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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에는 덕이면 충분하다안티스테네스

중국 철학을 세계에 알린 이 책은 정작 영어로 먼저 정전이 됐어요.
풍우란은 1924년, 미국 컬럼비아대학에서 박사 학위를 받았어요.
지도교수는 존 듀이, 당시 세계 철학계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이름 중 하나였어요.
귀국 후 10년이 지난 1934년, 그는 두 권짜리 『중국철학사』를 냈어요.
공자부터 청나라 말까지 2500년치 중국 사유를 하나의 체계로 정리한 책이었어요.
그런데 이 책이 권위를 인정받은 건 중국이 아니라 미국이었어요.
1952년, 펜실베이니아대 중국학자 더크 보드가 영어로 옮기면서 서구 대학의 표준 교재가 됐거든요.
오늘날로 치면, 한국인이 한국어로 쓴 한국사 책이 영어로 번역된 뒤 하버드 필독서가 된 것과 같은 상황이에요.
그게 다가 아니에요.
그가 책에서 시도한 것 자체가 파격이었어요.
신리학(新理學), 그러니까 공자와 주자(朱子)의 옛 사상을 서양 분석철학의 언어로 재구성하는 작업이었거든요.
주자는 12세기 중국의 사상가로, "인간의 본성이 곧 우주의 법칙"이라는 성리학 체계를 완성한 인물이에요.
풍우란은 그 체계를 서양 논리학의 도구로 다시 쌓으려 했어요.
동양 사상을 동양 방식으로만 설명하던 시대에 혼자 다른 방향을 파고든 거예요.
세계가 알아봤어요.
풍우란은 중국 철학을 세계에 소개한 학자가 됐고요.
문제는, 그다음이었어요.

1973년, 평생을 공자 해석에 바친 78세의 풍우란이 공자를 비판하는 글에 자기 이름을 올렸어요.
비림비공(批林批孔)이라는 운동이 있었어요.
마오쩌둥이 주도한 정치 캠페인으로, 쿠데타를 시도하다 죽은 린뱌오와 공자를 한데 묶어 함께 비판하는 운동이에요.
"옛 것을 믿는 자는 반혁명 분자다"라는 선언이나 다름없었어요.
이 캠페인을 이론적으로 뒷받침하는 글을 쓰는 집단이 양효(梁效)예요.
베이징대와 칭화대 교수들로 구성된 어용 집필단이었어요.
풍우란은 거기에 이름을 올렸어요.
평생 도서관 사서가 분서(焚書) 운동의 얼굴이 되어 무대에 선 것과 같은 상황이에요.
왜 했을까요.
1966년부터 이어진 문화대혁명은 지식인에게 "살아남는 것"이 이미 목표였어요.
비판하지 않으면 비판받는 자리에 서야 했거든요.
풍우란의 동료 교수들이 홍위병 앞에서 끌려나가 "자본주의 주구"라는 팻말을 목에 걸고 서는 걸 직접 봤을 거예요.
홍위병은 당시 마오쩌둥의 지지 아래 지식인과 옛 문화를 폭력적으로 공격한 청년 조직이에요.
그 앞에서 살아남는다는 건, 공격하는 쪽에 서는 것이었어요.
하지만 그게 전부라고 하기엔, 그는 너무 일찍 시작했어요.

그가 가장 먼저 부정해야 했던 책은 그를 학자로 만들어준 바로 그 책이었어요.
1949년 마오쩌둥이 중화인민공화국을 선포했을 때, 풍우란은 마오에게 직접 편지를 썼어요.
내용은 이랬어요. "마르크스주의로 내 책을 다시 쓰겠습니다."
자기 손으로 키운 회사를 공개 석상에서 "잘못된 사업"이라 부르며 사과해야 하는 임원을 생각해 보세요.
그게 그의 처지였어요.
이후 수십 년간 이어진 자아비판서에서 풍우란은 자신의 신리학을 "관념론", "부르주아 철학"이라 규정했어요.
마르크스주의에서 관념론은 욕에 가까운 단어예요.
현실 대신 머릿속 개념만 믿는 몽상가의 철학이라는 뜻이거든요.
그가 공격한 건 과거의 자기 자신이었어요.
서구 대학이 교재로 쓰는 책을 쓴 바로 그 사람을요.
그 자아비판이 진심이었는지, 살아남기 위한 의식이었는지 풍우란 자신만 알겠죠.
어쩌면 수십 년이 지나면서 그 경계 자체가 흐릿해졌을 수도 있어요.
오래 말하다 보면 자기도 믿게 되는 일이 있으니까요.
그런데 이야기는 여기서 끝나지 않아요.

95세 풍우란은 죽기 다섯 달 전, 7권짜리 새 철학사의 마지막 페이지를 받아쓰게 했어요.
1980년대에 백내장으로 거의 실명 상태였어요.
손으로 글을 쓸 수 없었어요.
그래서 제자를 앞에 앉혀놓고 입으로 불렀어요.
『중국철학사신편(中國哲學史新編)』, 새로 쓰는 중국철학사였어요.
총 7권이었고, 쓰는 동안 그의 나이는 90대였어요.
눈도 거의 없고, 남은 시간도 없는 상황에서 마지막 권까지 완성했어요.
그런데 마지막 7권은 중국 본토에서 바로 나오지 못했어요.
정치적으로 민감한 내용이 담겼기 때문이에요.
홍콩에서 먼저 출간됐어요.
평생 정치 압력에 고개를 숙였던 노인이, 눈도 안 보이는 마지막 순간에 가장 솔직한 글을 남긴 거예요.
1990년, 풍우란은 세상을 떠났어요.
95세였어요.
그가 남긴 건 두 가지예요.
서구 대학이 표준 교재로 쓰는 1930년대판 철학사, 그리고 눈 먼 채로 불러준 1990년대판 철학사.
어느 쪽이 진짜 풍우란이냐고 물으면 둘 다라고 해야 할 것 같아요.
한 사람 안에서 그 두 가지가 어떻게 공존할 수 있었는지를 이해하는 게, 어쩌면 풍우란이 평생 쓴 철학서를 읽는 것보다 더 어려운 문제일지도 몰라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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