점에서 잘못된 메뉴가 나왔는데 오히려 리뷰에 "이 집 훌륭합니다"라고 쓰는 상황이 있잖아요.
양계초는 그걸 평생의 신념 위에 올려놓았어요.
그것도 자기 이름을 걸고 신문에 직접 쓰면서요.

나라를 바꾸려 한 사상가는 보통 거리에서 시작해요.
양계초는 황제의 책상에서 시작했고, 그 대가로 14년을 일본에서 보냈어요.
1898년, 양계초는 스승 강유위와 함께 청나라 황제 광서제를 움직였어요.
이름하여 변법자강(變法自強) 운동이에요.
법과 제도를 바꿔 스스로 강해지자는 개혁 운동으로, 위에서 아래로 나라를 뜯어고치려는 시도였어요.
하지만 103일 만에 끝났어요.
황제의 고모이자 실권자인 서태후가 쿠데타를 일으켰고, 동료 개혁가들은 처형당했어요.
양계초는 일본행 배에 올랐어요.
여기서 한 가지 중요해요.
양계초는 청 왕조를 뒤엎으려 한 혁명가가 아니었어요.
황제와 손잡고 위에서 아래로 나라를 바꾸려 한 개혁가였어요.
오늘날로 치면 이런 상황이에요.
회사 시스템을 바꾸려고 경영진과 손잡았다가 임원 교체 정변에 휘말린 거예요.
그 결과로 14년을 해외 지사에서 떠도는 처지가 된 거고요.

제도를 바꾸려다 실패한 사람이 망명지에서 내린 결론은 단순했어요.
사람부터 바꿔야 한다.
일본 요코하마에 자리 잡은 양계초는 신문을 창간해요.
이름은 신민총보(新民叢報)였어요.
'새로운 국민을 기르는 잡지'라는 뜻이에요.
거기서 그는 신민설(新民說)을 펴냈어요.
핵심은 이 한 줄이에요.
"제도가 아무리 좋아도 국민이 바뀌지 않으면 소용없다."
신민이란 어떤 사람일까요.
공공심, 자유, 진취 같은 덕목을 갖춘 시민이에요.
오늘날로 치면 "민주주의에 어울리는 사람을 처음부터 길러내자"는 주장이에요.
변법자강이 "위에서 바꾸자"였다면, 신민설은 "아래에서 사람 자체를 바꾸자"로의 전환이었어요.
같은 사람이, 방향을 완전히 틀었어요.
결국 회사 시스템만 고치려다 실패한 사람이 "결국 사람을 바꿔야 한다"고 결론 내리는 순간과 똑같아요.
자기 콩팥이 잘못 잘려나간 사람이 침묵한 이유는 두려움이 아니었어요.
그는 중국이 서양 의학을 의심하게 되는 게 더 무서웠어요.
사건이 알려지자 중국 지식인 사회는 들끓었어요.
"서양 의학이 중국인을 실험 대상으로 쓴다"는 말이 나왔어요.
협화병원을 향한 비난이 쏟아졌어요.
그때 양계초가 직접 글을 써요.
1926년 시사신보에 실린 '나의 병과 협화병원'이에요.
이 글에서 그는 이렇게 썼어요.
"의학은 과학이에요. 한 번의 실수로 부정해서는 안 돼요."
평생 신민을 외친 사람의 논리는 일관됐어요.
국민이 서양 과학을 불신하게 되면 중국의 근대화는 다시 멀어진다는 거예요.
자기 몸보다 국민의 시선이 먼저였던 거예요.
양계초는 그 수술로부터 3년 후인 1929년, 56세로 세상을 떠났어요.
사인은 그 수술과 관련된 것으로 추정돼요.
하지만 그는 끝까지 공개적으로 이의를 제기하지 않았어요.
자신에게 손해를 끼친 곳을 SNS에 폭로하면 그 산업 전체가 흔들릴 것 같아 침묵을 택하는 사람의 결정과 닮아 있어요.
하지만 이 경우엔 그 '산업'이 중국의 근대화 프로젝트 전체였어요.
그 침묵이 옳은 선택이었는지는, 아직도 답하기 어려운 질문으로 남아 있어요.
TTS 음성이 없어요.
아래 버튼으로 나레이션을 생성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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