햇빛 좀 가리지 마라디오게네스
햇빛 좀 가리지 마라디오게네스
학교 도서관에서 책을 빌릴 때, 우리는 보통 별생각이 없다.
그냥 빌리고, 읽고, 반납한다.
그런데 어떤 사람에게는 그 책 한 권이 인생 전체의 방향을 바꿔버리는 나침반이 된다.
1888년, 남인도의 작은 도시 티루타니에서 태어난 소년 사르베팔리 라다크리슈난이 딱 그랬다.
아버지는 소작농이었다.
집에는 돈이 없었다.
학교에 다닌다는 것 자체가 기적에 가까운 일이었는데, 그 기적을 가능하게 해준 것은 장학금이었다.
라다크리슈난은 장학금을 받기 위해 공부했고, 공부하다 보니 철학이 눈에 들어왔다.
정확히는 사촌 형이 쓰던 철학 교재를 물려받으면서 시작된 인연이었다.
헌 책이었다.
표지도 닳고, 페이지 모서리도 접혀 있었다.
그런데 그 헌 책 속에 적혀 있던 힌두 철학의 문장들이 소년의 머릿속에 들불처럼 번졌다.
'세상은 왜 존재하는가.'
'나는 무엇인가.'
'신과 인간은 어떤 관계인가.'
열두 살짜리 아이가 이런 질문을 붙들고 씨름하기 시작했다는 게 놀랍지만, 생각해보면 이해가 된다.
돈도 없고, 빽도 없고, 미래도 불투명한 상황에서 철학은 유일하게 공평한 무기였으니까.
누가 막을 수 없는 세계.
생각만 있으면 누구든 들어갈 수 있는 문.
그 문을 라다크리슈난은 두 손으로 밀어젖혔다.
마드라스 크리스천 칼리지에서 그는 철학 석사 학위를 받았다.
졸업 논문 주제는 '베단타 윤리의 기초'였다.
스물한 살이었다.
가난한 소작농의 아들이, 헌 교재 한 권으로 시작해서, 인도 전통 철학의 핵심을 학술 언어로 정리해낸 것이다.
이건 성공 스토리가 아니다.
이건 도구를 손에 쥔 사람의 이야기다.
비유를 하나 해보자.
당신이 오랫동안 살아온 동네의 언어를 처음 온 외지인에게 설명해야 한다고 상상해보라.
단어 하나하나를 번역하면 의미가 사라진다.
"눈치"를 영어로 어떻게 옮기겠는가.
"정(情)"은?
"한(恨)"은?
단어가 없다는 건 개념이 없다는 뜻이 아니다.
그 문화에 뿌리를 내리고 있어서 그냥 번역이 안 되는 것뿐이다.
라다크리슈난이 직면한 문제가 바로 이거였다.
우파니샤드, 즉 수천 년 된 인도의 철학 문헌들은 서양인들에게 거의 알려지지 않았다.
알려진다 해도 '이국적인 신비주의' 정도로 취급받았다.
인도 철학은 종교적 미신이고, 서양 철학이 진짜 학문이라는 무언의 위계가 존재했다.
라다크리슈난은 그 위계에 정면으로 맞섰는데, 방식이 흥미롭다.
"당신들의 언어로 다시 써드리겠습니다."
그는 우파니샤드를 번역하지 않았다.
대화로 바꿨다.
칸트가 말한 '현상과 본질의 구분'을 인도 철학의 '마야(Maya)', 즉 환영과 실재의 개념과 나란히 놓았다.
헤겔의 절대정신이 흐르는 방향을 브라흐만, 즉 우주적 자아의 개념과 비교했다.
"보세요, 당신들도 이미 이걸 고민했잖아요.
단지 다른 이름으로 불렀을 뿐이에요."
이 전략은 서양 독자들에게 강력하게 작동했다.
낯선 것을 낯선 채로 들이밀면 사람들은 문을 닫는다.
하지만 익숙한 것 안에서 새로운 것을 발견하게 해주면, 사람들은 스스로 문을 열고 들어온다.
그가 쓴 『인도 철학의 역사』는 영어권 세계에서 인도 사상을 학문으로 받아들이게 만든 결정적인 책이 됐다.
1000페이지가 넘는 두 권짜리 책이었지만, 사람들은 읽었다.
그가 통역사가 아니라 다리를 놓는 사람이었기 때문이다.
통역사는 한쪽의 말을 다른 쪽에 전한다.
다리를 놓는 사람은 양쪽이 직접 만날 수 있게 해준다.
1936년.
옥스퍼드 대학교가 식민지 인도 출신의 학자를 동양 종교 및 윤리학 석좌교수로 임명했다.
제국의 심장부, 세계에서 가장 권위 있는 대학 중 하나에서 식민지 인의 자리를 만든 것이다.
이게 얼마나 파격적인 일인지 감을 잡으려면, 당시 맥락이 필요하다.
1936년은 인도가 아직 영국 식민지였던 시절이다.
영국인들은 인도를 '문명화가 필요한 땅'으로 보는 시선을 공식적으로는 아니더라도 암묵적으로 유지하고 있었다.
그런 분위기 속에서 인도 철학자가 영국 교수들 앞에 서서 강의를 시작했다.
그의 전략은 옥스퍼드에서도 같았다.
"여러분이 이미 아는 것에서 시작하겠습니다."
플라톤의 이데아론을 꺼냈다.
그러고 나서 말했다.
"인도에도 2000년 전에 비슷한 논의가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쪽에서는 이 질문을 이렇게 풀었어요."
