햇빛 좀 가리지 마라디오게네스
햇빛 좀 가리지 마라디오게네스
지금으로부터 천 년 전, 중앙아시아의 도시 부하라.
왕이 병에 걸렸다.
궁중 의사들이 모두 손을 들었다.
그런데 누군가 이렇게 말했다.
"그 소년을 불러보시죠."
소년의 이름은 이븐 시나.
그때 나이 겨우 열여섯이었다.
말도 안 되는 이야기처럼 들린다.
하지만 이 소년은 보통 아이가 아니었다.
열 살에 꾸란 전체를 암기했고, 열세 살에 의학 공부를 시작했다.
열여섯이 되었을 때 이미 의사들 사이에서 소문이 자자했다.
"그 아이는 책을 읽는 게 아니라, 책이 그 아이에게 읽힌다."
왕의 이름은 누흐 이븐 만수르.
사만 왕조의 군주였다.
소년 이븐 시나는 왕의 병을 진찰하고, 처방을 내렸다.
그리고 왕은 나았다.
이 일이 이븐 시나의 인생을 완전히 바꿨다.
감사의 표시로 왕은 궁중 도서관의 문을 활짝 열어주었다.
당시 부하라의 왕립 도서관은 세계에서 가장 방대한 지식의 보고 중 하나였다.
수학, 천문학, 철학, 의학 — 고대 그리스부터 페르시아, 인도까지.
온갖 지혜가 그 안에 잠들어 있었다.
열여섯 살 소년은 그 도서관에 들어가 나오지 않았다.
아침부터 밤까지 읽고 또 읽었다.
그리고 그는 거기서 나올 때, 세상이 아직 갖지 못한 무언가를 품고 있었다.
바로 모든 의학 지식을 하나로 엮겠다는 꿈이었다.
여러분이 아플 때 병원에 가면, 의사가 진찰하고 진단을 내린다.
"이 증상이면 이 병이고, 이 약을 쓰면 됩니다."
이게 당연하게 느껴지겠지만, 천 년 전에는 전혀 당연하지 않았다.
당시 의학은 엉망이었다.
어떤 의사는 "별의 위치가 나빠서 아픈 것"이라 했고, 어떤 의사는 "악령이 들었다"고 했다.
같은 병인데 나라마다, 도시마다, 의사마다 전혀 다른 말을 했다.
체계가 없었다.
의학 지식이 여기저기 흩어진 퍼즐 조각 같았다.
이븐 시나는 이 퍼즐을 맞추기로 했다.
그가 쓴 책의 이름은 알카눈 피 알팁, 우리말로 '의학정전'이다.
영어로는 'The Canon of Medicine'라고 부른다.
이 책이 얼마나 대단했냐고?
잠깐 상상해보자.
지금 여러분이 쓰는 스마트폰의 사용 설명서를 떠올려보라.
기능별로 깔끔하게 정리되어 있고, 문제가 생기면 해결법을 찾을 수 있다.
이븐 시나의 의학정전은 인체의 사용 설명서였다.
무려 다섯 권짜리.
1권은 의학의 기본 원리.
2권은 약물 목록 — 약초 하나하나의 효능을 정리했다.
3권은 머리부터 발끝까지, 장기별 질병을 다뤘다.
4권은 열병이나 종양처럼 온몸에 퍼지는 질병을 설명했다.
5권은 약을 직접 만드는 방법이었다.
놀라운 건 그 안에 담긴 생각들이다.
이븐 시나는 병이 눈에 보이지 않는 아주 작은 것에 의해 퍼질 수 있다고 썼다.
세균이 발견되기 800년 전의 일이다.
그는 또 새로운 지역에 도착한 여행자가 현지 물을 마시기 전에 물을 끓여야 한다고 조언했다.
지금은 상식이지만, 천 년 전에는 혁명적인 발상이었다.
전염병이 돌 때는 환자를 격리해야 한다고도 했다.
40일간 격리하라는 그의 권고에서 나온 것이 바로 '검역'이라는 개념의 원형이다.
이 책은 12세기에 라틴어로 번역되었다.
