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pyright © Origin Corp. All Rights Reserved.
v1.0.10
로딩 중입니다
행복에는 덕이면 충분하다안티스테네스

1750년대 일본, 칼 찬 사무라이의 이름만 들어도 절을 해야 했던 시절에, 시골 의사 하나가 그들을 도둑이라 적었어요.
안도 쇼에키는 일본 동북부의 추운 항구 도시 하치노헤에서 가난한 농민들을 진료하는 의사였어요.
그가 쓴 대표작 『자연진영도』는 제목 그대로 '자연이 다스리는 참된 세상의 원리'를 담겠다는 책이에요.
이 책에서 쇼에키는 사무라이, 승려, 유학자를 모두 '불경탐식자(不耕貪食者)'라고 불렀어요.
불경탐식이란 "농사를 짓지 않으면서 남의 곡식을 탐내 먹는 자"라는 뜻이에요.
오늘날로 치면, 직접 밥벌이도 하지 않으면서 다른 사람의 노동으로 먹고사는 이들을 대놓고 "당신들은 도둑"이라고 쓴 거예요.
에도 시대는 17세기부터 19세기까지 이어진 일본 봉건 사회예요.
이 시대의 사무라이는 그냥 직업이 아니었어요.
그들은 다른 계급의 사람을 법적으로 즉결 처단할 수 있는 지배층이었어요.
그런 시대에, 이름 없는 시골 의사가 그 지배층 전체를 향해 "당신들이 바로 도둑"이라고 손가락을 겨눈 거예요.

쇼에키가 원한 건 단순히 "좀 더 평등한 사회"가 아니었어요.
그는 계급 자체를 아예 없애버리자고 했어요.
그의 핵심 사상은 '만인직경(萬人直耕)'이에요.
"모든 사람이 직접 땅을 갈아야 한다"는 주장이에요.
사무라이든, 승려든, 상인이든, 왕족이든 예외 없이 논밭에 나가 자기 손으로 식량을 생산해야 한다는 뜻이에요.
마르크스가 『공산당 선언』에서 계급 철폐를 외친 게 1848년이에요.
쇼에키는 그보다 약 100년 앞선 1750년대에, 봉건 일본의 시골 방 안에서 이미 같은 결론에 도달해 있었어요.
오늘날 언어로 번역하면 이런 선언이에요.
"대기업 임원도, 국회의원도, 스님도, 교수도 예외 없이 직접 자기 식량을 생산해야 한다."
그게 쇼에키가 꿈꾼 세상이었어요.

에도 시대에 가장 위험한 책을 쓴 사람은, 아무도 자기를 몰라도 괜찮다고 생각했어요.
쇼에키는 에도(지금의 도쿄)나 교토 같은 중심부로 나가지 않았어요.
일본 동북부의 추운 변방 하치노헤에 머물면서 평생 가난한 농민들을 치료하는 의사로 살았어요.
그는 출판도, 명성도 추구하지 않았고, 극소수의 제자에게만 조용히 자기 사상을 전했어요.
어쩌면 그 침묵 자체가 더 무서운 확신이에요.
"이 생각이 얼마나 위험한지 안다. 그런데도 기록으로 남긴다. 내가 틀리지 않았다는 걸 알기 때문에."
쇼에키의 100여 권짜리 원고는, 그 고요한 확신이 쌓인 결과예요.
그는 1762년, 세상에 아무 흔적도 남기지 않고 떠났어요.
자기 이름을 알리겠다는 욕심보다, 자기가 본 진실을 기록해두는 일을 더 중요하게 여긴 사람이에요.

쇼에키가 죽고 137년이 지난 어느 날, 도쿄의 헌책방에서 누렇게 변한 원고 더미가 발견됐어요.
1899년, 도쿄대 학자 가노 고키치가 헌책방을 뒤지다 우연히 『자연진영도』 사본을 집어들었어요.
페이지를 넘기면서 그는 자기가 무엇을 쥐고 있는지 깨달았어요.
에도 시대에 봉건제를 정면으로 부정한, 지금까지 아무도 몰랐던 사상가의 전작이 거기 있었던 거예요.
하지만 그래도 쇼에키는 일본 바깥에는 여전히 알려지지 않았어요.
1949년, 캐나다 외교관 E. H. 노먼이 그를 영문으로 세계에 소개하면서 비로소 '에도 시대의 잊혀진 혁명가'라는 이름을 얻었어요.
죽은 지 187년 만의 일이에요.
헌책 더미에서 역사의 걸작이 건져지는 장면은, 어쩌면 쇼에키가 원했던 방식이었을 수도 있어요.
명성도 권력도 없이, 그냥 생각 자체만으로 남는 것.
"나를 기억하라"고 쓰지 않고 "이것이 진실이다"라고만 쓴 사람이, 결국 더 오래 살아남은 건 아닐까요.
TTS 음성이 없어요.
아래 버튼으로 나레이션을 생성할 수 있습니다.
1
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