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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에는 덕이면 충분하다안티스테네스

1919년 빈 거리에서 총성이 울렸을 때, 열여섯 살 소년은 자기가 믿던 사상이 방금 사람을 죽였다는 사실을 깨달았어요.
카를 포퍼는 그 나이에 이미 열렬한 마르크스주의자였어요.
혁명이 세상을 더 나은 곳으로 만든다고 믿었고, 공산당 시위대와 함께 빈 거리로 나갔어요.
그런데 경찰이 총을 쐈고, 옆에 있던 동료 청년들이 쓰러졌어요.
그 순간 포퍼의 머릿속을 스친 건 슬픔이 아니라 의심이었어요.
"혁명을 위해서라면 이 죽음도 감수해야 한다"는 논리가 갑자기 낯설게 느껴졌거든요.
누군가의 목숨을 수단으로 쓰는 사상이라면, 그게 정말 '인류를 위한' 사상일 수 있을까요?
몇 주 만에 포퍼는 마르크스주의를 완전히 떠났어요.
그리고 훗날 마르크스주의를 가장 정밀하게 해부한 철학자가 된 건, 어쩌면 당연한 일이었어요.
내부에서 직접 믿어본 사람만이 그 논리의 약점을 정확히 알 수 있으니까요.

과학자에게 가장 정직한 문장은 "이러면 내가 틀린 거다"예요.
포퍼는 이 한마디를 과학과 사이비의 국경선으로 그었어요.
포퍼는 당시 유럽을 흔들던 세 가지 이론을 나란히 놓고 비교했어요.
아인슈타인의 상대성이론, 프로이트의 정신분석, 그리고 마르크스의 역사 유물론이었어요.
역사 유물론은 "역사는 계급 투쟁에 의해 필연적으로 발전한다"는 마르크스의 핵심 주장이에요.
아인슈타인은 달랐어요.
"1919년 일식 때 별빛이 굽지 않으면 내 이론은 틀린 것"이라고 직접 말했어요.
실제로 관측이 이뤄졌고, 별빛은 굽었어요. 이론이 살아남은 거예요.
반면 프로이트와 마르크스의 이론은 어떤 결과가 나와도 "역시 내 말이 맞아"로 해석할 수 있었어요.
환자가 치료되면 "무의식이 해소됐다", 치료되지 않으면 "저항이 심하다"는 식이에요.
포퍼가 보기에 이건 이론이 아니라 믿음이었어요.
우리는 보통 "증명된 것"이 과학이라고 생각해요.
하지만 포퍼는 정반대로 선언했어요.
"틀릴 수 있는 것"만이 과학이다. 반증이 불가능한 이론은 무엇이든 설명할 수 있는 척하지만, 사실은 아무것도 설명하지 못해요.
"난 뭘 해도 네 탓이야"라고 말하는 사람과 대화가 안 되는 이유가 이거예요.
어떤 반론도 통하지 않는 논리는 논리가 아니에요.
그건 그냥 닫힌 주문이에요.

1943년, 유럽이 불타는 동안 포퍼는 양떼가 보이는 뉴질랜드 서재에 앉아 플라톤을 고발하고 있었어요.
1937년 포퍼는 유대계라는 이유로 목숨의 위협을 느꼈어요.
이듬해 나치 독일이 오스트리아를 합병하면서 그의 예감은 현실이 됐어요.
그는 이미 지구 반 바퀴를 돌아 뉴질랜드 캔터베리 대학에 자리를 잡아둔 상태였어요.
크라이스트처치는 당시 세계에서 가장 조용한 도시 중 하나였어요.
런던도, 파리도, 베를린도 아닌 곳에서 포퍼는 전쟁 내내 책상에 앉아 있었어요.
유럽 전장에서 쏟아지는 뉴스를 들으며, 그는 한 가지 질문에만 집중했어요. "전체주의는 어디서 왔는가?"
그 답을 찾아 무려 2000년을 거슬러 올라갔어요.
결론은 충격적이었어요. 히틀러와 스탈린의 사상적 뿌리가 서양 철학의 시조 플라톤에 닿는다는 거예요.
"이상적인 사회를 만들기 위해 철인(哲人)이 통치해야 한다"는 플라톤의 주장이, 결국 "완벽한 사회를 위해 개인을 희생할 수 있다"는 논리로 이어진다는 게 포퍼의 고발이었어요.
그렇게 쓴 책이 《열린사회와 그 적들》이에요.
하지만 전시라 종이 배급이 엄격했고, 출판사를 구하지 못해 몇 년을 헤맸어요.
총 한 자루 없이 독재에 맞선 셈이지만, 출판조차 쉽지 않았던 거예요.


비트겐슈타인이 벽난로 부젓가락을 집어 든 순간, 케임브리지에서 가장 유명한 철학 논쟁은 거의 난투극이 될 뻔했어요.
1946년 케임브리지 킹스 칼리지, 포퍼가 세미나에서 발표를 하고 있었어요.
그 자리에 비트겐슈타인이 앉아 있었어요. 당시 "언어가 철학적 혼란의 원인"이라는 이론으로 유럽 철학계를 평정한 인물이에요. 쉽게 말하면, 말을 정확하게 쓰면 철학 문제의 대부분은 사라진다는 주장이에요.
비트겐슈타인은 벽난로 부젓가락을 집어들고 흔들며 외쳤어요.
"진짜 철학적 문제 같은 건 없다!"
포퍼는 물러서지 않았어요. "도덕 규칙이 유효한가라는 건 진짜 문제입니다."
비트겐슈타인은 부젓가락을 내던지고 방을 나가버렸어요.
이 사건은 '부젓가락 사건'이라는 이름으로 철학사에 남아 있어요.
누가 먼저 부젓가락을 휘둘렀는지, 누가 먼저 도발했는지는 목격자마다 말이 달라요.
그런데 아이러니가 있어요.
포퍼는 평생 세미나에서 학생들에게 소리를 지르고, 반론을 용납하지 않기로 악명 높았어요.
"비판적 합리주의"를 설파한 사람이, 정작 자기 앞에서 비판을 꺼내는 사람에게는 가장 닫혀 있었던 거예요.
"자유롭게 의견 내세요"라고 해놓고 반대 의견이 나오면 화내는 상사, 그 모순이 20세기 가장 위대한 자유주의 철학자에게도 있었어요.
이론과 삶이 일치하는 사람은 드물어요.
포퍼의 가장 위대한 통찰이 포퍼 자신에게는 가장 잘 적용되지 않았다는 사실이, 이 이야기를 더 인간적으로 만들어줘요.
TTS 음성이 없어요.
아래 버튼으로 나레이션을 생성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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