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대용, 우주의 중심을 지운 조선 양반의 사상
홍대용은 지구가 돈다고 적은 조선 양반이다
1770년대의 어느 날, 조선의 양반 한 명이 종이 위에 "우주에는 중심이 없다"고 적었어요.
그 사람의 이름은 홍대용이었어요.
오늘날로 치면 이런 거예요.
일류 의대 교수가 "질병은 사실 존재하지 않는다"는 논문을 직접 써서 발표한 격이에요.
본인이 속한 학교, 평생 가르쳐온 학문, 동료들과의 신뢰가 전부 흔들리는 순간이죠.
홍대용은 의산문답이라는 책에 이 생각을 담았어요.
의산문답은 가상의 두 인물이 산속에서 대화를 나누는 형식으로 쓴 사상서예요.
거기에 두 가지 주장이 들어 있었어요.
하나는 지전설이에요.
지구가 스스로 돈다는 주장이에요.
다른 하나는 무한우주론, 우주에는 지구 말고도 무수히 많은 세계가 존재한다는 주장이었어요.
그런데 당시 조선은 천원지방을 진리로 믿던 사회였어요.
천원지방이란 "하늘은 둥글고 땅은 네모나다"는 우주관이에요.
스마트폰 화면이 네모난 게 당연하듯, 조선 사람들에게 땅이 네모난 건 그냥 상식이었어요.
그 상식 위에서 양반으로 태어난 사람이, 그 상식을 종이에다 손수 지워버린 거예요.
홍대용은 베이징 골목에서 청나라 학자들과 의형제를 맺었다
조선이 오랑캐라 부르던 나라에서, 홍대용은 평생의 친구 세 명을 만났어요.
1765년 겨울, 35살의 홍대용은 작은아버지가 이끄는 사절단에 자제군관 자격으로 베이징에 들어갔어요.
자제군관이란 고위 관료의 자제가 비공식 수행원으로 따라가는 자리예요.
요즘으로 치면 임원 출장에 자녀가 동행하는 것처럼, 공식 업무보다는 보고 배우는 게 목적이에요.
그런데 그 도시에서 그는 항주 출신 청나라 학자 엄성, 반정균, 육비를 만났어요.
처음 만난 이들과 홍대용은 금세 의형제를 맺었어요.
귀국 후에도 평생 편지를 주고받았어요.
당시 조선 양반들은 청나라를 "오랑캐 나라"라고 불렀어요.
명나라가 망한 뒤 이민족이 세운 나라라며 깔봤어요.
그 멸시감은 개인 감정이 아니라 조선 지식인들의 공식 입장에 가까웠어요.
회사에서 가장 애사심 강한 임원이 라이벌 회사 직원과 둘도 없는 친구가 되어 평생 편지를 주고받은 격이에요.
그런데 홍대용은 그쪽에서 먼저 손을 내밀었어요.
홍대용은 중국이 곧 오랑캐라고 적은 양반이다
홍대용은 청나라가 오랑캐가 아니라고만 한 게 아니에요.
어느 나라도 중심이 아니라고 했어요.
의산문답에서 그는 이렇게 썼어요.
"중국이 곧 오랑캐고, 오랑캐가 곧 중국이다."
어느 위치에서 보느냐의 차이일 뿐, 본질적으로 문명의 중심이 되는 나라는 없다는 뜻이에요.
이 주장을 화이론 부정이라고 불러요.
화이론이란 중화(문명국)와 오랑캐(야만국)를 본질적으로 구분하는 사상이에요.
쉽게 말하면 "우리가 중심이고, 주변은 변방"이라는 세계관이에요.
조선은 명나라가 망한 뒤 이 논리를 더 강하게 붙들고 있었어요.
"명나라는 망했지만 진짜 중화의 정신은 우리가 이어받았다"고 믿으며 자존심을 지탱했어요.
그 자부심의 근거 자체를 홍대용이 손으로 지워버린 거예요.
회사에서 가장 자부심 강한 사람이 회의 자리에서 "우리 회사가 1등이라는 건, 우리가 1등이라고 믿어서 1등인 것뿐이에요"라고 말한 격이에요.
박수가 나올 리 없는 발언이에요.
그런데 홍대용은 그 말을 책에 적어서 남겼어요.
홍대용은 시골 마당에 사설 천문대를 지은 사람이다
홍대용은 평생 한 번도 정식 관료가 되지 않았어요.
대신 시골집 마당에 자기만의 천문대를 지었어요.
충청도 천원의 자기 집 마당에 그가 만든 것의 이름은 농수각이에요.
조선 시대 개인이 만든 사설 천문 관측소예요.
그 안에 혼천의와 자명종 같은 도구를 직접 제작해 두고 별을 관측했어요.
혼천의란 하늘의 운행을 눈으로 볼 수 있게 만든 천문 기구예요.
오늘로 치면 3D 지구본에 별자리 레이어를 얹은 것처럼, 천체의 움직임을 손에 잡히는 형태로 재현한 장치예요.
홍대용은 노론 명문가에서 태어났어요.
노론은 당시 조선에서 가장 강력한 정치 세력이었어요.
그 집안에서 태어났다는 건 고위 관료가 될 가장 빠른 사다리 위에 처음부터 서 있다는 뜻이었어요.
하지만 그는 그 사다리를 타지 않았어요.
과거 시험을 평생 적극적으로 치르지 않았어요.
대신 마당에 천문대를 짓고 밤하늘을 봤어요.
의대 합격이 보장된 명문가 자제가 본가 마당에 연구실을 짓고, 그 안에서만 평생을 보낸 격이에요.
지구가 돈다고 썼고, 우주에는 중심이 없다고 썼고, 오랑캐와 중화는 애초에 다르지 않다고 썼어요.
그 모든 문장들은 관직 하나 없는 양반이 시골 마당 천문대 곁에서 쓴 거예요.
그가 별을 보며 무슨 생각을 했는지, 그 문장들이 지금도 남아 있어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