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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에는 덕이면 충분하다안티스테네스

카비르가 죽자, 힌두인과 무슬림은 시신을 누가 데려갈지를 두고 칼을 뽑았어요.
1518년 무렵, 카비르가 마가르라는 작은 마을에서 숨을 거뒀어요.
힌두 제자들은 화장을 주장했고, 무슬림 제자들은 매장을 주장하며 물러서지 않았어요.
두 무리는 시신을 사이에 두고 대치했어요.
그런데 전설은 여기서 기이하게 흘러가요.
누군가 시신을 덮은 천을 들췄을 때, 그 아래엔 카비르의 몸이 없었어요.
꽃 무더기만 남아 있었다는 거예요.
힌두 제자들은 그 꽃을 가져다 화장터에 올렸고, 무슬림 제자들은 나머지를 무덤에 묻었어요.
오늘날 마가르에는 힌두 사원과 이슬람 묘소가 나란히 서 있어요.
둘 다 카비르를 자기 성인이라고 불러요.
카비르는 살아 있는 동안 두 종교의 의례를 하나씩 들며 전부 비판했던 사람이에요.
그런데 그가 죽자 양쪽이 그를 자기 편으로 끌어당겼어요.
회사를 떠나면서 두 부서를 모두 신랄하게 비판했던 직원이 죽자, 양쪽이 "우리 팀원이었다"고 싸우는 것과 같은 아이러니예요.

인도 사상사를 흔든 시인 카비르는 평생 자기 이름조차 쓸 줄 몰랐어요.
카비르는 15세기 초 베나레스에서 태어났어요.
베나레스는 지금의 바라나시로, 힌두교에서 가장 신성한 도시예요.
갠지스 강이 흐르는 그곳에서 카비르의 집안은 대대로 베틀 앞에 앉아 천을 짰어요.
가난한 무슬림 직조공 가족이었어요.
카비르는 학교를 다닌 적이 없었고, 글을 배운 적도 없었어요.
하지만 카비르에게는 베틀이 있었어요.
그는 천을 짜면서 시를 읊었어요.
즉흥으로, 그 자리에서, 큰 소리로.
제자들이 그 옆에서 받아 적었고, 그렇게 시가 세상에 남았어요.
학교를 한 번도 다니지 않은 공장 노동자가 즉흥으로 흥얼거린 노래가 수백 년 뒤 경전에 실리는 거예요.
오늘날로 치면 공장 생산 라인에서 일하는 사람이 쉬는 시간에 중얼거린 말이 철학 교과서에 실리는 것과 같아요.
글을 몰랐던 사람의 말이, 글을 가장 많이 아는 사람들의 경전이 된 거예요.

카비르는 메카로 가는 순례자도, 갠지스에서 목욕하는 브라만도 똑같이 헛수고라 불렀어요.
브라만은 힌두교 사회에서 제사와 의례를 담당하는 최상위 계층이에요.
갠지스 강에서 목욕하면 죄가 씻긴다고 가르쳤어요.
카비르는 그 의례를, 무슬림의 메카 순례를, 우상 앞에 절하는 행위를 하나씩 들어 조롱했어요.
카스트 제도도 예외가 아니었어요.
카스트 제도는 태어난 신분에 따라 평생의 역할과 지위가 정해지는 힌두 사회의 구조예요.
오늘날로 치면 부모의 직업이나 출신 학교로 인생 전체가 결정되는 사회예요.
카비르는 이 구조 자체가 신과 무관하다고 봤어요.
그의 외침은 결국 하나로 모아졌어요.
"신은 사원에도 모스크에도 없다, 네 호흡 속에 있다."
의례보다 내면을 보라는 거예요.
형식이 아니라 직접 체험이 진짜라는 거예요.
그런데 신기한 일이 벌어졌어요.
두 종교를 모두 통째로 부정했는데, 힌두교도와 무슬림 양쪽에서 제자들이 몰려왔어요.
종교 의례를 충실히 따랐지만 삶이 나아지지 않는다고 느끼던 사람들에게, 카비르의 말은 오랫동안 기다리던 말처럼 들렸어요.
카비르가 죽고 한 세기 뒤, 그를 가장 닮은 종교가 펀자브에서 태어났어요.
시크교예요.
15세기 말 구루 나낙이 창시한 종교로, 힌두교도 이슬람도 아닌 제3의 길을 선언했어요.
구루 나낙은 카비르의 사상에 깊이 영향을 받았고, 그 흔적은 시크교 전반에 고스란히 남았어요.
시크교는 카스트를 부정하고, 우상 숭배를 거부하고, 신은 형상이 없다고 가르쳤어요.
결국 카비르가 평생 외쳤던 것들이 한 세기 뒤 새로운 종교의 교리가 된 셈이에요.
그 결과는 숫자로 확인돼요.
시크교 경전인 구루 그란트 사히브에는 카비르의 시가 500편 이상 정식으로 수록되어 있어요.
구루 그란트 사히브는 시크교의 성서이자, 예배 때마다 낭독되는 살아 있는 경전이에요.
오늘날 시크교 신자는 전 세계에 약 3천만 명이 넘어요.
그 3천만 명의 경전 안에, 글을 한 자도 모르던 베나레스의 직조공이 베틀 앞에서 읊었던 시가 살아 있어요.
모든 정당을 비판하며 떠난 사람이 죽은 뒤 그의 발언이 새 정당의 강령이 된 것처럼요.
카비르는 어느 종교에도 속하지 않으려 했는데, 그 거부 자체가 새로운 종교의 씨앗이 됐어요.
베틀 앞의 직조공이 5백 년 뒤 3천만 명의 기도 속에 살아 있다는 이 사실을, 과연 카비르 자신은 어떻게 생각했을까요.
TTS 음성이 없어요.
아래 버튼으로 나레이션을 생성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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