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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에는 덕이면 충분하다안티스테네스

1776년 여름, 에든버러 시민들은 기이한 구경거리를 찾아 한 남자의 집 앞에 모여들었어요.
신을 믿지 않는 남자가 죽어가면서 웃고 있다는 소문 때문이었죠.
그 남자는 데이비드 흄이에요.
복부 종양으로 천천히 죽어가고 있었는데, 병문안 온 손님들에게 그리스 신화 농담을 던지고 있었습니다.
"저승 뱃사공 카론이 배에 타라고 하면 어떻게 하실 거예요?" 손님이 물었어요.
그러자 흄이 대답했습니다.
"'잠깐, 좀 기다려. 내 책이 종교적 편견에 맞서는 걸 직접 볼 때까지만'이라고 할 거요."
그 손님 중 하나가 제임스 보즈웰이었어요.
당대 최고 전기 작가였는데, 솔직히 흄이 임종 직전에 겁을 집어먹는 꼴을 기대하고 왔어요.
그런데 흄은 너무 태연했습니다.
보즈웰은 그날 밤 일기에 이렇게 적었어요. "그는 진심이었다. 전혀 두렵지 않은 것 같았다. 나는 밤새 잠들지 못했다."
당시 유럽은 이런 믿음이 있었어요.
무신론자는 죽음 앞에서 반드시 공포에 무너질 것이라고요.
신이 없으면 죽음이 감당이 안 된다고, 사람들은 확신했습니다.
그런데 흄은 무너지지 않았어요.
교회 측은 그게 연기라고 비난했습니다.
연기가 아니라는 걸 알았기 때문에 비난해야 했을 거예요.

스물여섯 살의 데이비드 흄은 세상의 모든 확실성을 부숴버릴 책을 썼어요.
세상은 그 책이 존재하는지조차 몰랐습니다.
10대 후반부터 철학에 너무 깊이 빠진 나머지 신경쇠약에 걸렸어요.
그리고 프랑스 라플레슈라는 작은 시골 마을로 떠났습니다.
라플레슈는 데카르트가 공부한 예수회 학교가 있는 곳인데, 흄은 그곳에 3년간 틀어박혀서 《인성론》을 완성했어요.
《인성론》은 한 마디로 이런 책이에요.
"우리가 당연하다고 믿는 것들, 사실 근거가 없어요."
예를 들어 "태양은 내일도 뜰 것이다"라는 믿음. 흄은 이렇게 물었습니다.
"어제 떴으니까 내일도 뜬다? 그게 논리적으로 증명되나요?"
1739년, 책이 출간됐어요.
그리고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습니다.
흄 본인의 말로는 "인쇄기에서 사산아로 태어났다"고 했어요.
서평도 없었고, 팔리지도 않았으며, 논쟁조차 없었습니다.
수년을 쏟아부은 발표를 했는데 청중이 아무 반응 없이 자리를 떴을 때의 그 침묵.
흄이 느꼈을 게 딱 그거였을 거예요.
그런데 이 실패작이 나중에 칸트를 바꿔놓았습니다.
칸트는 이 책을 읽고 "독단의 잠에서 깨어났다"고 직접 고백했어요.
독단의 잠이란, 증명도 안 된 전제를 당연하게 여기며 철학을 하는 상태예요.
칸트가 잠든 사이, 흄의 책은 그 잠이 잠이었다는 걸 일깨워줬습니다.
역사상 가장 영향력 있는 철학책 중 하나가 출간 당시 완전한 무관심 속에 묻혔던 거예요.

18세기 파리 사교계에서 가장 인기 있는 남자는 잘생기지도, 말을 잘하지도 않았어요.
뚱뚱한 스코틀랜드 철학자였습니다.
1763년, 흄이 영국 대사관 서기관으로 파리에 도착했어요.
당시 파리 살롱은 지금으로 치면 최상위 인플루언서들의 네트워킹 파티 같은 곳이었습니다.
귀족, 철학자, 작가들이 모여서 누가 더 날카로운 말을 하나 겨루는 자리였죠.
그런데 이 살롱이 흄 때문에 뒤집어졌어요.
귀부인들이 흄을 저녁 만찬에 초대하려고 서로 경쟁했고, 당대 최고 지성들이 그와의 대화를 원했습니다.
사람들은 흄을 "르 봉 다비드", 즉 "선량한 다비드"라고 불렀어요.
흄 자신은 스스로를 "뚱뚱하고 말솜씨 없는 스코틀랜드인"이라고 불렀어요.
그런데 사람들은 그 솔직함과 유머, 그리고 남을 비난하지 않는 태도에 매료됐습니다.
머리가 좋은 사람은 많았지만, 좋은 사람은 드물었으니까요.
그때 흄이 한 가지 친절을 베풀었어요.
박해를 피해 도망 다니던 장 자크 루소를 직접 영국으로 데려와 보호한 거예요.
루소는 《사회계약론》을 쓴 철학자인데, 당시 사방에서 쫓기고 있었습니다.
흄은 자기 집까지 내어줬어요.
그런데 루소가 흄을 적으로 돌렸습니다.
편집증적인 의심 끝에 흄이 자신을 감시하고 음모를 꾸민다고 믿었고, 공개적으로 비난했어요.
모든 것을 의심한 철학자가 정작 사람은 너무 쉽게 믿었던 셈입니다.
그게 흄의 유일한 약점이었는지도 몰라요.

애덤 스미스는 평생 단 한 번 대중의 분노를 샀어요.
《국부론》을 썼을 때가 아니라, 죽은 친구를 좋은 사람이라고 불렀을 때였습니다.
흄이 죽은 뒤, 절친한 친구이자 《국부론》의 저자인 애덤 스미스는 추모 편지를 썼어요.
그 편지에서 흄을 "완벽에 가까운 인간"이라고 묘사했습니다.
그러자 비난이 쏟아졌어요.
무신론자를 성인처럼 묘사했다는 이유로요.
스미스는 물러서지 않았어요.
흄의 적들도 흄의 인품만은 공격하지 못했거든요.
그들도 알고 있었을 겁니다. 그 사람이 어떻게 살았는지를요.
흄은 유언장에서도 유머를 잃지 않았어요.
그리고 딱 하나의 지시만 남겼습니다.
미출간 원고 《자연종교에 관한 대화》를 반드시 출간하라는 것이었어요.
이 책은 종교의 논리적 근거를 가장 날카롭게 해부한 책인데, 흄은 살아있는 동안 출간을 미뤄왔어요.
죽어서야 내놓겠다고 한 거였습니다.
흄의 철학은 도덕의 근거가 신이 아닌 인간의 감정에 있다고 주장했어요.
우리가 친절하게 사는 것은 신이 명령해서가 아니라, 타인의 고통에 자연스럽게 반응하는 감정이 있기 때문이라는 거예요.
그런데 흄은 그 주장을 책이 아닌 삶으로 증명했습니다.
루소를 보호했고, 적들에게도 친절했으며, 죽어가면서 농담을 했어요.
신 없이도 좋은 삶이 가능하다는 걸, 논리가 아니라 태도로 보여준 사람이었습니다.
보즈웰은 흄이 죽은 뒤에도 그 장면을 떨치지 못했다고 해요.
평온하게 웃으며 세상을 떠난 무신론자.
그 이미지가 너무 강렬해서, 자신의 믿음이 맞는지 되묻게 만들었다고요.
어쩌면 그게 흄이 남긴 가장 긴 여운이 아니었을까요.
TTS 음성이 없어요.
아래 버튼으로 나레이션을 생성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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