햇빛 좀 가리지 마라디오게네스
햇빛 좀 가리지 마라디오게네스
밤에 하늘을 올려다본 적 있는가? 별들이 천천히 동쪽에서 서쪽으로 흘러간다. 달도, 태양도, 모든 것이 우리 머리 위를 지나간다. "아, 하늘이 돌고 있구나." 수천 년 동안 인류는 그렇게 생각했다.
그런데 서기 499년, 인도의 한 청년이 전혀 다른 말을 했다. "하늘이 도는 게 아니라 우리가 서 있는 땅이 돌고 있는 거다." 그의 이름은 아리아바타. 나이 겨우 스물셋이었다.
아리아바타는 지금의 인도 비하르 지역에서 태어났다. 서기 476년의 일이다. 유럽에서는 로마 제국이 무너지고 있었고, 한반도에서는 고구려·백제·신라가 치열하게 경쟁하던 시기다. 그 시절 인도에는 굽타 왕조가 세운 '날란다'라는 거대한 대학이 있었다. 전 세계에서 학자들이 모여드는 곳이었다.
아리아바타는 이곳에서 공부했다. 그리고 23살이 되던 해, 자신이 알아낸 것들을 한 권의 책으로 정리했다. 《아리아바티야》라는 이름의 이 책은 고작 121개의 짧은 시(詩)로 이루어져 있다. 분량만 보면 얇은 노트 한 권 정도다. 그런데 이 얇은 책 안에 수학과 천문학의 혁명이 들어 있었다.
배를 타본 적 있는가? 배가 강을 따라 미끄러지면, 강변의 나무들이 뒤로 흘러가는 것처럼 보인다. 나무가 정말 움직이는 걸까? 아니다. 움직이는 건 내가 탄 배다. 하지만 내 눈에는 나무가 움직이는 것처럼 보인다.
아리아바타는 정확히 이 비유를 썼다. 《아리아바티야》에 이런 구절이 있다. "배 위에 앉은 사람에게 나무가 반대 방향으로 가는 것처럼 보이듯, 스리랑카에 있는 사람에게 별들이 서쪽으로 가는 것처럼 보인다."
이 한 문장이 왜 대단할까? 당시 전 세계 거의 모든 문명이 "하늘이 지구 주위를 돈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고대 그리스의 아리스토텔레스도, 프톨레마이오스도 그렇게 말했다. 지구는 우주의 중심에 가만히 있고, 해와 달과 별이 지구 주위를 빙빙 돈다는 것이 '상식'이었다.
유럽에서 코페르니쿠스가 "지구가 태양 주위를 돈다"고 주장한 건 1543년이다. 아리아바타보다 무려 1,000년 이상 뒤의 일이다. 물론 아리아바타가 태양 중심설까지 주장한 것은 아니다. 그는 "지구가 제자리에서 팽이처럼 돈다"는 자전(自轉)을 말한 것이다. 하지만 이것만으로도 파격이었다.
재미있는 건, 아리아바타의 이 생각이 수백 년 뒤 아랍 학자들에게 전해졌다는 점이다. 아랍 학자들은 《아리아바티야》를 번역하고 연구했다. 그리고 이 지식은 다시 유럽으로 흘러들었다. 코페르니쿠스가 아리아바타의 책을 직접 읽었다는 증거는 없다. 하지만 지식이라는 것은 강물처럼 흐른다. 한 사람의 아이디어가 대륙을 건너 다른 사람의 머릿속에 씨앗을 심는다.
피자 한 판을 떠올려보자. 둥근 피자의 가장자리 길이를 줄자로 재면 '둘레'가 나온다. 피자를 가로지르는 가장 긴 직선, 즉 지름도 잰다. 둘레를 지름으로 나누면? 어떤 크기의 피자든 항상 약 3.14가 나온다. 이 숫자가 바로 원주율, 파이(π)다.
이 숫자는 끝이 없다. 3.14159265358979… 소수점 아래로 영원히 이어진다. 현대의 슈퍼컴퓨터는 이 숫자를 수십조 자리까지 계산했다. 하지만 아리아바타가 살던 시대에는 컴퓨터는커녕 계산기조차 없었다.
아리아바타는 이렇게 적었다. "100에 4를 더하고, 8을 곱한 뒤, 62,000을 더하면 지름이 20,000인 원의 둘레에 가까운 값을 얻는다." 이 문장을 수식으로 풀면 이렇다.
(100 + 4) × 8 + 62,000 = 62,832
62,832 ÷ 20,000 = 3.1416
실제 원주율은 3.14159265…이다. 아리아바타의 값 3.1416은 소수점 넷째 자리까지 거의 정확하다. 오차는 0.000007 정도에 불과하다. 1,500년 전에 종이와 펜만으로 이 정밀도를 달성한 것이다.
더 놀라운 건 아리아바타가 이 값이 '근사값'이라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는 점이다. 그는 "가까운 값"이라고 분명히 표현했다. 원주율이 딱 떨어지는 숫자가 아니라는 것을 직감한 것이다. 이 사실이 수학적으로 증명된 건 그로부터 1,200년 뒤인 18세기의 일이다.
