햇빛 좀 가리지 마라디오게네스
햇빛 좀 가리지 마라디오게네스
스마트폰을 꺼내서 지도 앱을 열어보세요.
손가락 두 번이면 서울에서 뉴욕까지 거리가 뜹니다.
지구 둘레가 약 4만 킬로미터라는 것도 검색 한 번이면 나옵니다.
그런데 이걸 한번 상상해보세요.
GPS도 없고, 위성도 없고, 비행기도 없던 시절.
자동차는커녕 기차도 없던 시대.
오직 두 눈과 머릿속 계산만으로 지구의 크기를 알아내야 한다면요?
"그건 불가능하잖아."
보통은 그렇게 생각합니다.
그런데 지금으로부터 약 천 년 전, 진짜로 해낸 사람이 있었습니다.
산꼭대기에 올라가서, 아래를 내려다보고, 각도를 재고, 계산을 했더니 — 지구 둘레가 나왔습니다.
놀라운 건 그 답이 오늘날 우리가 아는 값과 거의 같았다는 겁니다.
그 사람의 이름은 알비루니.
아마 처음 들어보셨을 겁니다.
하지만 이 글을 다 읽고 나면, 왜 이 이름을 몰랐는지가 더 궁금해질 겁니다.
973년, 지금의 우즈베키스탄 땅에 호라즘이라는 도시가 있었습니다.
실크로드 한가운데 있던 이 도시는, 말하자면 고대판 인천공항 같은 곳이었어요.
동쪽에서 온 비단과 서쪽에서 온 향신료가 만나는 교차로.
사람도, 물건도, 그리고 지식도 여기서 뒤섞였습니다.
이 북적이는 도시에서 한 아이가 태어났습니다.
본명은 아부 라이한 무함마드 이븐 아흐마드.
너무 길죠?
사람들은 그를 그냥 알비루니라고 불렀습니다.
'비룬'은 페르시아어로 '바깥'이라는 뜻인데, 그가 도시 외곽 출신이었기 때문이라는 설이 있습니다.
알비루니는 어릴 때부터 좀 특이한 아이였습니다.
보통 아이들이 "저건 뭐야?"라고 물을 때, 이 아이는 "저건 왜 저래?"라고 물었거든요.
달은 왜 모양이 바뀌지?
물은 왜 아래로 흐르지?
별은 왜 매일 밤 조금씩 위치가 다르지?
다행히 그가 태어난 시대는 이런 질문을 환영하는 시대였습니다.
역사가들은 이 시기를 이슬람 황금기라고 부릅니다.
8세기부터 14세기까지, 이슬람 세계는 과학과 학문의 중심지였어요.
그리스의 철학책, 인도의 수학책, 중국의 천문 기록이 아랍어로 번역되어 도서관에 쌓였습니다.
"아는 것이 힘"이라는 말이 가장 잘 통하던 시대였죠.
알비루니는 이 거대한 지식의 바다에 풍덩 뛰어들었습니다.
열 살 무렵 이미 천문학을 공부하기 시작했고, 스무 살이 되기 전에 첫 번째 학술 논문을 썼습니다.
수학, 천문학, 지리학, 물리학, 약학, 역사학, 언어학.
그가 손대지 않은 분야를 찾는 게 더 빠를 정도였습니다.
하지만 그의 인생이 순탄하기만 했던 건 아닙니다.
호라즘에 전쟁이 터지면서 고향을 떠나야 했고, 여러 왕조 사이에서 떠돌았습니다.
권력자들의 눈치를 봐야 했고, 때로는 원치 않는 원정에 끌려가기도 했죠.
그런데 알비루니에게는 신기한 구석이 있었습니다.
어디를 가든 배울 거리를 찾았다는 겁니다.
자, 이제 가장 흥미진진한 부분입니다.
알비루니가 지구의 크기를 어떻게 계산했는지 알아볼까요?
먼저 비유 하나를 들어볼게요.
여러분 앞에 아주 커다란 농구공이 있다고 상상해보세요.
이 농구공이 너무너무 커서, 여러분은 그 위에 서 있는 아주 작은 개미입니다.
개미의 눈높이에서는 농구공이 평평해 보여요.
하지만 아주 높은 곳에 올라가면, 농구공 표면이 살짝 휘어지는 것이 보이기 시작합니다.
알비루니는 바로 이 원리를 이용했습니다.
1018년경, 알비루니는 지금의 파키스탄 지역에 있는 난디나 산이라는 높은 산에 올라갔습니다.
꼭대기에서 수평선을 바라봤어요.
만약 지구가 완전히 평평하다면, 수평선은 정확히 눈높이에 있어야 합니다.
하지만 지구는 둥글기 때문에, 수평선은 눈높이보다 살짝 아래에 보입니다.
이 "살짝 아래"가 핵심이었습니다.
알비루니는 특별한 도구를 가져갔습니다.
아스트롤라베라는 것인데, 쉽게 말하면 각도를 재는 고대의 도구예요.
시계처럼 생긴 동그란 금속판에 눈금이 새겨져 있죠.
이걸로 자기 눈높이(수평선)와 실제 수평선 사이의 각도를 쟀습니다.
그다음은 수학 차례였습니다.
알비루니는 이미 산의 높이를 알고 있었어요.
그리고 방금 잰 각도도 있었죠.
이 두 가지 정보를 삼각형에 집어넣었습니다.
중학교 수학 시간에 배우는 그 삼각형이요.
