햇빛 좀 가리지 마라디오게네스
햇빛 좀 가리지 마라디오게네스
1666년, 옥스퍼드의 한 젊은 의학도는 귀족의 뱃속을 들여다보고 있었다.
환자는 앤서니 애슐리 쿠퍼, 샤프츠베리 백작이었다.
간에 낭종이 생겼고, 고름이 차오르고 있었다.
당시 기준으로도 까다로운 수술이었다.
존 로크는 그 수술에 참여했다.
정확히 어디까지 손을 댔는지는 기록이 엇갈리지만, 이 치료 과정에서 백작과 의사 사이에 신뢰가 생겼다는 것만은 분명하다.
백작은 회복했다.
그리고 그는 로크를 집 안으로 들였다.
처음에는 주치의로.
곧이어 개인 비서로.
마침내는 정치 자문으로.
로크는 의학 논문 대신 토지법과 관세 정책을 검토하기 시작했다.
해부학 교실에서 의회 문서가 쌓인 서재로 옮겨간 것이다.
그 전환점에 간 농양이 있었다.
생각해보면 묘한 일이다.
인체의 내부를 들여다보는 훈련이, 결국 국가라는 몸의 내부를 해부하는 데 쓰인 것이다.
샤프츠베리 백작은 조용한 사람이 아니었다.
그는 찰스 2세 치하에서 한때 대법관까지 올랐다가, 왕과 갈등을 빚고 실각했다.
가톨릭 왕위 계승에 반대했고, 의회의 권한 확대를 주장했다.
당시 영국 정치의 뜨거운 전선 한가운데 서 있던 인물이었다.
1683년, 그 전선이 무너졌다.
찰스 2세와 동생 제임스를 암살하려 했다는 음모가 발각되었다.
이른바 라이하우스 음모였다.
백작이 얼마나 깊이 연루되었는지는 논란이 있었지만, 분위기는 이미 돌아섰다.
그는 네덜란드로 도주했고, 이듬해 암스테르담에서 사망했다.
로크의 차례가 왔다.
그는 직접 음모에 가담했다는 증거가 없었다.
하지만 이미 충분히 위험했다.
샤프츠베리의 측근이라는 사실만으로도 감시 대상이 되기에 충분했던 시대였다.
그해 로크 역시 영국을 떠났다.
야반도주에 가까운 출국이었다.
옥스퍼드 크라이스트처치 칼리지는 왕의 명을 받아 그를 제적했다.
33년간 몸담았던 자리였다.
집, 직위, 귀국 가능성 — 세 가지를 동시에 잃었다.
네덜란드에서 그는 숨었다.
가명을 썼고, 이사를 반복했으며, 편지조차 조심스럽게 보냈다.
영국 정부는 그의 송환을 요청했다.
대사가 그의 소재를 파악하려 했다.
그러나 그는 계속 썼다.
다락방에 상자 하나 분량의 원고가 쌓여갔다.
한 무더기는 『통치론 두 논고』였다.
다른 무더기는 『인간지성론』이었다.
두 원고는 성격이 달랐다.
『인간지성론』은 인간이 어떻게 무언가를 안다고 말할 수 있는지를 파고들었다.
태어날 때부터 진리가 머릿속에 새겨져 있다는 데카르트식 주장을 정면으로 반박했다.
모든 지식은 경험에서 온다.
갓 태어난 정신은 백지(tabula rasa)다.
이것이 그의 답이었다.
『통치론』은 더 직접적이었다.
당시 영국의 지배 이념 중 하나는 왕권신수설이었다.
왕은 신이 임명한 자이므로, 왕에게 저항하는 것은 신에게 저항하는 것이다.
왕의 권력은 검증의 대상이 아니다.
로크는 이 논리를 처음부터 다시 물었다.
왜 누군가가 다른 사람을 통치할 수 있는가.
그 권한은 어디서 오는가.
그의 대답은 간단했다.
사람은 태어날 때부터 생명, 자유, 재산에 대한 권리를 가지고 있다.
정부는 이 권리를 보호하기 위해 만들어진 것이다.
만약 정부가 오히려 이 권리를 침해한다면, 사람들은 그 정부를 바꿀 수 있다.
반역죄 혐의를 받으며 도망친 사람이, 망명지 다락방에서 반역의 정당성을 이론적으로 정리한 것이다.
두 원고 모두 익명으로 출판되었다.
살아있는 동안 자기 이름을 밝히지 않았다.
1688년, 영국이 흔들렸다.
제임스 2세는 가톨릭 신자였고, 의회와의 갈등이 깊어졌다.
귀족들은 네덜란드 총독 오라녀 공 빌럼에게 편지를 보냈다.
와서 왕위를 가져가라는 내용이었다.
그해 11월, 빌럼의 함대가 영국 해협을 건넜다.
제임스 2세는 도주했고, 피 한 방울 흘리지 않았다.
역사는 이것을 명예혁명이라 불렀다.
로크는 1689년 2월, 새 여왕이 된 메리 2세의 호위 함대와 같은 배에 올랐다.
추방당한 지 6년 만의 귀환이었다.
그가 떠날 때와 돌아올 때의 영국은 같은 나라가 아니었다.
의회가 왕보다 위에 서는 나라가 되어 있었다.
귀국 직후 『통치론 두 논고』가 출판되었다.
로크는 이 책의 서문에서 이것이 명예혁명을 설명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고 썼다.
하지만 타이밍은 말을 달리했다.
의회가 왕을 교체할 수 있다는 것을 방금 증명해 보인 나라에서, 왜 의회가 왕을 교체할 수 있는지를 설명하는 책이 나온 것이다.
새 정권은 이론적 토대를 얻었다.
로크는 반역자 신세를 면했다.
그러나 그는 끝내 자기 이름을 책에 올리지 않았다.
로크가 죽은 것은 1704년이었다.
그로부터 70여 년이 흐른 1776년, 필라델피아의 한 서재에서 토머스 제퍼슨이 펜을 들었다.
그의 책상 위에는 여러 권의 책이 펼쳐져 있었다.
그 가운데 로크의 『통치론』이 있었다.
제퍼슨이 써야 할 것은 새 나라의 건국 선언이었다.
왜 식민지 주민들이 영국 왕의 지배에서 벗어날 권리가 있는지를 설명해야 했다.
그는 로크의 언어를 빌려왔다.
로크가 쓴 자연권의 목록은 '생명, 자유, 재산'이었다.
제퍼슨은 이를 '생명, 자유, 행복의 추구'로 바꿨다.
재산을 행복의 추구로 바꾼 것은 제퍼슨의 선택이었지만, 그 뼈대는 암스테르담 다락방에서 온 것이었다.
반역 혐의를 받고 야밤에 배에 올랐던 사람의 원고가, 한 세기 뒤 새 국가의 첫 번째 문장이 된 것이다.
독립선언문은 이렇게 시작한다.
"모든 사람은 평등하게 창조되었으며, 창조주로부터 양도할 수 없는 일정한 권리를 부여받았다."
왕이 신으로부터 통치권을 받았다는 논리를 뒤집어, 이제는 모든 사람이 신으로부터 권리를 받았다고 말한 것이다.
로크가 다락방에서 뒤집어놓은 논리가, 대서양을 건너 새로운 형태로 완성되었다.
1666년, 한 젊은 의사가 귀족의 뱃속에 손을 댔다.
그 인연이 정치 자문으로, 망명으로, 원고로, 혁명의 언어로 이어졌다.
그리고 그 언어는 지금도 어딘가에서 계속 읽히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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