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쾨르가 포로수용소에서 번역한 후설, 해석학자의 4가지 결정적 순간
리쾨르는 5년간 수용소에서 적국 철학자를 번역했다
1940년 여름, 27세 리쾨르는 후설의 책 한 권만 챙겨 5년짜리 포로 생활에 들어갔어요.
프랑스가 독일에 패망한 직후, 그는 독일군 포로가 되어 폴란드 북부 오플라크 II-D 수용소에 갇혔어요.
1945년까지, 꼬박 5년이었어요.
그 5년 동안 그가 한 일이 놀라워요.
독일 철학자 후설의 《이념들 1》을 프랑스어로 번역했거든요.
후설은 '인간 의식이 세계를 어떻게 경험하는가'를 분석한 현상학의 창시자예요.
문제는 종이가 없었다는 거예요.
그래서 리쾨르는 책 자체의 여백에 깨알 같은 글씨로 번역문을 채워 넣었어요.
자기 나라를 침략한 적국 철학자의 책을, 그 적국의 수용소에서, 그 책의 빈 여백에.
현대로 치면 이런 상황이에요.
납치범의 집에 갇혀, 납치범 나라의 책을, 바로 그 책 자체에 번역해 넣는 것.
리쾨르는 그렇게 포로 5년을 보냈어요.
수용소에서 그는 동료들과 함께 독서 모임도 만들었어요.
야스퍼스를 읽고, 마르셀을 읽었어요.
감금된 몸으로, 자유로운 정신의 가능성을 탐색했어요.
리쾨르의 프로이트 해석은 양쪽 진영에서 공격받았다
리쾨르가 프로이트 책을 낸 그해, 교회와 라캉이 동시에 그를 공격했어요.
1965년, 리쾨르는 《해석에 대하여: 프로이트론》을 출간했어요.
이 책 하나로 그는 두 진영의 공적이 됐어요.
먼저 종교계가 들고일어났어요.
리쾨르는 평생 독실한 가톨릭 신자였거든요.
그런 그가 "신은 없다"고 주장한 프로이트를 진지하게 다루자, 교회 쪽에서는 "배신자"로 몰았어요.
정신분석 쪽도 가만있지 않았어요.
프랑스 정신분석학파의 거장 라캉, 즉 '무의식은 언어처럼 구조화되어 있다'고 주장해 유럽 지식인 사회를 장악했던 그 사람이, 리쾨르가 자기 세미나의 아이디어를 훔쳤다며 공개 석상에서 비난했어요.
두 친구의 싸움을 말리러 끼어들었다가 양쪽 모두에게 욕먹은 형국이었어요.
리쾨르는 이 경험을 철학 개념으로 바꿔냈어요.
그게 바로 해석의 갈등이에요.
같은 텍스트를 읽어도 종교는 A를 보고 정신분석은 B를 보는데, 어느 쪽이 맞냐보다 "왜 이렇게 다르게 읽히는가"가 진짜 질문이라는 거예요.
맞서 싸우는 대신 그 갈등 자체를 들여다본 거예요.
공격받은 경험이 오히려 그를 더 넓은 자리로 밀어 올렸어요.
리쾨르는 자기 학생에게 쓰레기통을 뒤집어썼다
학생이 학장의 머리에 쓰레기통을 씌웠을 때, 리쾨르는 항의 한 마디 없이 그 자리를 떠났어요.
1968년 5월, 파리 외곽의 낭테르 대학에서였어요.
낭테르는 당시 프랑스 전역을 뒤흔든 68혁명의 불씨가 처음 피어오른 캠퍼스였어요.
리쾨르는 그 낭테르의 학장이었어요.
그것도 평생 학생의 자유와 대학 개혁을 옹호해 온 사람이었어요.
학생운동이 터졌을 때 누구보다 학생 편에 서 있었던 교수였어요.
평생 후배를 챙기던 선배가 어느 날 그 후배들에게 면전에서 망신당한 것과 같아요.
리쾨르는 그날 이후 학생들 앞에 다시 서지 않았어요.
2년 뒤인 1970년, 그는 학장직을 사임하고 미국 시카고 대학으로 떠났어요.
그 자리는 신학자 폴 틸리히의 후임이었어요.
틸리히는 "신을 믿을 수도 없고, 그렇다고 신 없이 살 수도 없는" 현대인의 불안을 철학으로 풀어낸 사람이었어요.
리쾨르는 그 자리에서 시카고와 파리를 오가며 연구를 이어갔어요.
모욕은 그를 무너뜨리지 않았어요.
자리를 옮겼을 뿐이에요.
리쾨르는 아들을 잃은 뒤 서사적 정체성을 완성했다
아들을 잃고 4년 뒤, 리쾨르는 정체성이 곧 이야기라는 책을 썼어요.
1986년, 그의 둘째 아들 올리비에가 스스로 목숨을 끊었어요.
4년 뒤인 1990년, 리쾨르는 《타자로서 자기 자신》을 출간했어요.
이 책에서 그는 서사적 정체성 개념을 완성했어요.
서사적 정체성이란, 내가 누구인가는 변하지 않는 고정된 본질이 아니라 내가 나 자신에 대해 끊임없이 다시 들려주는 이야기라는 뜻이에요.
마치 누군가를 잃은 사람이 그 사람과의 기억을 반복해 꺼내 들으며 자신을 다시 짜 맞추는 것처럼요.
리쾨르는 이렇게 말했어요.
"인간은 자기 삶의 이야기꾼이고, 동시에 그 이야기의 주인공이다."
정체성이란 이야기를 통해서만 겨우 유지된다는 거예요.
여기서 잠깐 멈추면, 리쾨르 자신의 삶이 딱 그 증거예요.
포로수용소, 양쪽의 공격, 학생에게 당한 모욕, 아들의 죽음.
그 모든 것을 통과하고도 무너지지 않은 건, 그 경험들을 하나의 이야기로 이어붙이는 능력이었을 거예요.
포로수용소에서의 번역은 철학자로서의 출발점이 됐어요.
양쪽의 공격은 '해석의 갈등'이라는 개념의 씨앗이 됐어요.
그리고 아들의 죽음은, 인간이 이야기 없이는 자기 자신을 붙들 수 없다는 통찰의 가장 깊은 자리에 자리를 잡았어요.
그가 말년에 쓴 책의 제목은 《기억, 역사, 망각》이에요.
어떻게 기억하느냐가 어떻게 살아남느냐라는 질문을 그는 끝까지 놓지 않았어요.
당신이라면, 그 상실들을 어떤 이야기로 다시 엮었을 것 같나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