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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에는 덕이면 충분하다안티스테네스

역사상 가장 권위 있는 장자 주석은, 죽은 동료의 책상에서 옮겨온 것일지 모른다.
5세기에 편찬된 일화집 세설신어(世說新語)가 기록한 내용이 그렇다.
세설신어는 위진남북조 시대 명사들의 언행을 모은 책인데, 이 책의 문학편에 충격적인 문장이 하나 등장한다.
철학자 곽상(郭象, ?~312)이 죽은 동료의 미완성 장자 주석을 몰래 가져다 자기 이름으로 발표했다는 것이다.
오늘날로 치면 이런 상황이다.
죽은 선배가 거의 다 써둔 박사 논문을 자기가 마무리해, 본인 이름으로 학회에 제출한 것.
그런데 그 논문이 이후 천 년 넘게 해당 분야의 교과서로 읽혔다면?
곽상의 장자 주석이 정확히 그 위치에 있다.

장자 주석을 훔쳤다는 의혹은 단순한 소문이 아니었다.
향수(向秀, 227~272)라는 진짜 저자가 따로 있었다.
향수는 죽림칠현의 한 사람이었다.
죽림칠현은 3세기 중국 위나라에서 혼란한 정치 현실을 거부하고 대나무 숲에 모여 술을 마시며 철학을 논했던 일곱 명의 지식인 모임이다.
그중 향수는 평생을 장자 주석 집필에 바쳤는데, 거의 완성 단계에서 이른 나이에 세상을 떠났다.
어린 아들은 원고를 정리할 능력이 없었다.
그 미완성 원고가 어떻게든 곽상의 손에 들어왔다.
곽상은 나중에 "나는 추수편과 지락편, 두 편만 손봤어"라고 변명했지만, 당대 사대부들조차 그 말을 믿지 않았다.
누군가의 사후에 발견된 미완성 소설에 결말을 덧붙여 자기 책으로 출판하고는 "편집만 했어요"라고 말하는 것.
당시 사람들 눈에는 그렇게 보였던 거다.

곽상의 결론은 단호했다.
만물은 누가 만든 것이 아니라, 그저 스스로 그렇게 된 것이다.
이것이 독화론(獨化論)이다.
한자 그대로 풀면 "홀로 변화한다"는 뜻인데, 핵심은 이거다.
우주를 만든 창조자도 없고, 만물이 흘러나온 근원도 없다는 것이다.
도가 철학에서는 도(道)를, 우주 만물의 어머니 같은 근원으로 봤다.
그런데 곽상은 그것조차 부정해버렸다.
오늘날 "빅뱅 이전에 무엇이 있었냐"는 질문 자체가 무의미하다고 보는 우주론과 묘하게 닮아있다.
4세기 동아시아에서 이건 굉장히 급진적인 선언이었다.
하지만 "모든 것은 스스로 생겨났다"고 주장한 그 책 자체가, 죽은 동료의 머리에서 옮겨왔을지 모른다는 아이러니가 따라붙는다.
사상이 아무리 독창적이어도, 그 사상을 담은 원고의 출처가 불분명하다면 얘기가 달라진다.

평생 장자를 연구한 사람이, 정작 가장 멀리한 것은 장자가 말한 은둔이었다.
곽상은 동해왕 사마월(司馬越)의 태부주부로 임명됐다.
쉽게 말하면, 서진(西晉) 말기의 실권자 밑에서 핵심 참모 역할을 맡은 것이다.
서진은 3세기 말~4세기 초 중국의 왕조로, 내분이 극심해 멸망 직전의 혼란기였다.
진서(晉書)는 그가 권세를 휘둘러 당시 사람들이 미워했다고 기록한다.
진서는 당나라 때 편찬된 서진의 공식 역사서로, 당대인의 시선을 가장 직접적으로 담은 사료다.
자본주의의 폐해를 비판하는 책으로 명성을 얻은 교수가 정작 대기업 사외이사로 거액 보수를 받는 상황이라고 하면 딱 맞다.
장자의 가르침은 세속의 권력에서 벗어나 자유롭게 사는 것이었다.
결국 곽상은 그 가르침을 주석하면서, 정작 자신은 권력의 핵심에 앉아 있었다.
그 주석이 누군가의 것일 수도 있다는 의혹까지 얹히면, 우리는 이상한 질문 앞에 서게 된다.
이 사람이 진짜로 믿은 것은 무엇이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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