햇빛 좀 가리지 마라디오게네스
햇빛 좀 가리지 마라디오게네스
형제끼리 같은 게임을 한다고 상상해 보세요.
둘 다 잘합니다.
그런데 동생이 조금 더 잘합니다.
형은 먼저 시작했고, 동생은 나중에 배웠는데, 어느 순간 동생이 형을 앞질러 버립니다.
이제 둘 사이에 묘한 긴장감이 흐릅니다.
축하해야 할까요, 아니면 분해야 할까요?
이건 게임 이야기가 아닙니다.
수학 이야기입니다.
17세기 스위스 바젤이라는 도시에 한 집안이 있었습니다.
베르누이 가문.
이 집안에서는 마치 유전이라도 되는 것처럼, 3대에 걸쳐 8명의 뛰어난 수학자가 나왔습니다.
과학 역사 전체를 통틀어도 이런 집안은 없습니다.
그 중심에 두 형제가 있었습니다.
형 야코프 베르누이와 동생 요한 베르누이.
둘 다 천재였고, 둘 다 자존심이 강했고, 둘 다 지는 걸 못 참았습니다.
이 이야기는 수학 교과서에 나오는 깔끔한 공식 뒤에 숨겨진, 아주 인간적이고 때로는 추한 진짜 이야기입니다.
요한 베르누이는 1667년에 태어났습니다.
아버지는 향신료 무역상이었고, 아들이 장사를 이어받길 원했습니다.
하지만 요한은 장사에 관심이 없었습니다.
그래서 차선책으로 의학을 공부하기 시작했습니다.
돈이 되니까요.
그런데 문제가 생겼습니다.
열두 살 위인 형 야코프가 대학에서 수학을 가르치고 있었거든요.
요한은 형에게 수학을 배우기 시작했는데, 이게 의학보다 훨씬 재미있었습니다.
당시 유럽 수학계에는 엄청난 사건이 벌어지고 있었습니다.
미적분이 막 발명된 것입니다.
독일의 라이프니츠가 발표한 이 새로운 수학은, 움직이는 것의 변화를 계산할 수 있게 해주는 마법 같은 도구였습니다.
비유하자면 이렇습니다.
사진은 멈춘 순간을 찍습니다.
하지만 미적분은 동영상을 수학으로 다루는 방법입니다.
공이 날아가는 궤적, 물이 흐르는 속도, 행성이 도는 경로.
이 모든 "움직임"을 정확히 계산할 수 있게 된 겁니다.
요한은 이 새로운 수학에 완전히 빠져들었습니다.
형 야코프에게 배웠지만, 놀라운 속도로 형을 따라잡았습니다.
그리고 어느 순간, 형보다 더 잘하게 되었습니다.
형 야코프는 이걸 인정할 수 없었습니다.
동생은 자기가 가르쳐준 건데.
자기보다 잘한다니.
두 형제는 공개적으로 수학 문제를 내며 서로를 이기려 했습니다.
학술지에 상대방을 깎아내리는 글을 실었습니다.
가족 모임은 전쟁터가 되었습니다.
이건 단순한 경쟁이 아니었습니다.
자존심을 건 전쟁이었습니다.
여러분이 수학 시간에 배우는 공식 중에 로피탈의 법칙이라는 게 있습니다.
분수 꼴의 복잡한 계산이 0 나누기 0 같은 이상한 상황에 빠졌을 때, 깔끔하게 답을 구하는 방법입니다.
이 법칙은 프랑스 귀족 로피탈 후작의 이름이 붙어 있습니다.
그런데 사실, 이 법칙을 발견한 사람은 로피탈이 아닙니다.
요한 베르누이입니다.
어떻게 이런 일이 벌어졌을까요?
1691년, 요한은 파리에 갔습니다.
거기서 수학에 관심이 많은 부유한 귀족 로피탈을 만났습니다.
로피탈은 미적분을 배우고 싶었고, 요한은 돈이 필요했습니다.
둘은 거래를 했습니다.
요한이 로피탈에게 수학을 가르치고, 그 대가로 매달 급여를 받는 계약이었습니다.
그런데 이 계약에는 놀라운 조건이 하나 있었습니다.
요한이 발견한 새로운 수학적 결과를 로피탈이 자기 이름으로 발표할 수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오늘날로 치면, 과외 선생님이 학생의 숙제를 대신 해주고, 학생이 그걸 자기 이름으로 제출하는 것과 비슷합니다.
단, 선생님은 매달 월급을 받습니다.
1696년, 로피탈은 이 과외 내용을 모아 미적분 교과서를 출판했습니다.
유럽 최초의 미적분 교과서였고, 엄청나게 유명해졌습니다.
그 책에 실린 핵심 법칙이 바로 "로피탈의 법칙"으로 알려지게 된 것입니다.
요한은 억울했을까요?
물론이죠.
하지만 계약서가 있었으니 아무 말도 할 수 없었습니다.
요한은 로피탈이 세상을 떠난 후에야 "그건 사실 내가 발견한 거야"라고 주장하기 시작했습니다.
사람들은 처음에 믿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훗날 두 사람이 주고받은 편지가 발견되면서, 요한의 말이 사실로 밝혀졌습니다.
수학의 역사에서 가장 유명한 저작권 분쟁 중 하나입니다.
1696년 6월, 요한 베르누이는 유럽의 모든 수학자에게 도전장을 던졌습니다.