그리고 유럽 의과대학의 교과서가 되었다.
파리 대학, 몽펠리에 대학, 루뱅 대학.
유럽의 의대생들은 17세기까지, 그러니까 무려 600년 동안 이 책으로 공부했다.
한 사람이 쓴 의학 교과서가 600년간 쓰인다는 것.
그게 이븐 시나의 의학정전이다.
여기서 한 가지 오해를 풀어야 한다.
이븐 시나를 그저 "옛날의 유명한 의사"라고만 생각하면, 그의 절반만 본 것이다.
그는 철학자이기도 했다.
그것도 아주 독창적인 철학자.
이런 질문을 한번 해보자.
"나는 어떻게 '내'가 존재한다는 걸 아는 걸까?"
눈을 감아보라.
귀를 막아보라.
몸 전체의 감각이 사라진다고 상상해보라.
아무것도 보이지 않고, 들리지 않고, 만져지지 않는다.
중력도 느끼지 못한다.
공중에 둥둥 떠 있는 것이다.
그래도 "나는 존재한다"고 느낄 수 있을까?
이븐 시나는 "그렇다"고 답했다.
이것이 그 유명한 '떠다니는 인간' 사고실험이다.
이 실험이 말하고 싶은 것은 이렇다.
내가 존재한다는 것은 눈이나 귀 같은 감각에 의존하지 않는다.
몸이 없어도, 감각이 없어도, '나'라는 의식 자체는 존재한다.
다시 말해, 영혼(혹은 마음)은 몸과 다른 무엇이라는 뜻이다.
서양 철학에서 비슷한 말을 한 사람이 있다.
"나는 생각한다, 고로 존재한다."
르네 데카르트의 그 유명한 말이다.
그런데 이븐 시나가 이 생각을 한 것은 데카르트보다 600년 앞선 11세기였다.
이븐 시나는 이런 철학적 사유를 '치유의 서'라는 거대한 책에 담았다.
이름은 '치유'이지만, 몸의 치유가 아니라 무지의 치유를 뜻했다.
논리학, 자연학, 수학, 형이상학.
그리스의 아리스토텔레스가 닦아놓은 길 위에서, 이븐 시나는 완전히 새로운 길을 냈다.
특히 그는 존재에 대해 깊이 파고들었다.
"이 세상의 모든 것은 '있을 수도 있고 없을 수도 있는' 것이다.
하지만 반드시 존재해야 하는 무언가가 하나 있어야, 나머지 모든 것이 존재할 수 있다."
이것이 그의 필연적 존재자 개념이다.
복잡하게 들리지만, 비유하면 이렇다.
도미노를 생각해보라.
도미노 하나가 쓰러지면 다음 것이 쓰러진다.
하지만 맨 처음에 누군가가 첫 번째 도미노를 밀어야 한다.
이븐 시나는 우주 전체가 이런 도미노와 같고, 맨 처음 미는 손이 반드시 있어야 한다고 말한 것이다.
이 생각은 이슬람 세계뿐 아니라 중세 유럽의 기독교 철학자들에게도 큰 영향을 주었다.
토마스 아퀴나스가 신의 존재를 증명하려 할 때, 이븐 시나의 논증을 참고한 것은 유명한 이야기다.
이쯤에서 이런 생각이 들 수 있다.
"이렇게 대단한 사람이면 편안하게 궁전에서 존경받으며 살았겠지?"
전혀 아니다.
이븐 시나의 삶은 끊임없는 도주였다.
그가 스물두 살 때, 아버지가 세상을 떠났다.
비슷한 시기에 사만 왕조도 무너졌다.
하루아침에 후원자와 가족을 동시에 잃은 것이다.
그때부터 이븐 시나의 방랑이 시작되었다.
부하라를 떠나 구르간즈로, 구르간즈에서 다시 남쪽으로.
도시에서 도시로 옮겨 다니며 새 후원자를 찾아야 했다.
어떤 곳에서는 재상이 되었고, 어떤 곳에서는 감옥에 갇혔다.
맞다, 감옥이다.
이븐 시나는 정치적 음모에 휘말려 하마단이라는 도시에서 투옥되었다.
