햇빛 좀 가리지 마라디오게네스
햇빛 좀 가리지 마라디오게네스
압데라는 트라키아 해안의 작은 항구 도시였다.
기원전 5세기, 이곳에서 짐꾼으로 일하던 청년 하나가 장작을 나르고 있었다.
장작 묶는 일은 단순해 보인다.
그러나 짐을 실제로 져본 사람은 안다 — 같은 무게라도 어떻게 묶느냐에 따라 어깨에 걸리는 하중이 다르고, 무너지지 않고 이동할 수 있는 거리가 달라진다는 것을.
그 청년은 장작을 쌓는 방식을 바꿨다.
힘을 적게 쓰고, 더 안정적으로, 더 멀리 나를 수 있도록.
그 장면을 지켜본 사람이 있었다.
압데라가 낳은 가장 위대한 지성, 데모크리토스였다.
원자론을 창안한 그 철학자가 짐꾼의 손을 보았다.
손이 아니라 그 손의 논리를.
아울루스 겔리우스의 기록에 따르면, 데모크리토스는 그 자리에서 청년을 불러 제자로 삼았다.
이름은 프로타고라스.
무명의 노동자가 지식인의 세계로 진입하는 경위치고는 너무 조용했다.
이 출발이 얼마나 거대한 소란으로 끝날지는 아무도 몰랐다.
기원전 5세기 중반, 프로타고라스는 아테네에 도착했다.
당시 아테네의 지식인들은 대개 두 가지 방식으로 살았다.
부유한 후원자 밑에 기거하거나, 공공장소에서 무상으로 가르치거나.
지혜는 돈을 받고 팔 수 있는 것이 아니라는 암묵적 합의가 있었다.
지식은 선물이거나 시민적 의무였지, 상품이 아니었다.
프로타고라스는 그 합의를 무시했다.
그는 자신을 소피스트, 즉 '지혜를 가르치는 사람'이라 공개적으로 칭한 최초의 인물이었다.
그리고 수업료를 받았다.
금액에 관한 설은 과장이 섞였을 수 있지만, 그가 상당한 보수를 요구했다는 사실 자체는 당대 여러 기록이 일치한다.
플라톤의 대화편 「프로타고라스」에는 이런 장면이 나온다.
아테네의 부유한 귀족 칼리아스의 저택.
이른 아침인데 이미 사람들이 가득하다.
복도에도, 안뜰에도, 기둥 사이에도.
소피스트의 강의를 들으려는 젊은이들이 몰려 있다.
소크라테스와 함께 그 집을 찾아간 히포크라테스는 흥분으로 얼굴이 붉어 있다.
지혜가 처음으로 가격표를 달고 시장에 나온 날의 풍경이다.
이것이 단순한 돈 문제가 아니었던 이유는, 그가 가르친 내용 때문이다.
수사학 — 어떤 상황에서도 설득력 있게 말하는 기술.
그리고 덕(aretē) — 좋은 시민이 되는 법.
귀족의 혈통과 상관없이, 배우면 얻을 수 있는 것들이었다.
프로타고라스의 강의실은 아테네 민주주의가 필요로 했던 인재를 생산하는 공장이기도 했다.
기원전 444년경, 페리클레스는 남이탈리아에 새 도시를 건설하기로 했다.
도시 이름은 투리이.
다양한 폴리스 출신 시민들이 함께 살아갈 새로운 공동체였다.
새 도시에는 법이 필요했다.
어떤 법이 공정한가.
어떤 규칙이 낯선 사람들을 하나의 공동체로 묶을 수 있는가.
페리클레스는 아테네 최고의 지성들 중에서 적임자를 골랐다.
그 선택이 프로타고라스였다.
철학자가 아닌, 소피스트가 실제 국가의 법체계를 설계한 드문 사례다.
그것도 당대 그리스 세계에서 가장 강력한 지도자의 의뢰로.
짐꾼 출신의 그 남자가 한 나라의 헌법을 쓰고 있었다.
전해지는 기록 중에는 그가 만든 법률 안에 아들들에게 국비 교육을 의무화하는 조항이 포함되어 있었다는 내용이 있다.
교육이 혈통이 아니라 국가의 책임이라는 생각.
가르치는 일로 돈을 번 남자가, 배움의 기회를 돈 없이도 열어두는 법을 만든 셈이다.
