햇빛 좀 가리지 마라디오게네스
햇빛 좀 가리지 마라디오게네스
어떤 스승은 책을 쓴다.
어떤 스승은 책을 쓰지 않는다.
암모니오스 삭카스는 후자였다.
그는 알렉산드리아에서 가르쳤지만, 자신의 생각을 단 한 줄도 양피지에 옮기지 않았다.
그의 수업은 입에서 귀로, 눈빛에서 눈빛으로 전해졌다.
제자들은 그 가르침을 밖으로 가져가지 않겠다는 서약까지 맺었다.
204년경 이집트 리코폴리스에서 태어난 플로티노스는 스물여덟 살에 이 사람을 찾아갔다.
알렉산드리아는 당시 지중해 세계의 지식 집산지였다.
서고에는 두루마리가 쌓였고, 거리에는 학파가 넘쳤다.
플로티노스는 도시의 여러 선생을 찾아다녔다고 한다.
번번이 실망하고 돌아오다가, 마침내 암모니오스의 강의실 문턱을 넘는 순간 발걸음을 멈췄다.
"이 사람이다."
그는 11년을 그 자리에 머물렀다.
말을 아끼는 스승 밑에서, 서약을 지키는 동료들 사이에서.
그 11년 동안 플로티노스가 무엇을 생각했는지 우리는 알 수 없다.
다만 그가 그 시간을 견딘 것은, 침묵 속에 뭔가 있다는 확신 때문이었을 것이다.
238년, 마흔 가까운 플로티노스는 전혀 예상치 못한 선택을 한다.
황제 고르디아누스 3세의 페르시아 원정군에 자원한 것이다.
이것은 모험이나 애국심 때문이 아니었다.
그는 동방, 특히 페르시아와 인도의 철학을 직접 듣고 싶었다.
당시 그 지식은 먼 나라 말로 이루어진 구전이었고, 군대의 행군 경로만이 그 언어에 가닿는 유일한 길이었다.
철학자가 갑옷 사이에 끼어 메소포타미아 사막을 걸었다.
그러나 계획은 244년 황제의 죽음과 함께 산산조각 났다.
고르디아누스 3세는 메소포타미아 전선에서 살해당했고, 원정군은 순식간에 해체됐다.
플로티노스는 목숨만 건져 안티오키아로 빠져나왔다.
동방 철학은 끝내 닿지 못한 곳으로 남았다.
그는 거기서 방향을 바꿔 로마로 향했다.
동방에서 무언가를 얻으려 했다가, 빈손으로 돌아온 사람.
하지만 그 빈손이 오히려 그를 자유롭게 했는지도 모른다.
누군가의 언어를 빌리지 않고, 자기 자신의 언어로 생각해야 했으니까.
로마에 정착한 플로티노스는 이후 25년간 강의했다.
귀족의 자녀들이 그의 집을 드나들었고, 원로원 의원들도 수업을 들었다.
황제의 가족도 그의 이름을 알았다.
그러나 그는 아무것도 쓰지 않았다.
강의는 언제나 즉흥이었다.
질문이 있으면 대답했고, 대화가 끝나면 그것으로 마쳤다.
글은 쓰지 않았다.
스승 암모니오스처럼.
이 침묵이 깨진 건 그가 쉰 살이 넘어서였다.
253년경부터 비로소 글을 쓰기 시작했는데, 그 방식도 독특했다.
시력이 나빠 자신이 쓴 것을 다시 읽지 않았다.
교정은 물론이고 읽어보는 일조차 거부했다고 한다.
한 번 생각이 흘러나오면 그대로였다.
훗날 제자 포르피리오스가 이 산더미 같은 글들을 정리했다.
여섯 묶음, 각각 아홉 편씩, 총 54편.
그리스어로 '아홉'을 뜻하는 단어를 따서 엔네아데스라고 불렀다.
우리가 플로티노스를 읽을 수 있는 건 스승의 서약을 지키지 않은 제자 덕분이 아니라, 스승의 글을 묶어낸 또 다른 제자 덕분이다.
철학이란 결국 혼자 완성되지 않는다.
플로티노스의 삶에서 가장 기이한 장면은 아마 이것일 것이다.
그는 황제를 찾아가 도시 하나를 세워달라고 요청했다.
황제는 갈리에누스, 3세기 로마의 혼란기를 견디던 군인 황제였다.
그의 시대 로마는 변경에서 침입이 끊이지 않았고, 내부에서는 반란이 연달아 일어났다.
황위는 언제 뺏길지 몰랐다.
그런 황제에게 플로티노스는 캄파니아 지역에 땅을 달라고 했다.
그 땅에 플라톤의 『법률』에 따라 운영되는 철학자 공동체를 세우겠다는 계획이었다.
이름까지 정해두었다. 플라토노폴리스.
플라톤의 도시라는 뜻이다.
이것은 단순한 학교가 아니었다.
도시 전체가 철학적 원리에 따라 구성되고, 그 안에서 사람들이 생각하고 살아가는 실험.
플라톤이 꿈꾸었으나 끝내 실패한 것을, 플로티노스는 현실에서 다시 시도하려 했다.
황제 갈리에누스는 처음에 호의를 보였다.
황후 살로니나도 플로티노스의 후원자였다.
그러나 궁정 내부에서 반대가 일었다.
누가, 어떤 이유로 막았는지 기록은 자세히 전하지 않는다.
다만 계획은 끝내 실현되지 못했다.
도시는 이름만 남았다.
지도 위에 표시된 적 없는 장소로.
270년, 플로티노스는 캄파니아의 한 저택에 홀로 있었다.
제자들은 이미 떠난 뒤였다.
병이 깊어지면서 그는 점점 사람들과 거리를 두었다.
목소리가 쇠약해졌고, 손발이 말을 듣지 않았다.
곁에 남은 건 의사 에우스토키오스 한 명뿐이었다.
에우스토키오스가 마침내 도착했을 때, 플로티노스는 이렇게 말했다.
"내 안의 신적인 것을, 만물 속 신적인 것에게로 되돌리려 한다."
그리고 숨을 거뒀다.
이 말은 그가 평생 생각해온 것의 마지막 표현이었다.
그에게 인간의 영혼은 어딘가에서 흘러나와 몸속에 갇힌 것이었다.
그 흐름을 거슬러 다시 원래 자리로 돌아가는 것, 그것이 삶의 목적이었다.
그래서 그는 자신의 초상화를 그리는 것을 거부했다.
몸을 그려 남기는 일이 무슨 의미냐는 식이었다.
제자 아멜리오스가 초상화를 그리고 싶다고 했을 때, 플로티노스의 대답은 간단했다.
자연이 이미 나에게 껍데기를 하나 씌웠는데, 왜 그 껍데기의 껍데기를 또 만드느냐.
생일도 기념하지 않았다.
태어난 날을 축하한다는 것은 이 몸 안에 들어온 날을 기념하는 것이었으니까.
그는 소크라테스와 플라톤의 기일에는 잔치를 열었다.
자신의 생일에는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
그가 거부한 것들을 나열하면 이상하게 들린다.
초상화, 생일, 글의 교정, 11년의 침묵.
하지만 그것들은 모두 같은 방향을 가리키고 있었다.
그는 자신이 이 세계에 잠시 잘못 놓인 것처럼 살았다.
그리고 그 낯섦을 부끄러움이 아니라, 어떤 확신으로 견뎌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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