햇빛 좀 가리지 마라디오게네스
햇빛 좀 가리지 마라디오게네스
어떤 사람들은 권력을 평생 쫓는다.
어떤 사람들은 태어나면서부터 권력을 쥐고 있다.
그리고 극히 드문 사람들은 손에 쥔 권력을 스스로 내려놓는다.
헤라클레이토스는 세 번째 종류의 인간이었다.
기원전 6세기 말, 에게 해 연안의 항구도시 에페소스에는 세습 왕가가 있었다.
그 가문의 적장자로 태어난 헤라클레이토스는 바실레우스라는 칭호를 물려받을 자격이 있었다.
바실레우스는 왕과 제사장의 역할을 겸한 직위였다.
축제를 주관하고, 신에게 제물을 바치고, 시민들 앞에 서는 자리였다.
그는 그것을 동생에게 넘겼다.
이 한 가지 행동만으로도 헤라클레이토스는 당시 그리스 세계에서 이해하기 어려운 인물이 되었다.
귀족 가문의 아들이 왕위 계승을 포기하는 일은 거의 없었다.
병이 들었거나, 정적에게 밀렸거나, 강제로 쫓겨났거나.
하지만 헤라클레이토스의 경우, 기록이 남긴 이유는 그 어느 것도 아니었다.
그는 그냥 원하지 않았다.
후대에 디오게네스 라에르티오스가 전하는 단편적인 기록에 따르면, 헤라클레이토스는 어릴 때 "아무것도 모른다"고 말했고, 어른이 되어서는 "모든 것을 알게 되었다"고 말했다.
이 말을 자만심으로 읽을 수도 있다.
하지만 달리 읽으면, 세상이 자신에게 제공하는 것들이 더는 흥미롭지 않다는 선언처럼 들리기도 한다.
왕관보다 더 끌리는 것이 있었던 사람의 말처럼.
그 끌리는 것이 무엇이었는지는, 그가 남긴 공격적인 언어들에서 거꾸로 드러난다.
헤라클레이토스가 활동하던 시대에 호메로스는 그리스 세계의 교사였다.
『일리아스』와 『오디세이아』는 단순한 서사시가 아니었다.
영웅이 어떻게 행동해야 하는지, 신들이 어떤 존재인지, 세계가 어떻게 돌아가는지를 가르치는 교과서였다.
아이들은 호메로스를 암송하며 자랐고, 어른들은 호메로스를 인용하며 논쟁했다.
헤라클레이토스는 이 인물을 공개적으로 공격했다.
그가 남긴 단편들에는 이런 문장이 있다.
호메로스는 "경기장에서 쫓겨나 채찍질을 당해야 한다"고.
피타고라스에 대해서는, 그 박학다식이 "사기꾼의 기술"에 불과하다고 했다.
헤시오도스가 낮과 밤을 다른 것이라 가르친 것을 두고는 비웃었다.
이것은 단순한 학문적 반박이 아니었다.
당시 그리스 사회에서 피타고라스와 호메로스를 이름으로 끌어내려 욕하는 것은, 오늘날로 치면 국가 원수나 종교 지도자를 길거리에서 공개적으로 조롱하는 것과 비슷한 충격을 주었을 것이다.
헤라클레이토스의 논점은 이것이었다.
많이 아는 것과 제대로 아는 것은 다르다.
호메로스는 많이 알았고, 피타고라스는 여러 곳을 돌아다니며 많은 것을 수집했다.
하지만 그들은 핵심을 놓쳤다.
그 핵심이 무엇이냐고?
그것을 쉽게 말해주는 것이 헤라클레이토스의 스타일이 아니었다.
에페소스에는 아르테미스 신전이 있었다.
고대 세계 7대 불가사의 중 하나로 꼽히던 그 건물은, 오늘날 기준으로도 거대한 구조물이었다.
수백 개의 기둥이 늘어선 신전 안에는 여신에게 바쳐진 봉헌물들이 쌓여 있었다.
황금 장신구, 조각상, 귀한 직물들.
헤라클레이토스는 이곳에 책 한 권을 놓아두었다.
자신이 쓴 저작물이었다.
그는 제자를 두지 않았고, 강연을 열지 않았고, 책을 팔거나 배포하지 않았다.
대신 신전의 제단 앞에 그것을 올려두었다.
디오게네스 라에르티오스가 전하는 이유가 흥미롭다.
헤라클레이토스는 의도적으로 난해하게 썼다고 한다.
"능력 있는 자만 접근하고, 대중의 경멸로 값이 떨어지지 않게" 하기 위해서.
오늘날의 감각으로는 오만하게 들릴 수 있다.
하지만 달리 생각해보면, 이것은 일종의 진지한 신뢰였다.
그는 자신의 생각이 가볍게 소비되는 것을 원하지 않았다.
시장에서 팔리는 물건처럼, 혹은 식사 자리에서 잠깐 화제가 되다 사라지는 이야기처럼 되는 것을.
신전에 봉헌한다는 것은, 그 글을 어떤 의미에서 신의 영역에 맡긴다는 뜻이기도 했다.
