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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에는 덕이면 충분하다안티스테네스

'dunce'라는 단어가 있다.
바보, 멍청이, 공부 못하는 아이에게 씌우던 고깔모자의 이름.
이 모욕의 원래 주인은 중세 유럽이 배출한 가장 정교한 두뇌였다.
존 던스 스코투스(John Duns Scotus)는 동시대 학자들로부터 '닥터 수브틸리스(Doctor Subtilis)'라 불렸다.
번역하면 '정밀한 박사'.
당시 학자들이 서로에게 붙이는 별명은 그냥 칭호가 아니었다. 가장 뛰어난 사람에게만 주어지는 공식적인 존경의 표시였다.
그런데 그가 죽고 200년이 지났을 무렵, 16세기 르네상스 인문주의자들이 그의 추종자들을 조롱하기 시작했다.
"Duns men(던스 추종자들)은 세상이 바뀌었는데도 옛날 방식만 붙드는 고집쟁이들이야."
Duns men, Dunsmen, 그리고 결국 dunce.
반에서 1등 하던 학생의 이름이 졸업 후 '꼴찌'의 별명이 된 것이다.
살아서는 지나치게 똑똑하다는 이유로 경외받았고, 죽어서는 지나치게 똑똑하다는 이유로 조롱당했다.
같은 이유로 두 번 평가받았는데, 결과는 정반대였다.

1303년 어느 날, 파리 대학의 교수 명단에서 한 이름이 지워졌다.
이유는 간단했다.
왕이 오른쪽에 서라고 했는데 왼쪽에 섰기 때문이다.
당시 프랑스 왕 필리프 4세는 교황과 세금과 권한을 놓고 심각하게 충돌 중이었다.
오늘날로 치면 국가 수반이 중앙은행 총재와 정면으로 싸우는 것과 비슷한 상황이었다.
그는 파리 대학 교수들에게 "나의 편에 서겠다"는 서명을 요구했다.
대부분이 서명했다.
하지만 스코투스를 포함한 소수의 프란치스코회 수사들은 거부했다.
결과는 빠르고 냉혹했다. 24시간 안에 프랑스를 떠나라.
파리 대학에서 수년간 쌓아온 강의, 명성, 인맥.
그 모든 것이 하루아침에 사라졌다.
철학자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생각할 시간과 공간이다.
그런데 그것을 지키려면 반드시 정치적 편을 골라야 했다.
"순수한 학문의 자리"는 사실 처음부터 권력의 자리이기도 했던 것이다.
회사에서 상사가 "내 편이냐 아니냐"를 물을 때 소신을 말하면 짐을 싸야 하는 것처럼, 중세의 철학자도 그 앞에서 예외가 아니었다.

"너는 특별해"라는 말을 요즘은 흔히 한다.
그런데 이 말이 철학적으로 참인지 최초로 증명하려 한 사람은 1290년대 옥스퍼드의 한 수도사였다.
당시 철학계의 주류는 "인간이란 무엇인가"를 따지는 데 집중했다.
토마스 아퀴나스 같은 당대의 거인들은 모든 인간에게 공통된 본질, 즉 보편자를 탐구했다.
쉽게 말해 "인간이라는 종(種)을 어떻게 정의할 것인가"의 문제였다.
스코투스는 질문을 바꿨다.
"그건 알겠는데, 그렇다면 이 특정한 한 사람을 이 사람이게 만드는 것은 무엇인가?"
그가 이 고유성에 붙인 이름이 '이것임(haecceitas)'이다.
'haec'는 라틴어로 '이것', 즉 "이 특정한 것을 이것이게 만드는 원리"라는 뜻이다.
쌍둥이도 같은 사람이 아니라고 느끼는 그 직관에, 스코투스는 이름을 붙이고 논증을 세웠다.
이 생각은 당시에는 너무 앞서 있었다.
하지만 700년이 지나 20세기 실존주의가 "존재는 본질보다 앞선다"고 선언했을 때, 그 먼 뿌리 중 하나는 이 13세기 수도사의 노트에 있었다.
"너는 대체 불가능한 존재"라는 말을 가장 먼저 철학의 언어로 증명하려 했던 사람.

1308년, 쾰른의 한 수도원에서 마흔두 살의 철학자가 갑자기 쓰러졌다.
그리고 그의 관을 둘러싼 소문은 그의 철학만큼이나 오래 살아남았다.
정확한 사인은 지금도 알 수 없다.
뇌졸중이었으리라는 추정이 있을 뿐이다.
그런데 이후 수백 년 동안, 사람들 사이에서 이런 이야기가 반복해서 기록되었다. "관을 다시 열었더니 시신이 뒤집혀 있었고, 손톱에 피가 묻어 있었다."
역사적으로 확인된 사실이 아니다.
하지만 그 전설이 수 세기에 걸쳐 반복 기록될 만큼 그의 죽음은 당대 사람들에게 충격이었다.
그리고 1993년, 교황 요한 바오로 2세가 그를 복자(Blessed)로 선포했다.
복자란 가톨릭에서 성인 바로 아래 단계의 공식 인정이다.
'바보의 어원'이 '가톨릭 성인 후보'로 공식 복권된 순간이었다.
한 사람의 평판이 살아서 네 번 뒤집혔다.
천재, 추방자, 바보의 상징, 그리고 복자.
인터넷 시대라면 '재평가 열풍'에 해당하는 일이 700년에 걸쳐 일어난 셈이다.
dunce라는 단어는 오늘도 영어사전에 살아있다.
그 단어를 쓰는 사람들은 아무도 그 이름의 주인이 누구였는지 모른다.
어쩌면 스코투스는 그것조차 예상했을지도 모른다. 가장 정밀하게 생각했던 사람이, 가장 오래 오해받았다는 사실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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