직각삼각형에서 한 변의 길이와 한 각도를 알면, 나머지 변의 길이를 구할 수 있다는 것.
알비루니는 이 간단한 원리로 산꼭대기에서 지구 중심까지의 거리, 즉 지구의 반지름을 계산해냈습니다.
그가 얻은 답은 약 6,339.9킬로미터.
오늘날 과학자들이 측정한 지구 평균 반지름은 약 6,371킬로미터입니다.
오차가 1퍼센트도 안 됩니다.
천 년 전에, 산 하나와 각도 측정기 하나로, 이 정도 정확도를 낸 겁니다.
솔직히 좀 소름 돋지 않나요?
비결은 뭐였을까요?
엄청난 장비? 아닙니다.
거대한 연구팀? 아닙니다.
핵심은 올바른 질문을 던지는 능력과 이미 알려진 수학을 창의적으로 쓰는 방법이었습니다.
알비루니 이전에도 삼각법은 있었어요.
높은 산도 있었고요.
하지만 "산에 올라가서 수평선의 각도를 재면 지구 크기를 알 수 있겠는데?"라고 생각한 건 그가 처음이었습니다.
알비루니의 이야기에서 지구 측정만큼 인상적인 것이 하나 더 있습니다.
바로 그가 인도를 대한 태도입니다.
1017년, 가즈나 왕조의 술탄 마흐무드가 인도를 침공했습니다.
알비루니는 이 술탄의 궁정 학자였기 때문에 원정에 동행해야 했어요.
보통 정복 전쟁에 따라간 학자라면, 정복자의 시선으로 기록을 남기기 마련입니다.
"우리가 이겼다. 저들은 미개했다." 이런 식으로요.
그런데 알비루니는 정반대였습니다.
인도에 도착한 그는 산스크리트어를 배우기 시작했습니다.
적국의 언어를요.
그것도 그냥 인사말 수준이 아니라, 철학책을 원문으로 읽을 수 있을 만큼 깊이 배웠습니다.
그는 인도의 학자들과 대화를 나눴습니다.
힌두교의 철학, 인도의 수학, 천문학 체계, 카스트 제도, 축제, 지리.
하나하나 꼼꼼히 기록했어요.
그 결과물이 바로 《인도의 역사》라는 책입니다.
이 책은 단순한 여행기가 아니었습니다.
인도 문명을 체계적으로, 그리고 존중하는 태도로 기록한 최초의 외부 문헌 중 하나였어요.
특히 놀라운 건 그의 태도입니다.
알비루니는 이렇게 썼습니다.
"어떤 문화든 그 안에서 바라보지 않으면 제대로 이해할 수 없다."
천 년 전 사람의 말이라고 믿기 어려울 만큼 현대적이지 않나요?
오늘날 우리가 '문화 상대주의'라고 부르는 개념을 그는 이미 실천하고 있었습니다.
그는 인도의 과학이 뒤떨어졌다고 깎아내리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그리스 과학과 인도 과학을 나란히 놓고 비교하면서, 각각의 장점과 한계를 공정하게 분석했어요.
"저쪽이 틀렸다"가 아니라 "이쪽은 이렇게 보고, 저쪽은 저렇게 본다"는 식이었죠.
전쟁터 한복판에서 적국의 문화를 존중하며 기록한 학자.
이것만으로도 알비루니는 특별한 사람이었습니다.
알비루니는 평생 동안 146권의 책을 썼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천문학, 수학, 지리학, 광물학, 약학, 역사학, 철학.
현대의 기준으로 보면 한 사람이 아니라 대학교 하나가 쓸 분량입니다.
그는 지구가 태양 주위를 돈다는 가능성을 코페르니쿠스보다 500년 먼저 언급했습니다.
빛의 속도가 소리보다 빠르다는 것도 알고 있었어요.
물이 높은 곳에서 낮은 곳으로 흐르는 이유를 설명하려 했고, 화석을 관찰하며 지층의 나이에 대해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이렇게 대단한 사람이 왜 학교에서 잘 안 가르쳐질까요?
이유는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하나는 분명합니다.
역사는 종종 누가 쓰느냐에 따라 달라집니다.
유럽 중심으로 쓰인 과학사에서 이슬람 황금기의 학자들은 오랫동안 조연 취급을 받았어요.
"그리스 과학을 보존해준 사람들" 정도로만 소개되곤 했죠.
하지만 알비루니는 단순히 보존만 한 게 아닙니다.
그는 새로운 것을 만들어낸 사람이었습니다.
알비루니에게서 배울 수 있는 가장 큰 교훈은 어쩌면 과학 지식이 아닐지도 모릅니다.
그것은 바로 태도입니다.
모르는 것을 부끄러워하지 않는 태도.
다른 문화에서 기꺼이 배우려는 태도.
눈앞에 보이는 것을 당연하게 여기지 않고 "정말 그런가?" 하고 다시 한번 따져보는 태도.
천 년 전, 산꼭대기에 서서 수평선을 내려다보던 그 남자는 이런 질문을 던졌을 겁니다.
"내가 서 있는 이 세상은, 정확히 얼마나 큰 걸까?"
그 질문 하나가 답을 만들어냈습니다.
좋은 질문은 언제나 그렇습니다.
지금 여러분의 머릿속에는 어떤 질문이 있나요?
그 질문이 어리석어 보여도 괜찮습니다.
천 년 전에도 "산에서 지구를 재겠다"는 말은 꽤 황당하게 들렸을 테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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