햇빛 좀 가리지 마라디오게네스
햇빛 좀 가리지 마라디오게네스
아버지의 직업이 아들의 운명을 결정하던 시대가 있었다.
히케시아스는 흑해 연안의 항구도시 시노페에서 환전상을 했다.
그는 동전의 가치를 감별하는 사람이었고, 어쩌면 그것을 조작하는 방법도 알았다.
아들 디오게네스가 화폐 변조, 그러니까 동전의 무게를 속이거나 각인을 훼손하는 일에 연루되었을 때, 시노페는 그를 도시 밖으로 내쫓았다.
아버지도 함께였다는 기록도 있다.
어느 쪽이든 결과는 같았다. 고향을 잃었다.
쫓겨난 청년이 델포이에 갔다.
당시 사람들은 인생이 막히면 신전에서 신탁을 구했다.
지금으로 치면 중대한 결정을 앞두고 신뢰하는 누군가에게 조언을 구하는 것과 비슷했다.
다만 그 '누군가'가 아폴론이었고, 말은 언제나 해석의 여지를 남겼다.
신탁이 내려왔다. "통용되는 것의 가치를 바꾸어라(parakharaxis)."
재미있는 단어다.
원래 이 단어는 화폐 변조를 뜻하는 바로 그 단어였다.
신탁은 그가 이미 한 짓을 다시 하라고 말하는 것처럼 들렸다.
그런데 디오게네스는 멈춰서 생각했다.
동전이 아니라면?
돈이 아니라, '세상이 당연하다고 여기는 것들'을 뒤집으라는 뜻이라면?
추방자에게는 잃을 것이 없었다.
그리고 그 자유는 생각보다 강력한 출발점이 되었다.
아테네는 철학자들이 북적이는 도시였다.
소크라테스가 처형된 지 얼마 지나지 않았고, 플라톤은 아카데메이아를 세워 제자들을 가르치고 있었다.
대부분의 철학자들은 언어로 세상을 분석했다. 토론하고, 정의를 내리고, 체계를 쌓았다.
디오게네스는 달랐다.
그는 몸으로 철학을 했다.
아테네에 도착한 그는 집을 얻지 않았다.
대신 거대한 피토스, 그러니까 곡물이나 올리브유를 저장하는 항아리 안에서 잠을 잤다.
오늘날로 치면 공원 벤치에서 자는 노숙자처럼 보였겠지만, 디오게네스는 자신이 '단순한 삶'을 살기로 선택했다고 생각했다.
굴욕이 아니라 철학이었다.
그뿐이 아니었다.
그는 아고라, 즉 아테네의 공개 광장에서 밥을 먹었다.
배변도 했다.
자위도 했다.
사람들이 보는 앞에서.
충격적으로 들리지만, 디오게네스의 논리는 분명했다.
동물은 이런 행위를 숨기지 않는다.
배가 고프면 먹고, 몸이 반응하면 반응에 따른다.
그것이 '부끄럽다'는 감각은 자연에서 온 것이 아니다.
수치심은 관습이다.
누군가가 만들어서 퍼뜨린 규칙이다.
그리고 규칙은 질문받을 수 있어야 한다.
아테네인들은 그에게 별명을 붙였다. '개(kyōn)'.
짐승처럼 산다는 비아냥이었지만, 디오게네스는 오히려 그 이름을 자랑스럽게 받아들였다.
개는 허위 없이 산다.
아첨하지 않고, 가식 없이 으르렁거리고, 배고프면 배고프다고 한다.
그 별명에서 견유학파(Cynicism)라는 철학 사조의 이름이 생겨났다.
'개의 철학'이라고도 번역할 수 있는 이름이었다.
어느 날 낮, 디오게네스가 아테네 시장 한복판에 나타났다.
손에는 불이 켜진 등불이 들려 있었다.
한낮이었다.
태양이 머리 위에 떠 있고, 아고라는 사람들로 가득 찼다.
등불이 아무 소용도 없는 시간이었다.
그런데 그는 등불을 높이 들고 돌아다니며 외쳤다.
"나는 사람을 찾고 있다(Anthropon zeto)."
상인들이 멈췄다.
철학자들이 고개를 갸웃했다.
여기 사람이 가득하지 않냐는 질문이 여기저기서 나왔다.
그게 요점이었다.
디오게네스 라에르티오스가 기록으로 남긴 이 퍼포먼스는 단순한 기행이 아니었다.
낮에 등불을 드는 행위는 '눈을 뜨고 있어도 보이지 않는다'는 뜻이었다.
아테네에는 사람의 형상을 한 존재들이 가득했지만, 그가 찾는 '정직한 인간'은 아무도 없었다.
