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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에는 덕이면 충분하다안티스테네스

11년을 준비한 유학길에서 친구가 사라진 새벽, 의상은 혼자 배에 올랐어요.
650년, 의상은 원효와 함께 처음 당나라를 향해 길을 나섰어요.
오늘날로 치면 세계 최고 불교 대학원에 입학하러 가는 길이었는데, 고구려군에 붙잡혀 돌아서야 했어요.
그래서 11년 뒤인 661년, 두 사람은 다시 짐을 쌌어요.
이번엔 배로 가기로 했어요.
그런데 출항을 앞두고 비가 쏟아졌고, 두 사람은 근처 굴속으로 들어가 잠들었어요.
새벽에 잠이 깬 원효는 목이 말라 손에 잡힌 그릇으로 물을 마셨어요. 달고 시원했어요.
날이 밝자 그 그릇은 해골이었어요.
원효는 그 순간 깨달았어요. "모든 것은 마음에서 비롯된다. 당나라까지 갈 필요가 없어."
원효는 돌아갔고, 의상은 혼자 황해를 건넜어요.

의상은 한 여인의 사랑과 화엄종 본산의 수제자 자리, 둘 다를 거절하고 신라로 향했어요.
당나라 양주에 도착한 의상은 한 신도의 집에 머물게 됐어요.
그 집 딸 선묘(善妙)가 의상에게 마음을 빼앗겼어요.
하지만 의상은 출가자였어요. 선묘의 마음을 끝까지 받아들이지 않았어요.
의상은 그 집을 떠나 종남산 지상사로 들어갔어요.
당대 중국에서 가장 권위 있는 화엄 도량이었어요.
스승 지엄(智儼)의 문하에서 7년을 배웠고, 자신보다 먼저 들어온 법장(法藏)을 제치고 수제자로 인정받았어요. 법장은 훗날 화엄종 3조가 될 인물이에요.
그런데 의상이 신라로 돌아간다는 소식이 퍼지자, 선묘는 공양물 상자를 들고 항구로 달려갔어요.
하지만 배는 이미 떠나고 없었어요.
선묘는 그 자리에서 바다에 몸을 던졌다는 이야기가 전해져요.
오래 짝사랑한 사람이 인사 한마디 없이 떠나버린 거예요.
그리고 이 이야기는 여기서 끝나지 않아요.
의상은 80권 6만 게송의 화엄경을 210자, 한 장의 도장 안에 가두었어요.
668년, 스승 지엄이 세상을 떠나기 직전이에요.
의상은 화엄일승법계도(華嚴一乘法界圖)를 지어 스승에게 바쳤어요.
화엄경은 요즘 책으로 치면 수십 권짜리 방대한 백과사전인데, 의상은 그 핵심을 딱 210자, 지하철 노선도 한 장 크기에 밀어 넣은 거예요.
더 놀라운 건 그 모양이에요.
글자들이 사각형 도장 형태로 배열됐는데, 가운데에서 시작해 미로처럼 구불구불 돌다가 다시 가운데로 돌아와요.
시작점과 끝점이 같은 자리예요. 이것을 회문(回文) 구조라고 해요.
왜 이렇게 만들었냐면, 화엄의 핵심 사상이 바로 그거거든요.
화엄은 "하나 안에 전체가 있고, 전체 안에 하나가 있다"는 사상이에요. 하나에서 출발해 세상을 돌아 다시 하나로 돌아온다는 것이죠.
의상은 그 사상을 설명하는 대신, 도형의 구조 자체로 보여준 거예요.
의상이 한국 화엄종을 연 절의 이름은, 그가 거절한 여인의 마지막 모습이었어요.
676년, 의상은 신라로 돌아와 문무왕의 명으로 경북 영주 봉황산에 부석사(浮石寺)를 세웠어요.
이곳에서 화엄 10찰을 세우고 오진·지통·표훈 등 10대 제자를 키우며 한국 화엄종을 정립했어요.
화엄종은 "모든 것은 연결돼 있으며 하나 안에 전체가 담긴다"는 불교 사상을 체계화한 종파예요.
그런데 '부석', 즉 '떠 있는 돌'이라는 이름이 어디서 왔는지가 흥미로워요.
전설에 따르면 의상이 절터를 잡으려 했을 때 도적들이 그 땅을 차지하고 있었어요.
그때 거대한 돌이 공중에 떠올라 그들을 쫓아냈다고 해요.
그 돌이 바로 선묘가 변한 것이라고 전해져요.
바다에 몸을 던진 선묘는 용이 되어 황해를 건너왔고, 절터에서 돌이 되어 공중에 떠올랐다는 거예요.
의상이 끝까지 거절한 여인이, 의상의 평생 본거지 이름으로 남은 거예요.
부석사는 지금도 경북 영주에 있어요.
무량수전 앞마당 한쪽에 '부석'이라 새겨진 큰 돌이 놓여 있어요.
의상은 그녀를 거절했지만, 선묘는 이름 대신 돌이 되어 끝내 그의 곁에 남았어요.
TTS 음성이 없어요.
아래 버튼으로 나레이션을 생성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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