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르다노 브루노가 목숨과 맞바꾼 무한 우주, 1600년 화형의 진실
브루노는 8년 감옥에서 끝내 회개를 거부했다
8년이면 누구라도 한 번은 흔들려요.
브루노는 흔들리지 않았어요.
1600년 2월 17일 새벽, 로마의 캄포 데 피오리 광장에 군중이 모였어요.
캄포 데 피오리는 지금도 로마 시내에 있는 작은 광장인데, 당시엔 공개 처형의 무대였어요.
종교재판소는 8년 동안 똑같은 거래를 반복했어요.
"회개하면 살려주겠다."
평범한 사람이라면 하루만 지나도 마음을 바꿀 텐데, 브루노는 2920일 동안 같은 대답을 돌려줬어요.
결국 처형이 결정됐어요.
그런데 더 놀라운 건 처형 당일 아침이에요.
집행관들은 브루노의 입에 모르다키아(mordacchia)를 물렸어요.
쇠와 나무로 만든 재갈인데, 이단자가 마지막 순간에 위험한 말을 외치지 못하게 입을 강제로 막는 도구예요.
평생 말로 진리를 가르쳐온 사람이었어요.
그런데 마지막 순간엔 말 한마디 남기지 못하고 죽었어요.
신부가 십자가를 들이대자 브루노는 시선을 돌렸어요.
그게 그의 마지막 대답이었어요.
이 처형에서 더 두려웠던 건, 사실 죽는 쪽보다 살리려는 쪽이었어요.
말을 막아야 했다는 건, 그 말이 그만큼 위험하다는 걸 스스로 인정한 거니까요.
브루노는 망원경도 없이 무한 우주를 선언했다
그가 죽고 400년이 지나서야, 망원경이 그의 말이 맞다는 걸 증명했어요.
갈릴레오가 직접 만든 망원경으로 목성의 위성을 처음 관측한 건 1610년이에요.
브루노가 화형당한 해가 1600년이니까, 그 관측은 브루노가 죽고 10년 뒤 일이에요.
그런데 브루노는 망원경도 없이, 눈과 머리만으로 1584년에 이미 이 주장을 완성했어요.
그 해 런던에서 출간한 책이 『무한자, 우주, 그리고 여러 세계에 대하여』예요.
'무한자'라는 말이 낯설게 들릴 수 있는데, 쉽게 말하면 "우주에는 끝이 없고, 중심도 없다"는 주장이에요.
하늘에 보이는 별 하나하나가 사실은 또 다른 태양이고, 그 주위에 행성이 돌고, 그곳에도 지각 있는 생명이 살 거라고 썼어요.
당시 사람들이 믿던 우주관은 달랐어요.
지구가 우주의 중심에 있고, 태양과 별들이 그 주위를 돈다는 거였어요.
코페르니쿠스가 "사실 지구가 태양 주위를 돈다"고 주장해서 한 번 뒤집혔지만, 그래도 태양이라는 '중심'은 여전히 남아있었어요.
브루노는 그 '중심'이라는 개념 자체를 지워버렸어요.
"우주엔 중심이 없다, 모든 별이 각자의 태양이다"는 거예요.
오늘날 천체망원경이 외계행성을 5천 개 넘게 발견했고, 우주는 실제로 그런 구조예요.
브루노는 자기를 초대한 귀족의 편지에 속아 잡혔다
브루노를 화형대로 보낸 건 종교재판이 아니라, 그를 초대한 학생의 편지 한 통이었어요.
1591년, 조반니 모체니고라는 베네치아 귀족이 브루노에게 편지를 보냈어요.
"당신의 기억술을 직접 배우고 싶습니다. 우리 집에 머무르세요."
당시 브루노는 영국, 프랑스, 독일을 전전하던 망명자였어요.
여기서 '기억술'이 생소하게 들릴 수 있는데, 브루노는 철학만 한 게 아니었어요.
방대한 지식을 체계적으로 외우고 조직하는 기술을 가르쳤는데, 당시 귀족들 사이에서 꽤 인기 있는 학문이었어요.
그래서 모체니고의 제안은 브루노에게 솔깃한 기회였어요.
베네치아는 당시 유럽에서 교회의 간섭이 가장 적은 도시로 알려져 있었어요.
브루노는 그걸 믿고 갔어요.
하지만 모체니고는 가르침이 기대에 못 미치자, 브루노를 자기 집 다락방에 가두고 종교재판소에 신고했어요.
자기가 초대한 손님을, 집주인이 직접 밀고한 거예요.
브루노는 베네치아 감옥을 거쳐 로마로 이송됐어요.
그 이후 8년간 햇빛을 거의 보지 못했어요.
거대한 권력이 그를 잡은 게 아니에요.
한 통의 초대 편지가 그를 화형대로 보냈어요.
브루노가 죽은 자리에 289년 뒤 그의 동상이 섰다
그를 태운 자리에 그가 다시 서기까지 289년이 걸렸어요.
1889년 6월 9일, 캄포 데 피오리 광장 한복판에 청동 동상이 세워졌어요.
정확히 그가 화형당한 그 자리예요.
동상은 후드를 깊이 쓰고 두꺼운 책 한 권을 든 모습인데, 등을 일부러 바티칸 방향으로 돌리고 서 있어요.
바티칸은 로마 시내에 있는 가톨릭 교회의 본부예요.
교회는 이 동상 건립을 끝까지 막으려 했어요.
하지만 통일 이탈리아 정부와 시민들의 모금이 결국 동상을 세웠어요.
그런데 지금 이 광장이 어떤 모습인지 알면 더 묘한 기분이 들어요.
캄포 데 피오리는 지금 로마에서 가장 활기찬 노천 시장이에요.
매일 아침 꽃과 채소를 파는 상인들이 동상 주위에 자리를 펴요.
그를 태운 불 자리에 지금은 토마토와 장미가 쌓여요.
289년 전 그 새벽에 무슨 일이 있었는지 모르는 관광객들이 그의 발치에서 에스프레소를 마시고 있어요.
역사는 가끔 이런 식으로, 아주 천천히, 복수를 해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