문제는 이것이었습니다.
높은 곳에서 낮은 곳으로 공을 굴린다고 합시다.
중력만으로 굴러가는 공이 가장 빠르게 도착하는 경로는 어떤 모양일까요?
직선이라고 생각하기 쉽습니다.
가장 짧은 거리가 가장 빠르지 않을까요?
아닙니다.
놀이공원의 미끄럼틀을 떠올려 보세요.
일자로 된 미끄럼틀보다, 처음에 가파르게 내려갔다가 완만하게 이어지는 미끄럼틀이 더 빠릅니다.
처음에 급하게 떨어지면서 속도를 확 올리고, 그 속도로 나머지 구간을 달리기 때문입니다.
정답은 사이클로이드라는 곡선이었습니다.
동그란 바퀴가 굴러갈 때, 바퀴 가장자리의 한 점이 그리는 궤적입니다.
자전거 바퀴에 껌을 붙이고 굴리면, 그 껌이 그리는 곡선이 바로 사이클로이드입니다.
요한은 이 문제를 풀면서 아름다운 방법을 사용했습니다.
빛이 밀도가 다른 물질을 통과할 때 꺾이는 원리, 즉 굴절의 법칙을 이용한 것입니다.
공이 중력 속에서 가장 빨리 내려가는 경로는, 빛이 가장 빨리 이동하는 경로와 같은 원리라는 통찰이었습니다.
이 문제에는 유명한 뒷이야기가 있습니다.
요한이 "6개월 안에 풀어보라"고 도전장을 보냈는데, 영국의 아이작 뉴턴에게는 늦게 전달되었습니다.
뉴턴은 퇴근 후 저녁에 문제를 받아 들고, 그날 밤 안에 풀어버렸습니다.
익명으로 답을 보냈지만, 요한은 답을 보자마자 누구인지 알아챘습니다.
"발톱 자국만 봐도 사자인 줄 안다"라는 유명한 말을 남겼습니다.
이 문제는 단순한 퀴즈가 아니었습니다.
"가장 좋은 경로를 찾는 수학", 즉 변분법이라는 새로운 수학 분야의 시작점이 되었습니다.
오늘날 로켓의 궤적을 계산하고, 인공지능이 최적의 답을 찾는 데 쓰이는 수학의 뿌리가 여기에 있습니다.
요한의 가족 전쟁은 형과의 싸움으로 끝나지 않았습니다.
형 야코프가 1705년에 세상을 떠난 뒤, 요한은 형의 자리를 이어받아 바젤 대학교 교수가 되었습니다.
이번에는 전쟁의 상대가 바뀌었습니다.
자기 아들이었습니다.
요한의 아들 다니엘 베르누이는 아버지 못지않은 천재였습니다.
비행기 날개가 왜 뜨는지를 설명하는 "베르누이의 원리"를 발견한 바로 그 사람입니다.
1734년, 파리 과학 아카데미에서 수학 논문 공모전을 열었습니다.
아버지 요한과 아들 다니엘이 둘 다 응모했고, 둘 다 공동 수상을 했습니다.
보통의 아버지라면 기뻐했을 겁니다.
"우리 아들 나만큼 잘하네!"
하지만 요한은 달랐습니다.
아들과 동급으로 취급받은 것에 분노했습니다.
자기가 위에 있어야 하는데, 아들과 같은 줄에 서 있다니.
요한은 다니엘을 집에서 쫓아냈습니다.
나중에는 다니엘이 쓴 책의 핵심 내용을 베껴서 자기 이름으로 출판하려는 시도까지 했습니다.
출판 날짜를 조작해서 마치 자기가 먼저 발견한 것처럼 꾸민 것입니다.
다니엘은 평생 이 상처를 안고 살았습니다.
요한 베르누이는 분명 결함이 많은 사람이었습니다.
질투심이 강했고, 다른 사람의 공을 빼앗는 데 거리낌이 없었습니다.
형에게도, 아들에게도, 제자에게도 그랬습니다.
그런데 이상한 일이 있습니다.
그렇게 질투심이 강했던 요한이, 한 제자에게만은 아낌없이 자기가 아는 모든 것을 쏟아부었습니다.
그 제자의 이름은 레온하르트 오일러.
역사상 가장 위대한 수학자 중 한 명으로 꼽히는 사람입니다.
오일러는 요한의 가르침 아래에서 자랐고, 스승이 닦아놓은 미적분과 변분법의 길 위에서 수학의 거의 모든 분야를 혁명적으로 발전시켰습니다.
요한이 던진 최속강하선 문제의 씨앗은 오일러를 거쳐 거대한 숲이 되었습니다.
요한 베르누이는 1748년, 80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습니다.
그는 완벽한 사람이 아니었습니다.
하지만 완벽한 사람만 위대한 일을 하는 건 아닙니다.
질투와 경쟁이라는 아주 인간적인 감정이, 때로는 누구도 가지 않은 길을 가게 만드는 연료가 됩니다.
요한 베르누이가 바로 그 증거입니다.
형을 이기고 싶어서 미적분을 더 깊이 파고들었고, 세상에 자기 실력을 증명하고 싶어서 역사적인 문제를 만들었고, 아무도 모르는 곳에서 조용히 다음 세대의 천재를 길러냈습니다.
공식은 교과서에 남고, 이름은 정리에 남지만, 가장 오래 남는 것은 결국 누군가에게 건넨 가르침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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