햇빛 좀 가리지 마라디오게네스
햇빛 좀 가리지 마라디오게네스
상상해 보자. 전 세계 모든 대학교의 도서관, 위키피디아, 유튜브 강의를 하나로 합친 곳이 있다. 그런데 어느 날, 누군가 그곳에 불을 지른다. 서버가 타는 게 아니라, 파피루스 두루마리 수십만 개가 재가 된다.
이것이 알렉산드리아 도서관에서 실제로 벌어진 일이다. 기원전 3세기에 세워진 이 도서관은 고대 세계의 구글이었다. 수학, 천문학, 의학, 철학. 당시 인류가 알고 있던 거의 모든 지식이 이곳에 모여 있었다. 지중해를 건너온 학자들이 이 도서관 하나를 보려고 몇 달씩 배를 탔다.
서기 4세기, 이 도서관이 서서히 무너지고 있을 때. 바로 그 도시에서 한 여자가 수학을 가르치고 있었다. 그녀의 이름은 히파티아. 서양 역사에 기록된 최초의 여성 수학자다.
히파티아는 약 350년경 알렉산드리아에서 태어났다. 아버지는 테온. 알렉산드리아 도서관(정확히는 그 후신인 무세이온)에서 수학과 천문학을 가르치던 학자였다.
여기서 잠깐. 4세기에 여자가 수학을 한다는 것이 얼마나 이상한 일이었는지 생각해 보자. 비유하자면 이렇다. 요즘 초등학생이 회사 이사회에 앉아서 경영 전략을 발표하는 것과 비슷하다. 사람들이 "저 아이가 뭘 안다고?"라고 할 때, 그 아이가 실제로 이사들보다 더 날카로운 분석을 내놓는 상황이다.
히파티아의 아버지 테온은 달랐다. 그는 딸에게 당시 남자들에게만 허용되던 교육을 시켰다. 수학, 천문학, 철학. 그것도 대충이 아니라 최고 수준으로.
고대 기록에 따르면, 히파티아는 결국 아버지를 뛰어넘었다. 제자가 스승을 넘어선 것이다. 알렉산드리아의 학자들은 이렇게 말했다고 전해진다.
"테온의 딸이 아니라, 히파티아의 아버지라고 불러야 한다."
이건 단순한 칭찬이 아니다. 1600년 전, 여성의 이름 뒤에 아버지의 이름이 붙던 시대에, 아버지의 이름 뒤에 딸의 이름이 붙었다는 뜻이다.
히파티아는 무엇을 가르쳤을까? 먼저 원뿔곡선을 이야기해야 한다. 이름이 어렵지만, 실은 간단하다.
아이스크림 콘을 떠올려 보자. 그 콘을 칼로 비스듬히 자르면 단면에 타원이 나타난다. 똑바로 자르면 원이 나온다. 아주 가파르게 자르면 포물선이 되고, 더 가파르게 자르면 쌍곡선이 된다. 이 네 가지 곡선 — 원, 타원, 포물선, 쌍곡선 — 이 바로 원뿔곡선이다.
"그게 뭐 어때서?" 싶을 수 있다. 그런데 이 곡선들이 없으면 우리가 사는 세상이 멈춘다. 행성이 태양 주위를 도는 궤도가 타원이다. 위성 안테나의 접시 모양이 포물선이다. GPS 위성의 신호가 쌍곡선 원리로 위치를 계산한다.
히파티아는 기원전 3세기 수학자 아폴로니오스가 쓴 《원뿔곡선론》을 해설하고 가르쳤다. 오늘날로 치면, 아인슈타인의 상대성이론 원본 논문을 대학생도 이해할 수 있게 풀어서 강의한 셈이다.
그뿐이 아니다. 히파티아는 도구도 만들었다. 아스트롤라베라는 것이 있다. 쉽게 말해, 고대의 스마트폰이다. 이 금속 원판 하나로 별의 위치를 알 수 있고, 시간을 잴 수 있고, 방향을 찾을 수 있었다. 네비게이션, 시계, 나침반이 하나에 합쳐진 기기다. 히파티아는 이 아스트롤라베를 개량했다고 전해진다.
또 하나. 비중계도 만들었다. 액체에 막대를 넣으면 얼마나 깊이 가라앉는지로 그 액체의 밀도를 측정하는 도구다. 소금물과 민물을 구별하거나, 와인에 물을 탔는지 확인할 때 쓸 수 있다. 1600년 전에 식품 검사 도구를 만든 셈이다.
히파티아의 명성은 알렉산드리아를 넘어 로마 제국 전체로 퍼졌다. 멀리 키레네(지금의 리비아)에서 온 시네시오스라는 학생은 나중에 주교가 된 뒤에도 히파티아에게 편지를 보내 과학적 조언을 구했다. 그의 편지들이 지금까지 남아 있어서 우리가 히파티아의 삶을 알 수 있는 것이다.
흥미로운 점이 있다. 시네시오스는 기독교 주교였다. 그런데 히파티아는 기독교인이 아니었다. 그녀는 신플라톤주의 철학자였다. 쉽게 말해, "세상의 진리는 이성과 논리로 찾을 수 있다"고 믿는 사람이었다.
종교가 다른데도 서로를 존경했다. 히파티아의 강의실에는 기독교인, 이교도, 유대인이 함께 앉았다. 종교가 아니라 지식이 입장권이었다. 이것이 가능했던 시대가 있었다. 하지만 그 시대는 끝나고 있었다.
