플레밍이 페니실린을 버릴 뻔한 날
플레밍은 휴가 가느라 페니실린을 발견했다
플레밍이 휴가 떠나기 전 책상을 치웠다면 항생제 시대는 오지 않았을지도 모릅니다.
1928년 9월, 런던 세인트메리병원의 세균학자 알렉산더 플레밍은 2주간의 가족 휴가를 마치고 실험실로 돌아왔어요.
책상 위에는 출발 전 미처 정리 못 한 포도상구균 배양 접시들이 산처럼 쌓여 있었죠.
그 더미를 하나씩 치우다가 플레밍은 손을 멈췄어요.
접시 하나에 푸른 곰팡이(Penicillium notatum)가 피어 있었고, 곰팡이 주변 세균이 모두 죽어 동그랗게 빈 자리가 생겨 있었거든요.
냉장고 속 딸기잼에 곰팡이가 핀 상황이라면 보통은 그냥 버리죠.
하지만 플레밍은 버리지 않았어요.
그는 동료에게 그 접시를 들이밀며 말했어요. "이거 좀 봐, 신기하지 않아?"
그 '신기하다'는 감각 하나가, 수억 명의 목숨을 바꿔놨습니다.
플레밍은 자기 콧물에서 첫 항균물질을 찾았다
페니실린이 발견되기 6년 전, 플레밍은 이미 자기 콧물에서 세균을 죽이는 효소를 찾아냈어요.
1922년, 감기에 걸린 플레밍은 자기 콧물 한 방울을 세균 배양 접시에 떨어뜨려 봤어요.
며칠 뒤, 콧물이 닿은 자리 주변 세균이 모두 녹아 없어져 있었습니다.
그는 이 효소에 라이소자임(lysozyme)이라는 이름을 붙였어요.
'세균을 녹이는(lyse) 효소(enzyme)'라는 뜻으로, 지금도 우리 침과 눈물에 들어 있는 천연 항균 물질이에요.
상처에 침을 바르면 낫는다는 감각, 사실 완전히 틀린 말이 아니었던 거예요.
페니실린 발견이 '순전한 우연'이라는 말은 절반만 맞아요.
플레밍은 더럽고 버려질 것에서 약의 단서를 찾는 사람이었어요.
그 콧물 실험이 있었기에, 6년 뒤 곰팡이 핀 접시를 버리지 않을 수 있었습니다.
플레밍은 페니실린을 약으로 만들지 못했다
페니실린의 진짜 영웅은 플레밍이 아니에요.
플레밍은 1929년 곰팡이가 세균을 죽인다는 사실을 논문으로 발표했지만, 그 다음이 문제였어요.
곰팡이 전체가 아니라 약효 성분만 뽑아 정제하는 작업에 반복해서 실패했거든요.
1934년 무렵, 플레밍은 사실상 연구를 접은 상태였어요.
그러다 1939년부터 옥스퍼드 대학에서 하워드 플로리(Howard Florey, 호주 출신 병리학자)와 언스트 체인(Ernst Chain, 독일계 생화학자) 팀이 이 문제를 새로 잡았어요.
두 사람은 2년 만에 페니실린을 정제하고 대량 생산하는 방법을 완성해냈습니다.
1942년, 드디어 첫 환자가 페니실린으로 목숨을 건졌어요.
어떤 요리의 핵심 재료를 발견했지만, 그 음식을 완성한 건 다른 요리사였던 셈이죠.
1945년 노벨 생리의학상은 세 사람 공동 수상이었지만, 세상의 영광은 발견자 플레밍에게 쏠렸어요.
플레밍은 노벨상 연설에서 내성을 경고했다
페니실린을 발견한 사람은, 페니실린이 망가질 미래를 가장 먼저 본 사람이기도 했어요.
1945년 12월 11일 스톡홀름, 노벨상 수상 연설 자리에서 플레밍은 축배 대신 경고를 꺼냈습니다.
"약을 너무 적게, 너무 짧게 쓰면 세균이 페니실린에 면역을 가지게 된다. 그렇게 죽은 사람의 죽음에는 약을 잘못 쓴 자가 도덕적 책임을 진다."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과학자 중 한 명이, 자기가 발견한 약의 위험성을 직접 경고한 순간이었어요.
신기술 발표회에서 발명자가 "이 기술이 언젠가 당신들을 위협할 겁니다"라고 말하는 장면을 상상하면 그 무게가 느껴지죠.
그리고 인류는 그 경고를 무시했어요.
80년이 지난 지금, MRSA(메티실린 내성 황색포도알균)라는 슈퍼박테리아가 병원 안에서 퍼지고 있어요.
여러 항생제를 동시에 써도 죽지 않는 세균으로, 감염되면 치료할 방법이 거의 없습니다.
플레밍이 1945년 연설에서 정확히 묘사한 그 미래가, 지금 현실이 됐어요.
세균은 경고장을 받은 적 없다는 듯, 조용히 진화했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