상인들은 이윤을 위해 저울을 속였다.
정치인들은 말과 행동이 달랐다.
철학자들은 덕을 논하면서 사치를 누렸다.
등불은 그들 각자에게 들이댄 거울이었다.
그리고 아무도 그 거울 앞에서 편안하지 않았다.
기원전 336년 무렵, 마케도니아의 젊은 왕 알렉산드로스가 그리스 도시들의 맹주 자리를 굳히기 위해 코린토스에 머물렀다.
그리스의 유력자들, 장군들, 철학자들이 줄지어 왕을 알현했다.
권력을 쥔 자 앞에 고개를 숙이는 것은 그 시대의 관습이었고, 아무도 의심하지 않았다.
그런데 한 사람이 오지 않았다.
디오게네스였다.
플루타르코스의 기록에 따르면, 알렉산드로스가 직접 그를 찾아갔다.
세계 정복을 앞둔 왕이, 항아리에 사는 늙은 철학자를 찾아간 것이다.
디오게네스는 마침 땅바닥에 드러누워 햇볕을 쬐고 있었다.
왕의 행렬이 그의 앞에 섰다.
알렉산드로스가 물었다. 무엇이든 원하는 것을 주겠다고.
디오게네스가 눈을 들어 왕을 바라보았다.
그리고 말했다.
"거기서 비켜서라. 햇빛을 가리고 있다."
수행원들이 당황했다.
어떤 기록에는 모욕을 응징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있었다고 한다.
알렉산드로스는 잠시 침묵했다.
그리고 돌아서며 말했다.
"내가 알렉산드로스가 아니었다면, 디오게네스가 되고 싶었을 것이다."
이 짧은 교환 안에 두 세계가 충돌한다.
한쪽에는 제국을, 도시를, 금을 원하는 사람이 있다.
다른 한쪽에는 햇빛 한 줌을 원하는 사람이 있다.
알렉산드로스가 왜 그 말을 했는지는 정확히 알 수 없다.
존경이었는지, 감탄이었는지, 아니면 자신도 미처 알지 못했던 어떤 결핍을 건드린 것인지.
하지만 그 한마디가 2000년이 넘도록 전해진다는 사실은, 그가 그냥 한 말이 아니었음을 말해준다.
플라톤은 아카데메이아에서 제자들에게 물었다.
인간이란 무엇인가?
그리고 정의를 내렸다.
인간은 "깃털 없는 두 발 동물"이다.
당시로서는 꽤 정교한 정의였다.
인간을 다른 동물들과 구분하는 객관적 기준을 찾으려는 시도였다.
제자들은 고개를 끄덕였다.
논리적으로 그럴듯했다.
이튿날, 누군가가 아카데메이아 문을 열고 들어왔다.
손에는 한 마리 닭이 들려 있었다.
깃털이 모두 뽑혀 있었다.
불그레하고 볼품없는 몸뚱이가 그대로 드러난 채, 두 발로 버둥거리고 있었다.
디오게네스가 선언했다.
"여기 플라톤의 인간이 있다."
강의실이 잠시 굳었다.
반박할 수가 없었다.
깃털을 뽑으면 닭도 깃털 없는 두 발 동물이 되었다.
정의가 맞다면, 이 닭도 인간이어야 했다.
플라톤은 결국 정의를 수정해야 했다.
"깃털 없는 두 발 동물로서 넓적한 손톱을 가진."
철학사에서 이 사건은 종종 가볍게 언급되고 넘어간다.
하지만 그 안에 담긴 충격은 작지 않다.
몇 줄의 글로 정리된 '인간의 정의'가 닭 한 마리 앞에서 무너졌다.
추상적인 언어가 현실 앞에서 얼마나 빠르게 흔들리는지를, 디오게네스는 말이 아니라 행동으로 보여주었다.
이것이 그의 방식이었다.
그는 반론을 쓰지 않았다.
반론을 살았다.
항아리 안에서 자고, 광장에서 먹고, 왕에게 햇빛을 요구하고, 닭을 들고 강의실에 난입했다.
매번 사람들은 비웃었고, 당황했고, 때로는 불쾌해했다.
그런데 그 모든 순간마다 '우리가 당연하다고 여기는 것'이 조금씩 흔들렸다.
관습은 공기처럼 우리를 둘러싸고 있어서, 거기 있다는 사실조차 잊게 만든다.
누군가 그것을 깨기 위해서는, 그 공기를 마시지 않는 사람이 필요했다.
항아리 안에서 햇빛을 쬐던 그 남자는, 그 역할을 자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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