햇빛 좀 가리지 마라디오게네스
햇빛 좀 가리지 마라디오게네스
스마트폰을 꺼내서 날씨 앱을 열어보세요.
"내일 강수확률 60%."
이 숫자, 한 번쯤 의심해본 적 있나요?
60%면 비가 오는 건가, 안 오는 건가.
우산을 챙겨야 하나, 말아야 하나.
우리는 매일 이 숫자를 보면서도, 정작 '확률'이 뭔지 깊이 생각해본 적은 별로 없습니다.
사실 '확률'이라는 개념은 원래 이 세상에 없었습니다.
동전을 던지면 앞면이 나올 가능성이 반반이라는 것.
이런 당연해 보이는 생각을 누군가가 처음으로 체계적으로 정리해야 했습니다.
그 '누군가' 중 가장 중요한 사람이 바로 오늘의 주인공입니다.
프랑스의 수학자, 피에르시몽 라플라스.
그는 확률을 학문으로 만든 사람일 뿐 아니라, 한술 더 떠서 이런 질문을 던진 사람이기도 합니다.
"만약 우주의 모든 것을 아는 존재가 있다면, 그 존재는 미래를 완벽하게 예측할 수 있지 않을까?"
황당하게 들리시죠?
하지만 이 질문 하나가 과학의 역사를 바꿨습니다.
1749년, 프랑스 북서쪽 노르망디의 작은 마을.
라플라스는 평범한 농부의 아들로 태어났습니다.
그 시대에 농부의 아들이 할 수 있는 일은 정해져 있었습니다.
밭을 갈거나, 성당에서 일하거나.
학문의 세계는 귀족과 부유한 집안의 것이었죠.
그런데 이 소년에게는 남다른 점이 하나 있었습니다.
숫자를 보면 그 안에서 패턴이 보였다는 겁니다.
마을 사람들이 알아볼 정도로 머리가 비상했던 라플라스는, 주변의 도움으로 간신히 파리로 갈 기회를 얻었습니다.
파리에 도착한 스무 살의 청년 앞에는 거대한 벽이 있었습니다.
학벌도, 인맥도, 돈도 없었으니까요.
라플라스는 당시 프랑스 최고의 수학자 중 한 명이었던 달랑베르를 찾아갔습니다.
추천서를 들고 간 게 아닙니다.
자기가 직접 쓴 수학 논문을 들고 갔습니다.
달랑베르는 처음에 이 시골 청년을 거들떠보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논문을 읽고 나서 생각이 바뀌었습니다.
며칠 뒤, 달랑베르는 라플라스에게 파리 육군사관학교의 수학 교수 자리를 추천해주었습니다.
농부의 아들이 파리 학계에 첫발을 디딘 순간이었습니다.
여기서부터 라플라스의 질주가 시작됩니다.
그는 천체의 움직임을 수학으로 설명하는 데 몰두했고, 20년에 걸쳐 다섯 권짜리 대작 《천체역학》을 썼습니다.
뉴턴이 "행성이 왜 도는지"를 설명했다면, 라플라스는 "행성이 앞으로 어디로 갈지"를 계산해낸 사람이었습니다.
이 책을 나폴레옹에게 바쳤을 때, 유명한 일화가 탄생합니다.
나폴레옹이 물었습니다.
"이 방대한 체계에서 신은 어디에 있소?"
라플라스는 담담하게 대답했습니다.
"폐하, 저는 그 가설이 필요하지 않았습니다."
이 한마디는 단순한 무례가 아니었습니다.
우주의 작동 방식을 설명하는 데 신비로운 힘이 아니라 수학만으로 충분하다는, 과학적 자신감의 선언이었습니다.
당구를 쳐본 적 있나요?
흰 공으로 빨간 공을 치면, 빨간 공이 어디로 굴러갈지 대충 예상할 수 있죠.
공의 위치, 치는 각도, 힘의 세기.
이 세 가지를 정확히 안다면, 빨간 공이 어디에 멈출지 정확히 계산할 수 있습니다.
라플라스는 이 논리를 우주 전체로 확장했습니다.
당구대 위에 공이 두 개가 아니라 수십억 개라고 상상해보세요.
아니, 우주에 존재하는 모든 원자가 당구공이라고 생각해보세요.
만약 어떤 초월적인 존재가 이 모든 원자의 위치와 속도를 한꺼번에 알 수 있다면?
그리고 그 존재가 무한한 계산 능력까지 갖추고 있다면?
그 존재는 1초 뒤, 1년 뒤, 1만 년 뒤의 우주를 완벽하게 예측할 수 있을 것입니다.
내일 비가 올지, 100년 뒤 어떤 아이가 태어날지, 저 먼 별이 언제 폭발할지까지.
이것이 바로 라플라스의 악마입니다.
"악마"라고 이름 붙여졌지만, 사실 라플라스 본인은 이 단어를 쓴 적이 없습니다.
그는 그저 "하나의 지성"이라고 표현했을 뿐이죠.
후대 사람들이 이 무시무시한 존재에게 "악마"라는 별명을 붙여준 겁니다.
이 생각이 왜 중요할까요?
라플라스의 악마는 이런 뜻이기 때문입니다.
우주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은 이미 정해져 있다.
과거가 현재를 만들고, 현재가 미래를 만든다.
우연이란 없다.
우리가 "우연"이라고 부르는 것은, 단지 우리가 모르기 때문에 우연처럼 보이는 것뿐이다.
이것을 어려운 말로 결정론이라고 합니다.
