햇빛 좀 가리지 마라디오게네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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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네 살 소년에게 철학책은 취미가 아니었습니다. 아버지가 죽고 자신도 결핵 판정을 받은 뒤, 니시타니 게이지에게 남은 질문은 하나뿐이었습니다. "어차피 죽을 건데 왜 살아야 하는가."
1900년 이시카와현 노토에서 태어난 니시타니는 스무 살도 되기 전에 죽음을 두 번 마주했습니다. 첫 번째는 아버지의 죽음, 두 번째는 자신의 폐에 찾아온 결핵이었습니다. 죽음이 추상 명사가 아니라 오늘의 현실이 되었을 때, 그는 니체와 도스토옙스키에 손을 뻗었습니다. 니체는 "신은 죽었다"고 선언한 독일 철학자이고, 도스토옙스키는 인간의 고통과 구원을 소설로 파고든 러시아 작가입니다.
건강검진에서 예상 못 한 소견을 듣고 갑자기 "나는 왜 살고 있지?"라는 질문이 머릿속을 떠나지 않는 경험, 누구나 한 번쯤 있을 겁니다. 니시타니에게 그 질문은 청소년기 내내 계속되었습니다. 그는 결국 교토제국대학에서 니시다 기타로의 문하에 들어갔습니다. 니시다는 동양과 서양의 철학을 처음으로 독창적으로 융합하려 한 일본 철학의 개척자였습니다.
니시타니가 프라이부르크에서 배운 것은 존재론만이 아니었습니다. 스승 하이데거가 나치 당원이었다는 사실과 함께, 위대한 사상가도 시대의 폭력 앞에서 무력하다는 교훈이 따라왔습니다. 다만 그 교훈을 깨닫기까지 전쟁 하나가 더 필요했습니다.
1937년 니시타니는 독일 프라이부르크대학으로 건너가 하이데거에게 직접 사사했습니다. 하이데거는 "인간은 죽음을 향해 내던져진 존재"라고 규정한 20세기 최대의 철학자였습니다. 그리고 동시에 나치 당원이었습니다.
귀국 후 니시타니는 1942년 '근대의 초극' 좌담회에 참여했습니다. 이 회의는 일본 지식인들이 "서양 근대를 넘어서자"고 논의한 자리였는데, 결과적으로 태평양전쟁의 사상적 명분을 제공하는 데 기여했습니다. 그는 정부 자문위원으로도 활동했습니다. "허무주의를 어떻게 극복할 것인가"를 연구한 철학자가, 정작 자신은 제국주의라는 허무의 기계에 부품이 되어버린 겁니다.
존경하는 멘토의 방식을 믿고 따랐는데, 나중에 보니 그 방식 자체가 문제였다는 것을 깨닫는 순간이 있습니다. 스승 하이데거가 나치에 협력한 패턴을 제자 니시타니도 반복했습니다. 그리고 그 대가는 전후 일본에서 돌아왔습니다.
니시타니는 해고당한 덕분에 걸작을 썼습니다. 전쟁 협력자로 대학에서 쫓겨난 6년, 강의할 곳도 발표할 지면도 없던 시간이 그에게 남긴 것은 자기 자신뿐이었습니다.
1945년 패전 후 연합군 점령 당국은 전쟁에 협력한 지식인들을 공직에서 추방했습니다. 니시타니는 1946년 교토대학 교수직에서 해임되었고, 1952년까지 6년간 강단에 서지 못했습니다. 갑작스러운 실직이라는 처벌이 그를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이상한 일이 벌어졌습니다. 강의할 수 없게 되자, 그는 비로소 자기 자신과 마주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자신의 전쟁 협력을, 허무주의라는 문제를, 그리고 그 문제에 틀린 답을 냈던 자신을 정면으로 재검토하기 시작했습니다. 갑작스러운 강제 휴식이 오히려 진짜 질문을 되돌려준 겁니다.
복직 후 이 성찰은 마침내 주저 『종교란 무엇인가』(1961)로 결실을 맺었습니다. 이 책은 니시타니가 평생 붙잡아온 질문, "삶이 무의미하다는 걸 알면서도 어떻게 살 것인가"에 대한 그의 최종 답안이었습니다.
니시타니의 답은 의외로 단순했습니다. 바닥이 무너졌으면, 바닥 없이 서는 법을 배우면 된다는 것이었습니다.
서양 철학은 허무주의를 "해결해야 할 문제"로 봤습니다. 니힐리즘, 즉 "삶에는 의미가 없다"는 결론을 마주했을 때 철학자들은 그것을 반박하거나 우회하려 했습니다. 하이데거조차 이 문제를 완전히 통과하지 못했습니다.
니시타니는 방향을 바꿨습니다. 그는 불교의 공(空, 슌야타)을 끌어들였습니다. 공이란 "아무것도 없다"는 뜻이 아닙니다. 오히려 "나라는 고정된 실체가 없다"는 인식, 그 인식이 열어주는 새로운 지평입니다. 니시타니는 허무주의의 '아무것도 없다'를 끝이 아니라 관문으로 재정의했습니다.
그가 직접 쓴 표현은 '무(無)의 장(場)'이었습니다. 우리말로 옮기면 "밑없는 바닥"에 가깝습니다. 자아라는 바닥이 빠진 뒤에야 열리는 공간입니다. 불안이나 공허를 없애려고 발버둥치다가, 어느 순간 그냥 그 감정 안에 머물렀더니 오히려 괜찮아진 경험, 니시타니는 그 감각을 철학적 언어로 정확하게 짚어낸 사람이었습니다.
서양 철학계는 이 논리에 충격을 받았습니다. 『종교란 무엇인가』는 영어로 번역되어 서양에 교토학파를 알린 대표 텍스트가 되었습니다. 교토학파는 니시다 기타로가 창시하고 니시타니가 계승한, 동서양 철학을 독창적으로 융합한 일본의 철학 전통입니다.
열네 살에 병상에서 시작한 질문이 60년을 돌아 여기까지 왔습니다. 아버지를 잃고 결핵을 얻고, 나치 독일의 강의실을 거쳐 전쟁의 공범이 되었다가 강단에서 쫓겨난 뒤, 니시타니는 마침내 그 모든 것을 "통과할 수 있는 문"으로 만들어냈습니다. 문제를 푼 것이 아니라, 문제의 성격 자체를 바꿔버린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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