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세페 치아미치안, 1912년 태양에너지 시대를 예견한 광화학의 아버지
치아미치안은 1912년 화석연료의 종말을 예견했다
1912년, 자동차가 막 보급되기 시작한 그해 가을, 한 이탈리아 화학자가 뉴욕 무대에 올라 화석연료 시대의 종말을 선언했어요.
그해 9월 뉴욕에서는 제8차 국제응용화학회의가 열렸어요.
주세페 치아미치안은 그 무대에서 「미래의 광화학(The Photochemistry of the Future)」이라는 강연을 했어요.
같은 해 4월에 타이타닉이 침몰했고, 전 세계는 석탄과 석유가 인류를 영원히 풍요롭게 해줄 거라 믿던 시절이었어요.
하지만 치아미치안은 무대 위에서 이렇게 말했어요.
"석탄과 석유는 유한해요. 그리고 햇빛은, 우리가 다 쓰기 전에 없어지지 않아요."
그가 그린 미래는 구체적이었어요.
태양광으로 화학 연료를 만들고, 햇볕 좋은 나라들이 그 햇빛으로 산업 강국이 되는 풍경이었어요.
그런데 그 풍경은 100년 뒤 우리가 그대로 살고 있는 기후 위기와 태양광 전환의 모습이에요.
1912년에 2020년대를 그린 셈이에요.
치아미치안은 볼로냐 옥상에 시험관 수백 개를 늘어놓았다
볼로냐 대학 화학관 옥상에는 수십 년 동안 햇빛을 향해 늘어선 유리 시험관 수백 개가 있었어요.
광화학이란 빛이 화학 반응을 일으키는 현상을 연구하는 분야예요.
오늘날로 치면 태양전지가 작동하는 원리의 화학 버전이에요.
치아미치안은 이 분야를 사실상 혼자 개척했어요.
방법은 놀랍도록 단순했어요.
유리 시험관에 화학물질을 넣고, 볼로냐의 햇빛 아래 옥상에 줄지어 세워두고, 빛이 어떤 반응을 일으키는지 관찰하는 거였어요.
카페 테라스에 화분을 늘어놓는 것처럼요.
제자 안젤로 안젤리와 함께 수십 년을 이 작업에 쏟았어요.
안젤리는 훗날 자신의 이름이 붙은 유기화학 반응, '안젤리-리미니 반응'을 발견한 화학자예요.
그 연구의 출발점은 볼로냐 옥상의 시험관들이었어요.
같은 시기 다른 노벨상급 화학자들은 정교한 실험 장비를 경쟁적으로 갖추고 있었어요.
결국 치아미치안은 가장 단순한 도구로, 가장 새로운 화학 분야를 만들어냈어요.
치아미치안은 노벨화학상 후보에 9번 올랐지만 한 번도 받지 못했다
치아미치안은 노벨화학상 후보에 9번 올랐어요.
한 번도 받지 못했어요.
1908년부터 1922년까지 거의 매해 후보 명단에 이름이 올랐어요.
회사에서 9년 연속 승진 후보에 오르고도 한 번도 안 된 상황인데, 그것도 100년 뒤 자신이 만든 분야가 회사의 핵심 사업부가 된다는 걸 아무도 모른 채로요.
이유는 간단했어요.
광화학은 당시 화학계에서 주변부였어요.
전기화학, 유기합성, 원소 발견처럼 즉각적인 산업 응용이 평가받던 시대에, 빛과 화학 반응의 관계를 연구하는 건 너무 앞서간 주제였어요.
그런데 100년이 지나 광화학은 인공광합성과 솔라퓨얼, 즉 태양광으로 만드는 수소 연료의 핵심 이론 토대가 되었어요.
심사위원들이 너무 일찍 태어난 아이디어를 알아보지 못한 거예요.
치아미치안이 죽고 100년 뒤 그의 비전은 인공광합성으로 부활했다
치아미치안이 1912년 무대 위에서 그린 미래의 도시는, 그가 죽은 지 100년이 지나서야 윤곽을 갖추기 시작했어요.
치아미치안은 1922년 1월, 볼로냐에서 65세로 세상을 떠났어요.
그 강연으로부터 딱 10년 뒤였어요.
인공광합성, 즉 식물이 햇빛으로 포도당을 만드는 원리를 기계로 흉내 내는 기술은, 21세기에 들어서야 비로소 실용화 단계에 접어들었어요.
그가 1912년 뉴욕 무대에서 그렸던 그 장면, 햇빛으로 화학 연료를 만들고 남부 국가들이 에너지 강국이 되는 풍경이 지금 현실이 되고 있어요.
모로코의 태양광 발전소, 호주의 그린 수소 프로젝트, 스페인 안달루시아의 태양열 공장이 그가 그린 그림이에요.
자신이 남긴 설계도가 100년 뒤 그대로 도시가 되었지만, 본인은 그 도시를 단 하루도 살아서 보지 못한 건축가예요.
치아미치안은 자신이 가장 절실히 보고 싶어 한 미래를, 한 번도 보지 못했어요.
그렇다면 그가 지금 이 시대에 살았다면, 노벨상을 받았을까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