수개월간 갇혀 있었다.
그런데 놀라운 건 그 다음이다.
그는 감옥 안에서도 글을 썼다.
종이와 펜만 있으면 어디서든 사유를 멈추지 않았다.
의학정전의 일부도, 치유의 서의 일부도, 감옥과 도주의 시간 속에서 태어났다.
한번은 하마단에서 이스파한으로 도망칠 때, 수피(이슬람 신비주의자)로 변장했다는 이야기도 전해진다.
천하의 이븐 시나가 초라한 옷을 걸치고, 사막을 걸어서 국경을 넘은 것이다.
이스파한에 도착한 뒤에야 비교적 안정된 시간을 보냈다.
알라웃다울라라는 군주의 보호 아래, 그는 다시 연구에 몰두할 수 있었다.
천문 관측소를 세우고, 제자들을 가르치고, 미완성 원고를 마무리했다.
하지만 평화는 오래가지 않았다.
이스파한이 적에게 공격받으면서, 그의 소중한 원고 일부가 약탈당했다.
평생을 바쳐 쓴 글이 불타고 사라지는 것을 그는 지켜볼 수밖에 없었다.
이븐 시나는 쉰일곱 살에 세상을 떠났다.
당시로서는 적지 않은 나이지만, 그의 삶을 생각하면 짧게 느껴진다.
평생 전쟁과 정치의 소용돌이 속에 있었고, 항상 다음 도시를 향해 짐을 쌌다.
그런 삶 속에서 450편이 넘는 저작을 남겼다.
현재까지 전해지는 것만 약 240편이다.
도망치면서 책을 쓰고, 감옥에서 사유하고, 전쟁터에서 처방전을 쓴 사람.
이것이 이븐 시나의 진짜 초상이다.
이제 마지막 질문이다.
천 년 전 사람이 왜 지금 우리에게 중요할까?
첫째, 이븐 시나는 현대 의학의 할아버지다.
그가 정리한 진단 체계, 약물 분류법, 임상 시험의 초기 개념은 지금 우리가 병원에서 경험하는 모든 것의 뿌리에 닿아 있다.
그가 "병에는 눈에 보이지 않는 원인이 있다"고 말했을 때, 그것은 세균학의 씨앗이었다.
그가 "마음의 상태가 몸의 병을 만들 수 있다"고 썼을 때, 그것은 심신의학의 출발점이었다.
스트레스가 위장병을 만든다는 것, 우울증이 면역력을 떨어뜨린다는 것.
우리가 이제야 과학적으로 입증하고 있는 것들을 이븐 시나는 천 년 전에 관찰하고 기록했다.
둘째, 그는 경계를 넘는 사람이었다.
의학과 철학, 과학과 종교, 그리스와 페르시아, 이슬람과 기독교.
보통 사람들이 벽을 세우는 곳에서, 그는 다리를 놓았다.
그의 책이 아랍어에서 라틴어로, 다시 히브리어로 번역되며 세 문명을 연결한 것은 우연이 아니다.
지식은 국경을 모른다는 것을 그의 삶 자체가 증명했다.
셋째, 그는 불안정한 삶도 핑계가 될 수 없다는 것을 보여주었다.
감옥에서 글을 쓰고, 도망 중에 연구하고, 전쟁 속에서 제자를 가르쳤다.
완벽한 조건이 갖춰질 때까지 기다리지 않았다.
가진 것이 종이 한 장과 펜 한 자루뿐이어도, 그는 썼다.
이븐 시나의 무덤은 지금 이란의 하마단에 있다.
현대적인 탑 모양의 기념관이 세워져 있고, 해마다 수많은 사람이 찾아온다.
그 기념관 앞에 서면, 천 년 전의 목소리가 들리는 것 같다.
"세상의 모든 지식은 연결되어 있다.
몸과 마음이 연결되어 있듯이, 의학과 철학이 연결되어 있듯이.
벽을 세우지 마라.
다리를 놓아라."
열여섯에 왕을 치료한 소년은 그렇게 천 년을 건너, 지금 여기까지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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