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다머가 60세에야 낸 진리와 방법, 38년의 침묵
가다머는 22세에 박사가 된 직후 1년을 누워 있었다
22세에 박사가 된 청년이 학위를 받자마자 1년을 침대에 누워 있었어요.
1922년 한스게오르크 가다머는 독일 마부르크 대학에서 스물두 살에 철학 박사 학위를 받았어요.
마부르크는 당시 독일 철학의 본산이에요.
네오칸트주의 철학자들이 집결했던 곳으로, 그곳에서 가장 젊은 박사가 된 가다머는 독일 학계의 가장 빠른 출발선에 서 있었어요.
그런데 학위를 받고 얼마 지나지 않아 그는 폴리오(소아마비)에 걸렸어요.
폴리오는 바이러스가 척수를 공격해 마비를 일으키는 병으로, 당시에는 격리 요양 외에 치료법이 없었어요.
가다머는 약 1년간 요양원에서 격리된 채 지냈어요.
오늘날로 치면 첫 직장 출근 다음 주에 1년 입원 통지를 받은 신입사원 신세예요.
하지만 그 1년이 그의 철학을 결정했어요.
침대 위에서 책을 쌓아두고 읽으며 그는 한 가지 질문에 매달렸어요. 텍스트와 독자 사이에서 대체 무슨 일이 벌어지는가.
가다머는 나치당원은 아니었지만 한 단체에는 가입했다
가다머는 나치당원이 아니었어요.
하지만 가입한 단체는 있었어요.
1933년 히틀러가 집권하자 독일의 모든 교수는 선택을 강요받았어요.
가다머는 나치 교사연맹(NSLB)에 가입했어요.
NSLB는 나치 정권이 교원을 통제하기 위해 만든 조직으로, 교수직을 유지하려면 사실상 가입이 강제됐어요.
하지만 나치당(NSDAP) 자체에는 끝까지 들어가지 않았어요.
단체 행사엔 빠짐없이 나가되 당원증에 도장만 끝까지 안 찍은 거예요.
그 줄타기 덕분에 그는 자리를 지킬 수 있었어요.
그 대가는 나중에 분명해졌어요.
1939년 나치 정권이 유대인 교수들을 대학에서 강제로 쫓아냈고, 가다머는 그 빈자리에 라이프치히 대학 정교수로 임용됐어요.
그 자리가 누구의 자리였는지 그 자신이 몰랐을 리 없어요.
라이프치히 총장 가다머는 소비에트 치하에서 1년만 버텼다
전쟁이 끝났지만 가다머는 곧 다른 점령군의 손에 떨어졌어요.
1945년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나고 라이프치히는 소비에트 점령지가 됐어요.
소비에트 점령지는 소련군이 직접 통치하며 마르크스-레닌주의 이념을 대학 교육에 강제하던 곳이에요.
1946년 가다머는 바로 그 라이프치히 대학의 총장으로 임명됐어요.
그는 이데올로기 강요로부터 대학 자치를 지키려 했어요.
하지만 나치 12년을 견뎌낸 사람이 소비에트 1년에 등을 돌렸어요.
1947년, 가다머는 짐을 싸 서독 프랑크푸르트로 자리를 옮겼어요.
나치와 소비에트, 두 전체주의를 모두 통과한 증인은 드물어요.
가다머는 그 드문 사람 중 하나가 됐어요.
그리고 그 경험이 그를 다시 근본적인 질문 앞에 세웠어요. 사람은 어떻게, 그리고 왜 서로를 이해하지 못하는가.
60세 가다머가 낸 한 권이 인문학 전체를 바꿨다
1960년, 60세 가다머가 평생 단 한 권이라 부를 만한 책을 세상에 내놓았어요.
《진리와 방법(Wahrheit und Methode)》이에요.
제목은 어렵게 들리지만 핵심 주장은 단순해요.
텍스트를 이해하는 건 화학 실험처럼 중립적인 방법으로 접근할 수 없다는 거예요.
독자는 언제나 자신이 태어난 시대, 배운 언어, 겪은 경험을 들고 텍스트 앞에 서요.
그 모든 것이 이해에 영향을 끼쳐요.
그래서 이해는 독자가 텍스트에 도달하는 게 아니라, 둘이 함께 만들어내는 사건이에요.
당시 인문학계는 자연과학을 부러워하며 "우리도 객관적 방법론을 갖출 수 있다"고 증명하려 했어요.
가다머는 그 시도 자체가 잘못된 질문이라고 말한 거예요.
그 말이 문학, 법학, 신학, 역사학을 차례로 흔들었어요.
가다머는 이후 102세까지 살며 그 책의 변주를 계속 살았어요.
22세의 박사, 소아마비로 누운 청년, 나치를 통과한 교수, 소비에트를 피해 떠난 총장.
그 38년의 우회가 모두 그 한 권 안에 있어요.
60세에야 처음 진짜 목소리를 낸 그 삶이, 38년의 침묵이 정말 침묵이었는지를 묻게 해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