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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에는 덕이면 충분하다안티스테네스

아침에 친구를 보고 손을 번쩍 들어 인사한다고 생각해 봐요. 그런데 옆에 있던 누군가 "방금 네 팔이 올라갔어"라고 말하면 어쩐지 좀 이상하게 들리죠. 내가 든 건데, 마치 팔이 저 혼자 스르륵 움직인 것처럼 들리니까요.
같은 장면인데 설명이 두 가지예요. 하나는 "팔이 올라갔다", 다른 하나는 "내가 팔을 들었다". 병원에서 무릎을 작은 망치로 톡 쳤을 때 다리가 저절로 튀어 오르는 건 앞쪽 설명이고, 친구한테 손 흔드는 건 뒤쪽 설명이에요. 둘의 차이는 딱 하나예요. '내가 그러려고 했는가.' 이 작아 보이는 차이를 평생 파고든 철학자가 있어요.

그 사람은 엘리자베스 앤스컴이에요. 1919년부터 2001년까지 살았던 영국 철학자고요. 이십 대 초반에 케임브리지에서 루트비히 비트겐슈타인이라는 철학자에게 배웠어요. 비트겐슈타인은 20세기에 가장 큰 영향을 남긴 철학자 중 한 명인데, 제자를 무척 까다롭게 골랐어요. 그런 그가 가장 아낀 몇 안 되는 제자가 앤스컴이었어요.
얼마나 믿었냐면, 비트겐슈타인은 세상을 떠나면서 자기가 남긴 글을 정리하고 영어로 옮기는 일을 앤스컴에게 맡겼어요. 스승의 까다로운 독일어 원고를 영어로 옮긴 그 번역본은 지금도 전 세계 대학에서 교과서처럼 읽혀요. 제자가 스승의 목소리를 대신 전해 준 셈이죠. 하지만 앤스컴은 스승을 따라 하기만 한 사람이 아니었어요. 자기만의 질문을 들고 나아갔거든요.

앤스컴은 1957년에 '의도'라는 제목의 얇은 책을 써요. 여기서 그가 던진 질문이 재밌어요. 어떤 일이 '내가 한 행동'인지, 아니면 그냥 '나에게 일어난 일'인지, 우리는 어떻게 구분할 수 있을까요?
앤스컴의 답은 뜻밖에 단순해요. "왜 그랬어?"라고 물어보면 된대요. 손을 든 사람에게 "왜 들었어?" 하면 "친구한테 인사하려고"라고 답하죠. 그런데 무릎을 맞아 다리가 튄 사람에게 "왜 찼어?" 하고 물으면 답을 못 해요. 그건 그냥 일어난 일이지, 그가 한 일이 아니니까요. '왜'라는 질문이 자연스럽게 통하는 행동, 바로 거기에 의도가 들어 있는 거예요. 이 간단한 시험 하나로 앤스컴은 '행동'이라는 말의 속을 들여다봤어요.

여기서 한 걸음 더 들어가요. 어떤 사람이 우물에서 펌프질을 한다고 해봐요. 그 한 번의 펌프질을 두고 우리는 여러 가지로 말할 수 있어요. "팔을 위아래로 움직인다", "물을 퍼 올린다", "집으로 물을 보낸다", "가족이 마실 물을 채운다"처럼요. 동작은 하나인데 설명이 층층이 쌓이죠.
앤스컴은 사람의 행동에는 이렇게 여러 설명이 동시에 붙는다고 봤어요. 그래서 누가 한 일을 제대로 이해하려면, 겉으로 보이는 동작만 봐서는 안 돼요. 그 사람이 '어떤 설명 아래에서' 그 일을 했는지를 물어야 해요. 똑같이 손을 드는 동작이라도 친구에게 하는 인사일 수도, 지나가는 택시를 부르는 신호일 수도, 교실에서 발표하겠다는 표시일 수도 있으니까요. 동작이 같다고 같은 행동인 건 아니에요.

이 생각은 곧장 옳고 그름을 따지는 윤리학으로 이어져요. 누군가 한 일이 좋은지 나쁜지 따지려면,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만 봐선 안 되고 그가 무엇을 하려 했는지를 함께 봐야 하니까요. 똑같이 누가 다쳐도, 길에서 실수로 부딪힌 것과 일부러 떠민 것은 전혀 다른 일이잖아요.
앤스컴은 1958년에 쓴 짧은 글에서 당시 유행하던 윤리학을 정면으로 비판해요. 결과만 좋으면 그만이라는 식의 생각에 '결과주의'라는 이름을 처음 붙인 사람도 바로 그예요. 오늘날 윤리학 수업에 빠지지 않고 나오는 이 단어가, 사실은 앤스컴의 비판에서 태어난 말이에요.

앤스컴에게 의도 이야기는 교실 안 이야기로 그치지 않았어요. 1956년, 그가 몸담은 옥스퍼드 대학이 미국 대통령 트루먼에게 명예 학위를 주려 하자, 앤스컴은 거의 혼자 반대하고 나섰어요. 트루먼은 일본 두 도시에 원자폭탄을 떨어뜨린 결정을 내린 사람이었거든요.
앤스컴의 논리는 자기 철학 그대로였어요. 전쟁을 빨리 끝낸다는 좋은 결과를 노렸더라도, 죄 없는 수많은 사람을 일부러 죽이려 한 행동은 그 의도 때문에 잘못이라는 거였죠. 결과가 아니라 '무엇을 하려 했는가'로 행동을 봐야 한다던 그의 생각이, 현실의 가장 무거운 문제 앞에서도 똑같이 작동한 거예요. 일곱 아이를 키운 엄마이기도 했던 그는, 평생 "사람이 한 일이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을 손에서 놓지 않았어요.

팔이 저절로 올라가는 것과 내가 팔을 드는 것. 이 사소해 보이는 차이가 앤스컴 철학의 출발점이었어요. 그는 행동을 이해하려면 '왜'를 묻고, 그 사람이 어떤 설명 아래에서 움직였는지를 봐야 한다고 했어요. 스승 비트겐슈타인의 책을 영어로 옮긴 제자였지만, 의도와 행위에 대한 자기만의 질문으로 현대 윤리학과 분석철학의 방향을 바꿔 놓았죠. 다음에 누가 무언가 했을 때, '무슨 일이 벌어졌나'만 보지 말고 "왜 그랬을까"를 한 번 떠올려 보세요. 그 순간 당신은 앤스컴이 평생 붙들었던 질문에 한 발 다가서는 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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