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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에는 덕이면 충분하다안티스테네스

1689년 여름, 전북 정읍의 한 민가에 검은 그릇이 놓였어요.
83세 노학자 앞에 사약이 왔는데, 한 사발로는 그가 죽지 않았어요.
사약은 본래 한 사발이면 충분한 강한 독이에요.
그런데 그날 정읍에서, 여러 사발을 거듭 마셔야 했다는 기록이 사대부 문집과 야사에 남아 있어요.
노쇠한 몸이 독조차 버텨낸 거예요.
이 노학자가 바로 송시열이에요.
조선 후기, 임금 다음으로 나라를 흔든 사람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닌 인물이에요.
노론의 영수, 그러니까 당시 조선 최대 정치 세력의 수장을 수십 년간 맡았어요.
반전은 여기에 있어요.
평생 "임금에 대한 절대적 충성이 신하의 도리"라고 외쳐온 그 사람이, 결국 그 임금이 내린 사약 앞에 앉았어요.
회사 규정을 가장 엄격히 지킨 임원이, 그 규정 때문에 해고당하는 장면이랑 닮아 있어요.
약조차 그를 쉽게 보내지 않았다는 건, 어쩌면 역사가 그를 조금 더 붙잡은 것 같기도 해요.

효종은 1659년 봄, 송시열을 따로 불러 말했어요.
"나는 청을 치러 갈 것이다."
두 달 뒤 임금은 죽었지만, 그 한 마디는 30년간 조선을 흔들었어요.
이 비밀 만남을 기해독대라고 불러요.
독대(獨對)는 임금과 신하가 단둘이만 만나는 것을 뜻해요.
회의록도, 증인도 없는 완전한 비밀 대화예요.
당시 조선은 청나라에 완전히 굴복한 상태였어요.
1636년 병자호란 때 인조 임금이 청 황제 앞에 이마를 땅에 찧는 굴욕을 당했거든요.
북벌이란, 그 치욕을 씻겠다며 청나라를 다시 치자는 계획이에요.
그런데 효종은 약속을 지키지 못했어요.
즉위 10년 만에 종기로 갑자기 세상을 떠났거든요.
북벌은 실행 한 번 못 한 채 무너졌어요.
하지만 송시열에게 그 약속은 끝나지 않았어요.
그는 평생 복수설치(復讐雪恥)를 외쳤는데, 원수를 갚고 부끄러움을 씻겠다는 뜻이에요.
죽은 사장의 비밀 지시를 유일하게 알고 있는 측근처럼, 그 약속이 그의 정치적 정통성이 됐어요.
실현되지 않은 약속이 오히려 더 강한 명분이 됐어요.
살아있는 계획은 실패할 수 있지만, 죽은 약속은 아무도 반박할 수 없으니까요.

송시열에게 주자는 학자가 아니라 신앙이었어요.
주자는 12세기 중국 학자로, 공자와 맹자의 가르침을 체계화해 성리학의 기틀을 세운 사람이에요.
그 주석을 한 줄이라도 의심하는 자는, 학문이 아니라 목숨을 걸어야 했어요.
같은 시대에 윤휴라는 학자가 있었어요.
그는 주자의 주석을 맹목적으로 따르지 않고, 경전을 스스로 다시 읽으려 한 사람이에요.
오늘날로 치면 "교과서 집필자의 해설보다 원전 그 자체가 더 중요하지 않을까요?"라고 물은 거예요.
송시열은 윤휴에게 사문난적이라는 낙인을 찍었어요.
사문난적(斯文亂賊)은 '유학의 도를 어지럽힌 도적'이라는 뜻이에요.
오늘날로 치면 종교 법정에서 이단 판결을 받은 것과 같아요.
그 결과 윤휴는 1680년 사사됐어요.
사사(賜死)란 임금이 독약을 내려 처형하는 것, 즉 사약을 받는 거예요.
같은 유학을 공부한 두 학자가, 주석 해석 차이 하나로 한쪽이 다른 쪽을 죽이는 사이가 된 거예요.
결국 송시열의 주자학은 진리를 추구하는 학문이 아니라, 정치 권력을 지키는 무기가 돼 있었어요.
그걸 막을 사람이 조선에는 없었어요.

송시열이 가장 사랑한 제자는, 결국 그를 가장 미워한 적이 됐어요.
시작은 죽은 친구를 위한 묘비 한 줄이었어요.
윤증은 송시열의 가장 아낀 제자였어요.
윤증의 아버지 윤선거는 송시열과 오랫동안 함께 공부해온 친구이기도 했어요.
그래서 윤선거가 세상을 떠났을 때, 윤증은 자연스럽게 스승에게 아버지의 묘갈명을 부탁했어요.
묘갈명은 묘비에 새기는 추모글이에요.
오늘날로 치면 고인의 삶을 담은 추도사예요.
그런데 송시열이 써준 글은 친구를 기리는 글로 보기 어려웠어요.
인색하고 비판적인 표현들이 담겨 있었어요.
윤증은 그걸 평생의 모욕으로 받아들였어요.
두 사람의 결별은 회니시비(懷尼是非)라는 이름으로 역사에 남았어요.
회니시비는 각각 두 사람의 근거지 지명에서 따온 말이에요.
그리고 이 다툼이 바로 노론과 소론의 분당, 즉 조선 정치를 한 세기 이상 갈라놓은 분열의 시작이었어요.
죽은 친구의 자식을 친자식처럼 길렀는데, 그 친구를 향한 추도문 한 줄 때문에 원수가 됐어요.
그 분열의 상처는 송시열이 죽은 뒤에도 100년 이상 조선 정치를 찢어놓았어요.
83세에 사약을 여러 사발 들이켜며 끝을 맞이한 그 삶 안에, 죽인 학자와 떠난 제자와 끝내 이루지 못한 북벌이 모두 담겨 있어요.
어쩌면 가장 엄격한 사람이 만들어낸 가장 긴 균열인지도 몰라요.
TTS 음성이 없어요.
아래 버튼으로 나레이션을 생성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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