햇빛 좀 가리지 마라디오게네스
햇빛 좀 가리지 마라디오게네스
1890년, 런던 킹스 칼리지 입학시험 결과가 발표되었을 때 한 인도 청년의 이름이 1위에 올랐다.
그는 7살에 영국으로 건너가 라틴어와 그리스어를 씹어 먹었다.
케임브리지에서는 고전문학으로 장학금을 받았고, 교수들은 그를 천재라고 불렀다.
영국 식민지 관료가 되는 일만 남아 있었다.
그 길은 안정적이고, 명예롭고, 예측 가능했다.
그런데 오로빈도 고시는 말 한 마리를 일부러 잃었다.
인도 식민지 행정관이 되려면 승마 시험을 통과해야 했다.
그는 시험장에 나타났다가, 말을 타지 않고 돌아갔다.
의도적으로 탈락한 것이다.
왜?
그 무렵 인도에서는 무언가가 끓고 있었다.
영국의 분할 통치에 분노한 젊은이들이 거리로 나오고 있었다.
오로빈도는 케임브리지 기숙사에서 인도 민족주의 팸플릿을 읽으며 가슴이 뛰었다.
그는 인도로 돌아왔다.
엘리트 관료가 아니라 혁명가로.
바로다 공국에서 교수직을 얻었지만, 밤에는 비밀결사를 조직했다.
영국 제국주의에 저항하는 글을 써서 신문에 뿌렸다.
그리고 급기야 폭탄 제조 매뉴얼이 담긴 편지와 연루되었다는 혐의로 체포되었다.
서른다섯 살의 케임브리지 출신 지식인이 알리포어 감옥에 갇혔다.
감옥은 보통 사람을 부순다.
몸이 먼저 무너지고, 그다음엔 의지가 무너진다.
하지만 오로빈도에게는 다른 일이 일어났다.
독방은 조용했다.
밖에서 그를 바쁘게 만들던 것들 — 혁명, 연설, 음모 — 이 전부 사라졌다.
남은 건 벽과 창살과 자기 자신뿐이었다.
그는 명상을 시작했다.
처음엔 잡념이 홍수처럼 밀려왔다.
재판 결과는? 내 동료들은? 인도의 미래는?
하지만 1년이라는 시간은 길었다.
파도가 잦아들면 바다 밑이 보이듯, 생각의 소음이 멈추자 그 아래 무언가가 있었다.
오로빈도는 훗날 이것을 이렇게 적었다.
"감옥 담장 너머 나무들이 보였다.
나는 나무 안에서 신을 보았다.
죄수들의 얼굴을 보았다.
나는 그 얼굴들 안에서도 신을 보았다."
단순한 종교적 감동이 아니었다.
무언가가 시각 자체가 바뀌는 경험이었다.
세상을 바꾸려던 사람이 세상을 이해하려는 사람이 되었다.
총이 아니라 의식으로 혁명을 꿈꾸게 되었다.
재판은 무죄로 끝났다.
오로빈도는 감옥을 걸어나왔다.
그러나 들어간 사람과 나온 사람은 달랐다.
혁명가가 철학자가 되는 순간이었다.
잠깐, 애벌레 이야기를 해보자.
애벌레는 열심히 산다.
나뭇잎을 먹고, 기어 다니고, 포식자를 피한다.
자기가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한다.
그런데 어느 순간 고치 속으로 들어가 녹아버린다.
문자 그대로 녹는다.
세포가 허물어지고, 이전의 '애벌레다움'은 사라진다.
그리고 나비가 된다.
나비는 애벌레가 상상도 못 했던 방식으로 존재한다.
하늘을 난다.
꽃가루를 나른다.
수백 킬로미터를 이동한다.
오로빈도의 핵심 주장은 이것이다.
"인간은 아직 애벌레 단계다."
인간이 최종 진화 형태라고 생각하는 건, 애벌레가 '이게 존재의 끝이야'라고 믿는 것과 같다는 것.
그는 이 다음 단계를 초정신(Supermind)이라고 불렀다.
초정신을 초능력이나 ESP 같은 것으로 오해하면 안 된다.
오로빈도가 말한 건 의식의 질적 도약이다.
지금 우리의 마음은 어떻게 작동하는가?
분석한다. 쪼갠다. 비교한다. 판단한다.