415년의 알렉산드리아. 이 도시는 지금의 서울처럼 모든 권력이 집중된 곳이었다. 그리고 세 명의 핵심 인물이 있었다.
오레스테스. 로마 제국이 파견한 총독이다. 오늘날로 치면 시장이나 도지사 같은 사람이다. 그는 제국의 법과 질서를 지키려 했다.
키릴로스. 알렉산드리아의 기독교 주교다. 종교 지도자이지만, 사실상 정치적 권력도 갖고 있었다. 수천 명의 열성적 신도를 이끌고 있었으니까.
이 두 사람은 충돌했다. 이유는 단순하다. 누가 알렉산드리아의 진짜 보스인가. 총독 오레스테스는 종교와 정치를 분리하려 했다. 주교 키릴로스는 종교의 영향력을 넓히려 했다. 오늘날에도 익숙한 갈등이다.
그리고 여기에 히파티아가 있었다. 히파티아는 오레스테스의 정치적 조언자였다. 그녀의 집에는 도시의 유력 인사들이 드나들었다. 그녀는 이성과 대화로 갈등을 풀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문제는, 키릴로스 진영에서 히파티아를 "오레스테스와 주교의 화해를 방해하는 여자"로 본 것이다. 학문적으로 존경받는 여성이 정치적 영향력까지 가진 것이 위협이었다.
415년 3월, 어느 사순절 기간이었다. 히파티아가 마차를 타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이었다. 파라발라노이라 불리는 기독교 수도승 집단이 그녀를 마차에서 끌어내렸다. 그들은 히파티아를 교회로 끌고 가 살해했다.
조개껍데기 파편으로 그녀의 살을 벗겼다고 전해진다. 1600년이 지난 지금 읽어도 잔인하다.
히파티아의 죽음은 학문적 논쟁의 결과가 아니었다. 순수한 정치적 살인이었다. 그녀가 틀린 말을 해서가 아니라, 맞는 말을 너무 큰 영향력으로 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키릴로스가 직접 지시했는지는 역사학자들 사이에서 여전히 논쟁 중이다. 하지만 그의 정치적 분위기가 이 살인을 가능하게 했다는 점은 대부분 동의한다.
히파티아가 죽은 뒤, 알렉산드리아는 빠르게 변했다. 학자들이 도시를 떠나기 시작했다. 도서관의 남은 자료들은 흩어졌다. 고대 세계의 구글은 서서히 404 에러를 띄우기 시작한 것이다.
물론 히파티아의 죽음 하나가 고대 학문의 종말을 가져온 것은 아니다. 로마 제국의 분열, 종교적 갈등, 경제적 쇠퇴. 원인은 복합적이었다. 하지만 히파티아의 죽음은 하나의 상징이 되었다. "이성이 권력 앞에서 무릎 꿇은 순간"이라는 상징.
그런데 이상한 일이 있다. 히파티아의 저작은 하나도 남아 있지 않다. 그녀가 쓴 수학 논문, 천문학 해설, 철학 강의록. 전부 사라졌다. 우리가 히파티아를 아는 것은 오직 제자들의 편지와 후대 역사가들의 기록 덕분이다.
책은 불탔다. 파피루스는 썩었다. 하지만 궤도는 남았다. 무슨 뜻이냐면, 히파티아가 가르친 학생들이 다른 곳에서 가르쳤고, 그 학생들이 또 다른 학생들을 가르쳤다는 뜻이다. 지식의 궤도는 한 사람이 죽는다고 멈추지 않는다.
오늘날 히파티아의 이름은 여러 곳에 살아 있다. 소행성 238번의 이름이 히파티아다. 1884년에 발견된 이 소행성은 화성과 목성 사이를 돌고 있다. 별을 계산하던 여자의 이름이 별에 붙은 것이다.
달에도 히파티아 크레이터가 있다. 고요의 바다 남쪽, 지름 41킬로미터의 분화구다. 유럽우주국(ESA)의 우주 망원경 프로젝트에도 그녀의 이름이 검토된 적 있다. 2009년 스페인 영화 《아고라》는 레이첼 와이즈가 히파티아를 연기해 그녀의 이야기를 전 세계에 알렸다.
히파티아는 이제 단순한 역사 속 인물이 아니다. "진실을 말할 자유"와 "지식을 추구할 권리"의 상징이 되었다.
1600년 전, 한 여자가 별의 궤도를 계산하고 있었다. 그 사이 세상은 불타고 있었다. 그녀는 알고 있었을 것이다. 불길이 자신에게도 다가오고 있다는 것을. 그런데도 그녀는 계산을 멈추지 않았다.
어쩌면 히파티아가 우리에게 남긴 진짜 유산은 수학 공식이 아닐지 모른다. "세상이 아무리 시끄러워도, 생각하는 것을 멈추지 마라." 이 한 문장일지도 모른다.
오늘, 당신의 스마트폰 안에서 GPS가 위치를 잡을 때, 그 계산에는 원뿔곡선이 쓰인다. 1600년 전 알렉산드리아에서 한 여자가 가르치던 바로 그 수학이다. 히파티아는 죽었다. 하지만 그녀의 수학은 지금 당신의 주머니 속에서 작동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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