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이 위의 상상 속 기계가 진짜 컴퓨터를 만들어버린 이야기 - 앨런 튜닝
옛날 사람들은 계산 하나 하려면 수백 명이 연필 들고 며칠을 끙끙댔다
혹시 수학 시험 볼 때 계산기 쓰고 싶다고 생각한 적 있나요? 그런데 1930년대에는 계산기 자체가 없었어요. 진짜로요.
그때 '컴퓨터'라는 단어는 기계가 아니라 사람을 뜻했어요. 복잡한 계산을 해야 하면 수백 명의 사람이 커다란 방에 모여 앉아서, 연필로 종이에 숫자를 끄적이며 하나하나 계산했거든요. 마치 반 전체가 시험을 보는데, 한 문제를 다 같이 나눠서 며칠 동안 푸는 것과 비슷해요.
문제는 이게 너무 느리고, 자주 틀린다는 거였어요. 사람이니까 피곤하면 실수하잖아요. 게다가 어떤 계산은 아무리 사람을 많이 모아도 답을 구할 수 없었어요. 수학자들 사이에서 이런 질문이 떠돌았죠. "도대체 '계산할 수 있다'는 게 정확히 뭘까?" "기계적으로 딱딱 풀 수 있는 문제와 절대 못 푸는 문제의 경계가 어디일까?" 아무도 답을 몰랐어요. 바로 이 답답한 질문 앞에, 스물네 살짜리 영국 청년 앨런 튜링이 나타났어요.
그는 '무한히 긴 종이 테이프 위에서 움직이는 상상 속 기계' 하나로 모든 계산 문제를 풀 수 있다고 증명했다
앨런 튜링이 나타나서 뭘 했냐고요? 놀랍게도, 진짜 기계를 만든 게 아니에요. 그는 머릿속으로 상상만 했어요.
1936년, 튜링은 이런 기계를 떠올렸어요. 끝없이 긴 종이 테이프가 있고, 테이프 한 칸 한 칸에 0이나 1 같은 간단한 기호가 적혀 있어요. 그리고 테이프 위를 왔다 갔다 하는 아주 작은 읽기·쓰기 장치가 있죠. 이 장치는 딱 세 가지만 할 수 있어요. 칸에 적힌 기호를 읽고, 기호를 바꿔 쓰고, 왼쪽이나 오른쪽으로 한 칸 이동하는 거예요. 마치 게임 캐릭터가 규칙표대로만 움직이는 것과 같아요.
이게 전부라고요? 네, 진짜 이게 전부예요. 그런데 튜링은 이 단순한 장치가 규칙표만 바꾸면 덧셈도, 곱셈도, 우리가 생각할 수 있는 모든 계산을 다 해낼 수 있다는 걸 수학적으로 증명했어요. 이 상상 속 기계를 사람들은 '튜링 머신'이라고 불렀어요. 종이 위의 아이디어 하나가, "계산이란 무엇인가"라는 거대한 질문에 깔끔한 답을 준 거예요. 그리고 이 아이디어는 곧 상상을 넘어, 진짜 전쟁터에서 쓰이게 됩니다.
이 상상 속 기계 덕분에 2차 세계대전의 '절대 못 푸는 암호'가 풀렸고, 전쟁이 2년이나 빨리 끝났다
상상을 넘어 전쟁터라니, 무슨 뜻이냐고요? 제2차 세계대전 때 독일군은 '에니그마'라는 암호 기계를 썼어요. 이 기계는 매일 암호 설정을 바꿨는데, 가능한 조합이 무려 159,000,000,000,000,000,000개였어요. 숫자가 너무 커서 감이 안 오죠? 전 세계 모래알 수를 세는 것보다 어려운 수준이에요.
영국 정부는 튜링을 비밀 기지 '블레츨리 파크'로 불렀어요. 튜링은 튜링 머신의 원리를 활용해서 '봄브'라는 실제 기계를 설계했어요. 이 기계는 수백만 가지 조합을 빠르게 시도하면서 "이건 답이 아니야"를 걸러내는 방식으로 암호를 풀었어요. 마치 게임에서 비밀번호 네 자리를 하나하나 눌러보는 대신, 틀린 번호를 한꺼번에 수천 개씩 지워버리는 느낌이에요.
결과는 엄청났어요. 연합군은 독일군의 작전을 미리 알게 됐고, 역사학자들은 이 덕분에 전쟁이 약 2년 일찍 끝났다고 말해요. 수천만 명의 목숨을 살린 셈이죠. 종이 위의 상상이 진짜 세계를 바꿔버린 순간이었어요. 그리고 그 변화는 전쟁이 끝난 뒤에도 멈추지 않았어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