투리이는 그가 세상을 떠난 뒤에도 수십 년간 번성했다.
프로타고라스는 「진리」라는 책을 썼다.
그 첫 문장은 이것이다.
"인간은 만물의 척도이다."
문장은 짧다.
그러나 이 열 글자가 서양 철학사를 둘로 갈랐다.
비유로 설명하자면 이렇다.
우리는 온도를 잴 때 온도계를 쓴다.
그런데 온도계가 없다면?
"덥다"와 "춥다"는 결국 내가 느끼는 것이다.
여름에 냉면 육수를 마시는 사람에게는 그 국물이 차갑고, 냉동 창고에서 나온 사람에게는 따뜻하다.
어느 쪽이 맞는가.
프로타고라스의 답은 간단하다 — 둘 다 맞다.
진리는 관찰자로부터 독립해서 존재하지 않는다.
이것은 단순한 상대주의가 아니었다.
신이 정해준 절대적 질서가 있다고 믿었던 세계에서, 인간의 경험과 판단을 기준점으로 놓겠다는 선언이었다.
신학이 철학을 지배하던 시대에 그것은 위험한 생각이었다.
플라톤은 「테아이테토스」에서 이 명제를 정면으로 반박했다.
만약 각자에게 진리가 다르다면, 프로타고라스의 이 주장 자체도 누군가에게는 거짓일 수 있다.
그렇다면 그 주장은 스스로를 무너뜨린다.
플라톤의 비판은 날카로웠다.
아리스토텔레스는 「형이상학」에서 한 발 더 나아갔다.
같은 것이 동시에 참이기도 하고 거짓이기도 할 수는 없다.
모순율은 논리의 토대다.
프로타고라스는 그 토대를 건드렸고, 아리스토텔레스는 그를 모순율 위반자로 규정했다.
한 문장이 반박당하기 시작한 지 2천 년이 넘었다.
그런데도 그 문장은 아직 살아있다.
계몽주의는 신이 아닌 인간의 이성을 기준으로 삼았고, 현대 인식론은 여전히 관찰자의 위치를 묻는다.
반박당한 명제가 이렇게 오래 살아남는 경우는 드물다.
프로타고라스에게는 또 다른 책이 있었다.
제목은 「신들에 관하여」.
그 책의 첫 문장도 간결했다.
"신들에 관해서, 나는 그들이 존재하는지 존재하지 않는지 알 수 없다."
기원전 5세기 아테네에서 이 문장을 공개적으로 쓴다는 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오늘날의 감각으로는 가늠하기 어렵다.
종교는 국가와 분리되어 있지 않았다.
신을 모욕하는 것은 도시 전체를 위험에 빠뜨리는 행위로 여겨졌다.
법정에서 불경죄(아세베이아)는 사형까지 가능한 중죄였다.
소크라테스가 바로 이 죄목으로 죽었다는 사실을 기억하라.
아테네는 프로타고라스를 기소했다.
그러나 그것으로 끝나지 않았다.
키케로와 디오게네스 라에르티오스의 기록에 따르면, 당국은 아테네 시민들이 소유한 그의 책을 모두 수거했다.
그리고 아고라, 모든 시민이 모이는 광장의 한복판에서 두루마리를 불태웠다.
서양 사상사 최초의 공개 분서 사건이었다.
프로타고라스는 재판을 기다리지 않았다.
배를 타고 아테네를 떠났다.
목적지는 시칠리아였다.
그 배는 도착하지 못했다.
난파였다.
짐꾼의 논리가 철학자의 눈에 걸렸던 날로부터, 광장의 불길과 바다의 파도 사이에서 모든 것이 끝났다.
그의 글은 거의 남아 있지 않다.
남은 것은 단편들과, 그를 반박하기 위해 쓰인 글들 속의 인용뿐이다.
그런데 이상한 일이 있다.
어떤 사상은 타서 사라지는 대신, 타면서 더 오래 기억된다.
그의 책이 아고라에서 불탔다는 사실이 기록에 남았고, 그 기록 덕분에 우리는 그 문장들이 얼마나 위험하게 여겨졌는지를 안다.
위험하게 여겨진 생각은 오히려 지워지지 않는다.
인간이 만물의 척도라고 썼던 그 남자.
자신의 책이 공공장소에서 타는 것을 보았는지, 혹은 이미 바다 위에 있었는지는 알 수 없다.
기록은 거기서 멈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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