청중은 저항하기가 어려웠다.
상대방의 언어로 말을 걸어오면, 방어막이 느슨해진다.
자기 세계에서 출발해서 다른 세계로 안내받으면, 그게 낯선 곳이어도 발을 들여놓게 된다.
강의가 끝나면 박수가 나왔다.
때로는 기립 박수였다.
식민지 출신 학자가 제국의 학자들로부터 기립 박수를 받는 장면.
그게 1930년대 옥스퍼드에서 실제로 벌어진 일이다.
라다크리슈난은 거기서 멈추지 않았다.
그는 유네스코 철학·인문과학 부문 의장을 맡았고, 소련 대사로 임명되었으며, 스탈린과 직접 마주 앉아 대화를 나눈 인물이 됐다.
철학자가 외교관이 됐다.
말로 다리를 놓던 사람이, 나라와 나라 사이에도 다리를 놓기 시작했다.
플라톤이 꿈꿨던 것이 있다.
'철인왕(哲人王)'.
지혜를 갖춘 철학자가 나라를 다스려야 한다는 생각이었다.
그런데 플라톤도 살면서 그 꿈이 실현되는 걸 보지 못했다.
시라쿠사에 가서 시도해봤다가 오히려 노예로 팔릴 뻔 했으니까.
그로부터 2400년이 지난 1962년, 인도에서 플라톤의 꿈이 실제로 이뤄졌다.
사르베팔리 라다크리슈난이 인도 공화국의 2대 대통령이 된 것이다.
철학자가 대통령이 됐다.
이게 어떤 의미인지 생각해보자.
대부분의 정치인은 철학을 수단으로 쓴다.
필요할 때 그럴듯한 말을 빌려다 쓰고, 상황이 바뀌면 다른 말을 찾는다.
라다크리슈난은 달랐다.
그는 대통령궁에 들어가면서도 철학자였다.
책을 계속 읽었다.
강연도 계속 했다.
외국 국가원수들을 만날 때도, 상대의 철학적 배경을 파악하고 그 언어로 대화를 시작했다.
닉슨을 만났을 때도, 영국 여왕을 만났을 때도, 그는 '인도 대통령'이기 이전에 '대화하는 사람'이었다.
물론 그도 완전히 자유롭지는 않았다.
1962년에는 중국과의 국경 분쟁이 인도의 패배로 끝났고, 그 정치적 충격 속에서 그의 임기는 흔들렸다.
철학자가 정치의 현실과 부딪히는 순간들이 있었다.
하지만 그 흔들림 속에서도 그가 끝까지 놓지 않은 것이 있었다.
"권력의 목적은 사람을 위하는 것이다.
사상의 역할은 그 방향을 잡는 것이다."
대통령직을 마친 후, 그는 다시 글을 쓰기 시작했다.
대통령이 된 철학자가 아니라, 철학자로 남은 대통령이었다.
라다크리슈난이 대통령이 됐을 때, 그의 제자들과 친구들이 찾아왔다.
9월 5일, 그의 생일을 축하하기 위해서였다.
꽃을 가져왔고, 케이크도 있었을 것이다.
그런데 라다크리슈난이 손을 들어 말렸다.
"내 생일을 축하하지 마세요."
잠깐의 침묵이 흘렀을 것이다.
그러고 나서 그가 말을 이었다.
"9월 5일을 선생님들을 기리는 날로 만들어주세요.
인도 전역의 교사들에게 감사를 전하는 날로 삼아주세요."
이 말 한마디가 역사가 됐다.
1962년 이후, 인도에서 9월 5일은 '티처스 데이(Teachers' Day)', 즉 스승의 날이 됐다.
대통령의 생일이 나라 전체의 감사의 날이 된 것이다.
왜 그는 이런 선택을 했을까.
그의 삶을 뒤돌아보면 이해가 된다.
라다크리슈난에게 철학을 가르쳐준 것은 선생님들이었다.
가난한 집에서 태어난 그에게 세상을 향한 창문을 열어준 것은 책이었고, 그 책을 읽는 법을 가르쳐준 것은 선생님들이었다.
그는 그 빚을 평생 잊지 않았다.
더 중요한 것은, 그가 교육을 개인의 성공 수단이 아니라 사회를 바꾸는 힘으로 봤다는 점이다.
"교육의 목적은 인간을 기계가 아니라 인간으로 만드는 것이다."
그가 남긴 말이다.
선생님은 그 과정에서 가장 중요한 사람이다.
지식을 전달하는 것만이 아니라, 생각하는 방법을 가르치고, 세상을 바라보는 눈을 열어주고, '나는 누구인가'라는 질문을 처음으로 품게 해주는 사람.
라다크리슈난 자신이 그 질문을 열두 살에 붙들었고, 그 덕분에 마드라스의 가난한 소년이 옥스퍼드 교수를 거쳐 인도 대통령까지 걸어갈 수 있었다.
그러니까 그의 선택은 겸손한 척이 아니었다.
진심이었다.
"내가 여기까지 온 것은 나 혼자가 아니었다.
그러니 내 생일을 나만의 날로 쓰지 말자."
오늘도 인도의 학교에서는 9월 5일이 되면 아이들이 선생님께 꽃을 드린다.
마리골드 화환을 들고, 손을 모으고, 고개를 숙인다.
그 장면 뒤에는 티루타니의 가난한 소년이 있다.
헌 철학 책을 붙들고 세상의 문을 두드리던, 그리고 평생 그 문을 더 많은 사람에게 열어주려 했던 사람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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