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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에는 덕이면 충분하다안티스테네스

세계 최초의 기계식 계산기를 만든 건 천재 수학자가 아니라, 아버지가 안쓰러웠던 19살 아들이었어요.
1642년, 블레즈 파스칼의 아버지는 세무관이었어요.
세무관은 오늘날로 치면 세금을 계산하고 걷는 공무원인데, 그 시절엔 계산기 자체가 없었으니 매일 밤 장부를 손으로 더해야 했어요.
파스칼은 그 모습을 보다 결심했어요.
"아버지가 매일 이 숫자들이랑 씨름하는 걸 내가 어떻게든 해줄 수 없을까."
그래서 만들어낸 게 파스칼린이에요.
톱니바퀴가 맞물려 돌아가는 기계식 계산기로, 다이얼을 돌려 숫자를 입력하면 자동으로 덧셈이 됐어요.
오늘날 자식이 부모님 스마트폰에 가계부 앱을 깔아주는 장면과 똑같아요. 단지 앱 대신 황동 기계를 손으로 만들었을 뿐이고요.
그는 평생 이 계산기를 50여 대 직접 제작했어요.
그중 9대가 지금도 박물관에 남아 있어요.
인류 역사상 첫 기계식 계산기의 출발점이 수학적 야망이 아닌 효심이었다는 게, 묘하게 따뜻해요.

확률론은 학자의 사색이 아니라, 도박꾼의 짜증 섞인 질문에서 시작됐어요.
1654년, 슈발리에 드 메레라는 귀족이 파스칼에게 투덜거렸어요.
그는 상습 도박꾼이었는데, 카드 게임을 하다 중간에 누군가 빠지면 판돈을 어떻게 나눠야 공정한지 몰라서 매번 싸웠거든요.
친구들과 오천 원씩 걸고 게임하다 절반쯤 했을 때 한 명이 먼저 가버리는 그 상황이에요.
파스칼은 이 질문을 수학자 페르마에게 편지로 전달했어요.
둘이 주고받은 편지가 근대 확률론의 시작이 됐어요.
오늘날 보험료를 계산하고, 주식 리스크를 측정하고, 의학 임상 결과를 해석하는 모든 통계의 뿌리예요.
그런데 타이밍이 더 놀라워요.
같은 해인 1654년, 파스칼은 파리에 세계 최초의 대중교통 노선도 기획했어요.
5수짜리 동전 하나면 탈 수 있는 마차 노선이었는데, 오늘날 버스 노선이랑 거의 같아요.
확률론과 대중교통을 같은 해에 만든 이 사람이, 그해 말 모든 걸 버리고 종교로 들어갔어요.
가장 세속적인 해가 동시에 마지막 세속의 해였던 거예요.

1654년 11월 23일의 두 시간이 파스칼의 인생을 둘로 갈랐어요.
밤 10시 30분, 31살의 파스칼은 방 안에 혼자 있었어요.
두 시간 뒤인 새벽 0시 30분, 그는 양피지를 꺼내 무언가를 갈겨쓰기 시작했어요.
그 두 시간 사이에 무슨 일이 있었는지는 아무도 몰라요.
첫 단어는 "FEU"였어요.
프랑스어로 "불"이라는 뜻이에요.
그다음 이어진 문장이 이거예요.
"아브라함의 신, 이삭의 신, 야곱의 신. 철학자들의 신이 아닌."
수십 년간 논리와 수학으로 세상을 이해해온 사람이, 그 언어 바깥의 무언가를 봤다는 거예요.
이 양피지가 훗날 메모리알(Memorial)이라 불려요.
단 한 번의 밤에 쓴 짧은 증언서인데, 파스칼 연구자들에게는 그의 내면을 들여다볼 수 있는 유일한 창이에요.
야근으로 새벽 2시까지 일하다가 갑자기 "내가 왜 이걸 하고 있지"라는 생각이 와서 다음 날 아침 사직서를 내는 사람, 그 심경과 비슷했을 거예요.
하지만 파스칼은 정말로 수학 노트를 덮었어요.
이후 8년간 수학을 거의 하지 않고 신학에만 매달렸어요.

하인이 외투를 뜯어보지 않았다면, 파스칼의 인생을 바꾼 그 밤은 영원히 비밀로 남았을 거예요.
1662년, 39세의 파스칼이 세상을 떠났어요.
며칠 뒤, 하인이 유품을 정리하다 외투 안감을 만졌는데 뭔가 딱딱한 게 느껴졌어요.
꿰매어진 천을 뜯어보니, 접힌 양피지 한 장이 나왔어요.
펼쳐보니 8년 전 그 밤에 쓴 메모리알이었어요.
파스칼은 새 옷을 맞출 때마다 그 양피지를 뜯어서 새 옷 안감에 다시 꿰맸어요.
살아있는 동안 단 한 번도 누군가에게 보여주지 않았어요.
누구에게도 꺼내 보이지 않은 일기 한 장을 평생 몸에 달고 다닌 거예요.
그가 죽고 8년 뒤인 1670년, 유고를 모은 팡세(Pensées)가 출간됐어요.
"생각들"이라는 뜻으로, 완성되지 못한 신학 단상들을 묶은 책이에요.
거기에 파스칼의 내기라는 논증이 담겨 있어요.
"신이 있을 수도 없을 수도 있어. 근데 있다는 쪽에 거는 게 합리적인 선택이야."
신이 없으면 잃을 게 없고, 있으면 모든 걸 얻으니까요.
확률로 세상을 설명하던 수학자의 마지막 계산이었을지도 모르겠어요.
외투 안감에 양피지를 꿰매고 다닌 사람이 남긴 가장 유명한 문장이 결국 "어디에 거는 게 합리적인가"라는 도박의 언어였다는 게, 이상하게 앞뒤가 맞아요.
그 양피지가 발견되지 않았다면, 우리는 파스칼의 절반밖에 몰랐을 거예요.
TTS 음성이 없어요.
아래 버튼으로 나레이션을 생성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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