나는 여기, 세계는 저기, 라는 분리된 감각으로 움직인다.
초정신은 그 분리가 사라진 상태다.
부분이 아니라 전체를 동시에 인식하는 의식.
강을 작은 컵으로 퍼 올리는 게 아니라, 강 자체가 되는 것.
여기서 자연스러운 질문이 나온다.
"그래서 그게 가능하긴 한 건가요?"
오로빈도의 대답은 단순했다.
"나는 그 방향으로 가는 길을 찾고 있다.
그리고 그 실험을 삶 전체로 하겠다."
무죄 석방 이후, 오로빈도는 영국 경찰의 감시를 받았다.
또 다른 체포가 언제 올지 몰랐다.
현명한 선택은 몸을 숨기는 것이었다.
그는 프랑스령 퐁디셰리로 내려갔다.
영국 관할이 아닌 곳.
바다가 보이는 조용한 해안 도시.
많은 사람이 이것을 도피라고 불렀다.
혁명 대신 명상을 선택한 비겁함이라고.
하지만 오로빈도의 관점은 달랐다.
"나는 실험실을 바꿨을 뿐이다."
이전 실험실은 거리와 신문과 비밀결사였다.
새 실험실은 내면과 공동체와 삶 자체였다.
퐁디셰리에서 그는 아쉬람을 세웠다.
아쉬람은 단순한 수도원이 아니었다.
그곳은 인간이 다른 방식으로 살 수 있는가를 실험하는 공간이었다.
그리고 결정적인 인물이 등장했다.
미라 알파사, 훗날 '어머니(The Mother)'라 불리는 프랑스 여성이었다.
그녀는 예술가이자 신비주의자였다.
파리에서 오로빈도의 글을 읽고, 직접 퐁디셰리로 찾아왔다.
두 사람은 기이한 협력을 시작했다.
오로빈도는 철학을 썼다.
미라는 공동체를 운영했다.
아쉬람은 서서히 자랐다.
인도, 유럽, 미국에서 사람들이 모여들었다.
함께 명상하고, 함께 밥을 먹고, 함께 텃밭을 가꿨다.
그것이 실험이었다.
초정신을 향한 인간의 가능성을 일상 속에서 테스트하는 것.
오로빈도는 이 아쉬람에서 40년을 보냈다.
방에서 글을 쓰고, 명상하고, 제자들을 만났다.
1950년 78세로 눈을 감았다.
그런데 이야기는 여기서 끝나지 않는다.
철학자가 죽으면 보통 책만 남는다.
하지만 오로빌(Auroville)이 생겼다.
1968년, 오로빈도가 세상을 떠난 지 18년 후.
미라 알파사는 퐁디셰리 외곽의 붉은 흙 위에 새로운 도시를 세우겠다고 선언했다.
국가도 없고, 종교도 없고, 돈을 목적으로 하지 않는 도시.
인류가 하나의 공동체로 살아보는 실험.
124개국에서 온 2,400명의 사람들이 지금도 그곳에 산다.
학교가 있고, 병원이 있고, 유기농 농장이 있다.
태양광으로 에너지를 만들고, 메마른 토지를 숲으로 바꿨다.
그리고 도시 한가운데 황금빛 구체 건물이 서 있다.
마트리만디르(Matrimandir).
내부에는 세계 최대의 광학 수정 구슬이 있다.
천장에서 들어오는 한 줄기 빛이 그 구슬에 집중된다.
방문객은 그 빛 앞에서 조용히 앉아 있는다.
명상 공간이다.
하지만 어떤 신의 이름도 적혀 있지 않다.
유네스코는 오로빌을 공식 지원하는 국제 프로젝트로 인정했다.
인도 정부는 특별 자치 지역으로 지정했다.
오로빈도가 독방에서 눈을 감았을 때 보았던 것.
분리가 아닌 연결, 경쟁이 아닌 공존, 소유가 아닌 탐구.
그것이 지금 이 순간에도 붉은 흙 위에서 건설되고 있다.
애벌레가 고치 속에서 녹아내리듯.
아직 완성되지 않았고, 여전히 실험 중이다.
하지만 어쩌면, 그게 요점인지도 모른다.
나비는 한 번에 완성되지 않는다.
고치 속에서 충분한 시간을 보낸 뒤에야, 날개를 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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