쉽게 말하면, 우주는 거대한 도미노라는 뜻입니다.
첫 번째 도미노가 쓰러진 순간, 마지막 도미노가 언제 어떻게 쓰러질지는 이미 정해져 있다는 거죠.
그런데 여기서 이상한 점이 있습니다.
모든 게 정해져 있다고 믿은 사람이, 왜 확률을 연구했을까요?
답은 의외로 단순합니다.
라플라스는 이렇게 생각했습니다.
"우주는 정해져 있다. 하지만 우리 인간은 모든 걸 알 수 없다. 그러니 모르는 부분을 다루는 도구가 필요하다."
동전을 던져보겠습니다.
동전이 공중에서 몇 바퀴 도는지, 바람이 어느 방향으로 부는지, 손가락이 정확히 어떤 각도로 튕겼는지.
이 모든 것을 알면, 앞면이 나올지 뒷면이 나올지 계산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현실에서 우리는 이걸 다 알 수 없죠.
그래서 "반반"이라고 말하는 겁니다.
라플라스에게 확률은 무지의 측정이었습니다.
"얼마나 일어날 법한가"가 아니라, "우리가 얼마나 모르는가"를 숫자로 표현한 것이죠.
이 관점에서 라플라스는 1812년에 《확률의 해석적 이론》이라는 책을 썼습니다.
이 책은 확률론의 역사에서 가장 중요한 저작 중 하나로 꼽힙니다.
특히 이 책에서 라플라스가 정리한 개념 중 하나가, 오늘날 우리가 베이즈 정리라고 부르는 것입니다.
원래 영국의 목사 토머스 베이즈가 아이디어를 냈지만, 이것을 제대로 된 수학 공식으로 완성한 건 라플라스였습니다.
베이즈 정리를 일상의 예로 설명해볼게요.
병원에서 검사를 받았는데, 양성 판정이 나왔다고 합시다.
이 검사의 정확도는 95%입니다.
"그럼 내가 진짜 아플 확률도 95%겠네?" 이렇게 생각하기 쉽죠.
하지만 그렇지 않습니다.
그 병에 걸린 사람이 1000명 중 1명뿐이라면, 양성 판정을 받고도 실제로 아플 확률은 약 2%밖에 안 됩니다.
나머지 98%는 거짓 양성, 즉 오진입니다.
왜 이런 일이 생길까요?
새로운 정보(검사 결과)는 기존에 알고 있던 정보(발병률)와 합쳐서 판단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이것이 베이즈 정리의 핵심입니다.
그리고 이 원리는 오늘날 스팸 메일 필터, 인공지능 음성 인식, 자율주행 자동차의 판단 체계에 모두 들어가 있습니다.
라플라스가 200년 전에 정리한 수학이, 여러분의 스마트폰 안에서 지금 이 순간에도 돌아가고 있는 셈이죠.
라플라스의 악마는 꽤 오랫동안 과학자들을 매료시켰습니다.
"모든 것을 알면 모든 것을 예측할 수 있다."
이 꿈은 19세기 과학의 자신감 그 자체였습니다.
하지만 20세기에 접어들면서, 악마에게 치명적인 약점이 발견됩니다.
1927년, 독일의 물리학자 하이젠베르크가 이상한 사실을 발표했습니다.
아주 작은 세계, 원자보다도 작은 세계에서는 입자의 위치와 속도를 동시에 정확히 아는 것이 원리적으로 불가능하다는 겁니다.
이것이 유명한 불확정성 원리입니다.
라플라스의 악마가 존재하려면, 모든 입자의 위치와 속도를 동시에 알아야 합니다.
그런데 자연 자체가 그것을 허락하지 않는다면?
악마는 아무리 똑똑해도, 시작조차 할 수 없습니다.
도미노 비유로 돌아가볼까요.
라플라스는 우주가 거대한 도미노라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양자역학은 이렇게 말합니다.
"도미노 한 조각 한 조각이 쓰러지기 직전까지 어느 방향으로 쓰러질지 정해져 있지 않다."
악마는 진 겁니다.
완벽한 예측이라는 꿈은 물리학의 근본 법칙에 의해 불가능해졌습니다.
그런데 흥미로운 반전이 있습니다.
악마는 졌지만, 라플라스가 남긴 유산은 오히려 더 빛나게 되었습니다.
왜냐하면, 완벽한 예측이 불가능한 세상에서야말로 확률이 가장 필요하기 때문입니다.
오늘 아침 여러분이 본 날씨 앱의 강수확률.
넷플릭스가 추천해주는 영화 목록.
의사가 "이 수술의 성공률은 85%입니다"라고 말할 때.
인공지능이 사진 속 얼굴을 인식할 때.
이 모든 것의 뿌리에 라플라스의 확률론이 있습니다.
라플라스는 미래를 완벽하게 아는 악마를 꿈꿨습니다.
그 꿈은 실현되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그 대신, 그는 우리에게 불확실한 세상을 현명하게 살아가는 도구를 남겼습니다.
우리는 내일 비가 올지 100% 확신할 수 없습니다.
하지만 "60% 확률로 비가 온다"는 정보만으로도, 우산을 챙길지 말지 결정할 수 있죠.
완벽하게 아는 것이 불가능하다면, 불완전하게나마 아는 법을 배우면 됩니다.
그것이 라플라스가 우리에게 가르쳐준 것입니다.
농부의 아들이 우주를 계산하려 했던 그 대담한 꿈이, 결국은 가장 실용적인 유산이 된 셈입니다.
0
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