인간의 유통 시스템 밖에 두는 것.
누가 읽을지, 언제 읽힐지, 얼마나 퍼질지를 통제하려는 욕심을 내려놓는 것.
아이러니하게도, 그 책은 전해지지 않는다.
지금 우리가 가진 것은 약 130개의 단편들뿐이다.
모두 후대의 다른 저작자들이 인용하거나 반박하면서 가져다 쓴 조각들이다.
플라톤이 언급하고, 아리스토텔레스가 비판하고, 스토아 철학자들이 흡수하면서 남긴 흔적들.
원본은 사라졌다.
조각들만 남았다.
그리고 그 조각들만으로도, 헤라클레이토스는 서양 철학사에서 지워지지 않는 이름이 되었다.
기원전 5세기 초, 다리우스 1세는 페르시아 제국을 이집트에서 인더스강까지 확장한 군주였다.
그의 궁정은 당시 세계에서 가장 강력하고 부유한 곳이었다.
다리우스는 그 궁정으로 헤라클레이토스를 초대했다고 전해진다.
서신의 내용은 이러했다.
그리스 철학을 직접 배우고 싶다.
에페소스에서 페르시아 왕실로 와달라.
모든 것을 제공하겠다.
헤라클레이토스의 답신은 짧았다.
자신은 "만족에 대한 두려운 무능력으로 고통받는 세상 사람들과 거리를 두며" 에페소스에 남겠다고 했다.
에페소스에서 자신에게 족한 것을 따르겠다고.
이 왕복 서한은 위작으로 의심받기도 한다.
고대에는 유명 인물의 이름을 빌려 편지를 꾸미는 관행이 있었다.
그러나 이 이야기가 고대부터 헤라클레이토스를 대표하는 일화로 반복 인용되었다는 사실 자체는, 그의 성격에 대한 당대의 기억이 얼마나 일관되었는지를 보여준다.
부, 권력, 명성, 호기심.
인간이 흔히 욕망하는 것들을 그는 쉽게 거절했다.
아니, 정확히는, 거절이 그에게 어렵지 않아 보였다는 것이다.
호메로스를 채찍질해야 한다고 말한 사람.
왕위를 동생에게 넘긴 사람.
세계에서 가장 강력한 군주의 초대를 거절한 사람.
이 세 가지 행동에는 하나의 공통점이 있다.
그는 자신이 가치 있다고 생각하는 것과 세상이 가치 있다고 부르는 것을, 같은 것으로 보지 않았다.
노년의 헤라클레이토스는 수종을 앓았다.
수종은 몸 안에 체액이 비정상적으로 쌓이는 병이다.
배가 불러오고, 다리가 붓고, 호흡이 어려워진다.
그는 의사들을 찾아갔다.
하지만 헤라클레이토스는 의사들에게도 직접적으로 말하지 않았다.
수수께끼처럼 물었다.
"홍수 뒤에 가뭄을 만들 수 있겠느냐"고.
의사들은 무슨 말인지 이해하지 못했다.
답을 얻지 못한 헤라클레이토스는 스스로 치료를 시도했다.
디오게네스 라에르티오스의 기록에 따르면, 그는 소똥으로 온몸을 덮고 햇볕 아래 누웠다.
체액을 증발시키려 했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 상태에서 죽었다.
60세 무렵이었다고 전해진다.
이 최후는 오랫동안 헤라클레이토스를 조롱하는 데 쓰였다.
교만한 철학자가 의사의 말을 듣지 않고 스스로 기이한 방법을 택했다가 비참하게 죽었다는 이야기로.
하지만 이 기록을 있는 그대로 믿을 수 있는지는 별개의 문제다.
고대의 전기 작가들에게는 철학자의 삶을 그 철학의 반증으로 마무리하는 관행이 있었다.
자연을 연구한 자는 자연에게 죽임당하고, 교만한 자는 가장 굴욕적인 방식으로 생을 마감하는 식으로.
헤라클레이토스의 죽음 이야기가 그 관행의 산물일 가능성을 배제하기 어렵다.
그러나 한편으로, 이 이야기가 지속적으로 살아남았다는 것은 무언가를 말해준다.
헤라클레이토스라는 인물에게는, 이런 기이한 이야기가 어울린다고 사람들이 느꼈다는 것을.
왕위를 포기하고, 당대 최고의 지식인들을 공격하고, 책을 신전에 봉헌하고, 황제의 초대를 거절한 사람이라면, 소똥으로 스스로를 치료하려 했다는 이야기도 그리 낯설지 않다는 것을.
그의 가장 유명한 단편 중 하나에 이런 말이 있다.
같은 강물에 두 번 발을 담글 수 없다고.
강은 흐르고, 물은 바뀌고, 나도 바뀌기 때문에.
헤라클레이토스가 실제로 어떻게 살았고 어떻게 죽었는지, 우리는 정확히 알 수 없다.
그 삶은 이미 흘러가버렸다.
남은 것은 약 130개의 조각과, 그 조각들을 둘러싼 이야기들이다.
흐르는 강처럼, 우리가 잡으려 할 때 이미 다른 곳에 가 있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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