아리아바타는 삼각함수의 기초도 놓았다. 사인(sine)이라는 단어 자체가 산스크리트어 '지바(jya)'에서 출발했다. 이 단어가 아랍어로 번역되면서 'jiba'가 되었고, 라틴어로 다시 번역되면서 'sinus'가 되었다. 오늘날 전 세계 수학 교과서에 실린 'sine'은 인도에서 태어난 단어다.
어두운 방에서 손전등을 켜고, 앞에 농구공 하나를 놓아보자. 농구공 뒤에 그림자가 생긴다. 이제 그 그림자 안에 탁구공을 넣으면? 탁구공이 어두워진다. 빛이 닿지 않기 때문이다.
이게 바로 월식의 원리다. 손전등이 태양이고, 농구공이 지구이고, 탁구공이 달이다. 지구의 그림자 속에 달이 들어가면 달이 어두워진다. 반대로 일식은 달이 태양과 지구 사이에 끼어들어 태양빛을 가리는 현상이다.
지금 우리에게는 너무나 당연한 설명이다. 하지만 1,500년 전에는 전혀 당연하지 않았다. 인도의 전통 신화에서는 '라후'라는 악마가 태양이나 달을 삼켜서 일식과 월식이 생긴다고 믿었다. 사람들은 일식이 일어나면 강에 뛰어들어 기도하거나, 집 안에 숨어 문을 걸어 잠갔다.
아리아바타는 이 믿음을 정면으로 반박했다. 《아리아바티야》에서 그는 단호하게 말한다. "달의 그림자가 태양을 가리는 것이 일식이고, 지구의 그림자가 달을 가리는 것이 월식이다." 악마 따위는 없다고.
이게 얼마나 용감한 발언이었는지 생각해보자. 종교적 권위가 사회를 지배하던 시대였다. 제사장들의 수입 중 상당 부분이 일식·월식 때 사람들이 바치는 공양에서 나왔다. 아리아바타의 주장은 과학적 진실인 동시에, 기득권에 대한 도전이기도 했다.
그뿐 아니다. 아리아바타는 일식과 월식이 일어나는 시각까지 계산해냈다. 달의 궤도와 지구의 궤도를 수학으로 분석한 것이다. 그의 예측은 놀라울 정도로 정확했다. 과학이 미신을 이기는 순간이었다.
1975년 4월 19일, 인도 최초의 인공위성이 우주로 날아올랐다. 소련의 로켓에 실려 발사된 이 작은 위성의 이름은 '아리아바타'였다. 1,500년 전 밤하늘을 올려다보며 우주의 비밀을 풀려 했던 청년의 이름을 달고, 그 위성은 진짜 별들 사이를 날았다.
아리아바타가 현대 세계에 남긴 유산은 생각보다 깊다. 그가 사용한 자릿값 체계, 즉 숫자의 위치에 따라 값이 달라지는 시스템은 오늘날 우리가 쓰는 숫자 체계의 뿌리다. 123에서 1이 '백'을 뜻하고 2가 '십'을 뜻하는 이유가 바로 자릿값 때문이다. 아리아바타는 이 체계를 자유자재로 활용했다.
그의 제자들과 후대 인도 수학자들은 여기서 더 나아가 '0'이라는 개념을 완성했다. 브라마굽타라는 수학자가 0의 연산 규칙을 처음으로 정리한 건 아리아바타 사후 약 130년 뒤의 일이다. 아리아바타가 닦아놓은 수 체계의 토대 위에서 가능한 일이었다.
아리아바타는 1년의 길이를 365일 6시간 12분 30초로 계산했다. 현대 천문학이 측정한 값은 365일 6시간 9분 10초다. 오차가 겨우 3분 20초에 불과하다. 망원경도 없이, 시계도 없이, 오직 관찰과 수학만으로 이 정밀도에 도달한 것이다.
왜 우리는 피타고라스와 아르키메데스의 이름은 알면서, 아리아바타의 이름은 잘 모를까? 역사에서 누가 기억되고 누가 잊히는지는, 그 사람이 얼마나 뛰어났느냐와 꼭 비례하지 않는다. 지식의 전파 경로, 언어의 장벽, 권력의 지형도가 더 큰 역할을 한다.
하지만 진실은 사라지지 않는다. 아리아바타가 23살에 쓴 121편의 시는 1,500년이 지난 지금도 읽히고 있다. 그가 계산한 원주율은 여전히 정확하고, 그가 설명한 일식의 원리는 여전히 맞다.
다음에 밤하늘을 올려다볼 때 한번 생각해보자. 별이 움직이는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 돌고 있는 건 당신이 서 있는 이 땅이다. 1,500년 전, 인도의 한 청년이 처음으로 그 사실을 글로 남겼다. 배 위에 앉아 강변의 나무를 바라보듯, 세상을 다른 각도에서 보는 것. 그것이 과학의 시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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