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용운이 승려결혼을 주장한 이유
한용운은 승려이면서 승려결혼을 주장했다
한용운은 자기가 속한 종단이 가장 받아들이기 힘든 주장을 가장 먼저 책으로 써냈어요.
1913년, 그는 「조선불교유신론」을 펴냈어요.
조선 불교가 살아남으려면 뿌리부터 바꿔야 한다는 주장을 담은 책이에요.
그 안에서 가장 도발적인 대목이 하나 있었는데, 바로 "승려도 결혼할 수 있어야 한다"는 주장이었어요.
비유를 들자면 이렇게 생각해보세요.
금욕 생활을 가르치는 수도원장이 "수도자도 가정을 가져야 한다"고 직접 책을 펴낸 거예요.
그것도 자기가 그 수도원에 소속돼 있는 상태에서요.
그런데 한용운은 거기서 멈추지 않았어요.
1933년, 54살에 유숙원과 재혼해 딸 한영숙을 낳았어요.
자기가 쓴 주장의 모범 사례를 직접 자기 삶으로 만들었어요.
한용운은 3·1 민족대표 중 끝까지 굽히지 않았다
한용운은 같이 만세를 외쳤던 33명 중 변절한 사람들과는 평생 인사하지 않았어요.
1919년 3월 1일, 그는 민족대표 33인 중 한 사람으로 서울 태화관에서 독립선언서 낭독에 함께했어요.
민족대표 33인은 3·1 운동 당일 독립선언서에 서명하고 낭독한 지도자 그룹이에요.
낭독 직후 일본 경찰에 체포됐고, 3년형을 선고받았어요.
옥중에서 그는 「조선독립의 서」를 썼어요.
일본 검사가 심문을 하자, 그 답변을 논리적으로 정리해 글로 써낸 거예요.
"조선이 독립을 원하는 것은 민족 자존의 본능이지, 특정 세력의 음모가 아니다"라는 내용이었어요.
하지만 감옥에서 나왔을 때 상황이 달라져 있었어요.
33인 중 상당수가 세월이 지나며 친일 명단에 이름을 올렸어요.
그중에는 한때 가장 가까운 동지였던 천도교 지도자 최린도 있었어요.
한용운은 길에서 최린을 마주쳐도 인사를 받지 않고 그냥 지나쳤어요.
같은 시대를 함께 겪은 동료 중 어떤 사람이 결국 어느 쪽에 섰는지, 그는 평생 잊지 않았어요.
같은 학교에서 같이 시위하던 친구가 10년 뒤 권력 편에 붙어 있는 걸 보는 기분과 비슷한데, 그 감각을 한용운은 끝까지 지웠어요.
한용운은 총독부를 보기 싫어 북향집을 지었다
한용운의 집은 햇빛이 들지 않아요. 우연이 아니라 의도된 거예요.
1933년, 그는 성북동 산자락에 직접 집을 지었어요.
이름은 심우장(尋牛場)이에요.
'소를 찾는 집'이라는 뜻으로, 본래 선(禪) 수행에서 자기 본성을 찾아가는 과정을 가리키는 말이에요.
선(禪)은 불교 수행법 중 하나로, 경전을 외우는 대신 명상을 통해 마음 안에서 직접 깨달음을 찾는 방법이에요.
한국에서는 흔히 '참선'이라고 불러요.
그런데 이 집에는 이상한 점이 하나 있었어요.
한옥은 보통 햇볕을 받기 위해 남향으로 짓는데, 심우장은 일부러 북향으로 앉혀져 있었어요.
이유는 단 하나였어요.
남쪽으로 내려다보이는 자리에 조선총독부가 있었거든요.
조선총독부는 일제가 조선을 지배하기 위해 서울 한복판에 세운 식민지 통치 기관이에요.
한용운은 그 건물을 매일 아침 일어날 때마다 창밖에서 보고 싶지 않았어요.
그래서 그는 평생 햇빛이 잘 들지 않는 추운 집에서 살았어요.
정치적 신념을 말이나 글이 아니라, 자기가 매일 자고 깨는 집의 방향으로 표현한 거예요.
그것도 평생 그 불편을 감수하는 형태로요.
회사 사장이 싫다고 책상을 일부러 벽 쪽으로 돌려놓는 직원을 상상해보세요.
다만 그 책상이 그가 사는 집이고, 햇빛이 들지 않으며, 평생 그렇게 산다면 어떨까요.
한용운은 광복을 1년 앞두고 떠났다
한용운은 자기가 평생 기다리던 그날을, 1년 차이로 보지 못한 채 떠났어요.
1944년 6월 29일, 그는 심우장에서 숨졌어요.
향년 65세, 사인은 영양실조와 중풍이었어요.
일제 말기, 그는 창씨개명을 끝까지 거부하고, 학병 출정 권유도 거절했으며, 식량 배급조차 거부당한 상태였어요.
창씨개명은 일제가 조선인에게 일본식 이름을 쓰도록 강요한 정책이에요.
학병 출정은 조선의 청년을 일본군으로 끌어가기 위한 동원이었어요.
그는 이 두 가지 모두에 "아니오"라고 했어요.
그리고 1945년 8월 15일, 광복이 왔어요.
그날까지 정확히 1년 2개월이 모자랐어요.
마라톤 결승선 100m 앞에서 쓰러진 사람과 비슷한데, 그 거리가 시간으로는 1년이었다는 점만 달라요.
그가 평생 등지고 살았던 조선총독부가 무너지는 그 장면을, 결국 보지 못했어요.
그래서 가끔 이런 생각이 들어요.
심우장 북향 창문 너머로, 그는 마지막까지 무엇을 기다리고 있었을까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