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턴이 자기 눈을 유언으로 남긴 이유, 원자론과 색맹의 비밀
돌턴은 12살에 동네 학교의 선생이 됐다
근대 화학의 출발점을 만든 사람은 대학을 다닌 적이 없는 시골 학교의 선생이었어요.
존 돌턴은 1766년 잉글랜드 북부 컴벌랜드의 작은 마을에서 태어났어요.
아버지는 가난한 직조공이었고, 가정 형편상 제대로 된 교육을 받기 어려웠어요.
그런데 그가 처음 학생들 앞에 선 건 12살 때였어요.
퀘이커는 17세기 영국에서 생긴 기독교의 한 분파예요.
"모든 사람 안에 신이 있다"는 신념을 가졌고, 신분이나 학벌보다 근면과 탐구를 중시했어요.
돌턴은 그 공동체 안에서 질문하는 법을 먼저 배웠어요.
15세부터는 형과 함께 켄들이라는 도시에서 학교를 직접 운영했어요.
27세에야 맨체스터의 뉴 칼리지에 수학·자연철학 강사로 자리를 얻었어요.
뉴 칼리지는 영국 국교회 바깥의 종교 단체가 세운 사립 학교로, 당시 국교회를 따르지 않는 사람이 들어갈 수 있는 몇 안 되는 고등 교육 기관이었어요.
돌턴은 평생 학사 학위를 받은 적이 없어요.
하지만 그 독학의 끝에서 나온 것이 인류 역사상 가장 중요한 과학 아이디어 중 하나였어요.
돌턴은 자기 자신을 첫 색맹 환자로 기록했다
인류 최초의 색맹 논문은 환자가 아니라 화학자가 자기 자신을 관찰하고 쓴 것이었어요.
어느 날 돌턴은 퀘이커 모임에 갔다가 뜻하지 않게 민망한 상황을 맞았어요.
퀘이커 교인들은 화려한 색을 피하고 수수한 옷차림을 원칙으로 했는데, 그가 신고 온 양말이 눈에 띄게 빨간색이었던 거예요.
문제는 돌턴 본인의 눈에는 그 양말이 회색으로 보였다는 거예요.
그는 여기서 멈추지 않고 자기 눈을 관찰 대상으로 삼았어요.
1794년 맨체스터 문학철학회에서 "시각의 색에 관한 비범한 사실"이라는 논문을 발표했는데, 자신과 형이 겪은 색 인식 이상을 체계적으로 기록한 내용이었어요.
이것이 인류 역사상 최초로 색맹을 과학적으로 기술한 문헌이에요.
그 덕분에 오늘날 색맹을 가리키는 학술 용어인 돌터니즘(Daltonism)에 그의 이름이 영원히 새겨졌어요.
자기 눈의 결함을 부끄러워한 게 아니라 논문으로 발표했을 때 생긴 일이에요.
이런 이야기도 있어요.
1832년 돌턴은 윌리엄 4세 앞에서 명예 박사학위를 받는 자리에 섰어요.
퀘이커 신자는 화려한 옷을 피하는 게 원칙이라 진홍색 박사 가운이 곤란했는데, 그 진홍색이 그의 눈에는 칙칙한 회색으로 보여서 아무 거리낌 없이 입고 들어갔다는 이야기가 전해져요.
돌턴은 1808년 원자론을 발표했지만 숫자는 절반이 틀렸다
돌턴의 원자론은 인류가 가진 가장 중요한 아이디어 중 하나가 됐어요.
그런데 그가 계산한 원자량 표는 절반이 틀린 채로 인쇄됐어요.
1808년 돌턴은 "화학 철학의 새로운 체계" 1권을 출간하며 다섯 가지 핵심 가설을 제시했어요.
모든 물질은 더 이상 쪼갤 수 없는 작은 입자인 원자로 이루어져 있다는 것, 같은 원소의 원자는 크기와 무게가 모두 같다는 것, 화합물은 원자들이 정해진 비율로 결합해 만들어진다는 내용이었어요.
오늘날 화학 교과서 첫 장의 내용이 여기서 나왔어요.
돌턴은 원소를 동그라미와 점·선으로 표현한 최초의 원자 기호 체계도 직접 만들었어요.
오늘날의 주기율표가 등장하기 60년 전의 일이에요.
그런데 돌턴은 물 분자를 H₂O가 아니라 HO라고 잘못 가정했어요.
수소 원자 하나와 산소 원자 하나가 결합한다고 봤고, 그 결과 산소의 원자량을 16이 아닌 8로 계산했어요.
이 오류가 이후 원자량 표 전체로 번졌어요.
시험으로 치면 풀이 방향은 완벽하게 맞았는데 중간 계산 한 줄이 틀려서 최종 답이 다 어긋난 상황이에요.
하지만 그 풀이 방향이 너무 정확했기 때문에 오류를 수정하는 데 50년이 걸렸어요.
1860년 독일 카를스루에에서 열린 첫 국제 화학자 회의, 카를스루에 회의에서야 비로소 정리됐어요.
아이디어의 골격이 옳으면 숫자는 나중에 고칠 수 있어요.
돌턴이 남긴 건 틀린 숫자가 아니라 물질을 바라보는 새로운 틀이었어요.
돌턴은 죽은 뒤 자기 눈을 적출하라 유언했다
돌턴은 죽기 전, 자기 눈을 도려내 보존해 달라고 부탁했어요.
자신이 평생 풀지 못한 질문을 다음 세대에게 넘기기 위해서였어요.
색맹 논문을 발표한 1794년부터 그는 자신의 색맹이 왜 생기는지 궁금해했어요.
그가 세운 가설은 "눈 안에 있는 액체가 푸른빛을 띠기 때문에 특정 색을 걸러낸다"는 것이었어요.
하지만 살아 있는 동안 자기 눈 안쪽을 들여다볼 방법은 없었어요.
그래서 친구이자 의사였던 조지프 랜섬에게 부탁을 남겼어요.
죽은 뒤 안구를 적출해 직접 확인해 달라고요.
1844년 7월 27일, 돌턴은 맨체스터에서 사망했어요.
랜섬은 유언대로 안구를 적출해 안쪽 액체를 살폈고, 돌턴이 세웠던 가설이 틀렸다는 것을 확인했어요.
액체는 투명했어요.
두 안구는 맨체스터 문학철학회에 보존됐어요.
그로부터 151년이 지난 1995년, 케임브리지 연구진이 그 안구에서 DNA를 추출해 분석했어요.
돌턴에게는 녹색을 감지하는 색소 유전자 자체가 없었다는 결과가 나왔어요.
한 가지를 더 알면 좋아요.
돌턴은 21세부터 죽기 전날까지 57년간 매일 기상을 관찰하고 기록했어요.
약 20만 건에 달하는 관측 일지예요.
1844년 7월 26일, 죽기 하루 전 마지막으로 적은 문장은 이거였어요.
"오늘은 비가 조금 내렸음."
떨리는 손으로 쓴 문장이었어요.
자기 눈 안에 있는 답을 확인하지 못할 걸 알면서도, 그 눈을 미래 과학자에게 남긴 사람이 있었어요.
그 답이 도착하는 데 151년이 걸렸어요.
지금 당신이 풀지 못하는 질문은 얼마나 오래 기다릴 수 있을까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