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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에는 덕이면 충분하다안티스테네스

친구 둘이 시험에서 커닝을 했다고 해볼게요. 한 친구는 "커닝은 그냥 하면 안 되는 거야"라고 말해요. 다른 친구는 "들키지도 않았고, 덕분에 장학금도 받았으니 결과적으로는 잘된 일 아니야?"라고 말해요. 둘 다 나름 진지해요. 그런데 두 사람은 사실 완전히 다른 잣대로 옳고 그름을 재고 있어요. 한 명은 행동 자체를, 다른 한 명은 그 행동이 만든 결과를 보고 있거든요.
바로 이 두 번째 잣대, '결과가 좋으면 그 행동도 괜찮다'는 생각에 처음으로 이름을 붙인 사람이 있어요. 영국 철학자 엘리자베스 앤스컴이에요. 그 이름이 바로 '결과주의'예요.

엘리자베스 앤스컴은 1919년에 태어나 2001년에 세상을 떠난 영국 철학자예요. 여든두 해를 살았네요. 젊을 때 그 유명한 철학자 비트겐슈타인의 제자였고, 그의 책을 영어로 옮기고 세상에 알린 사람 중 하나예요. 말하자면 스승의 어려운 생각을 사람들이 읽을 수 있게 다리를 놓아 준 셈이에요.
앤스컴은 두 가지로 철학의 방향을 바꿨어요. 하나는 '의도'와 '행위'를 파고든 거예요. 우리가 무언가를 '한다'는 게 정확히 무슨 뜻인지, 손이 움직인 것과 내가 마음먹고 한 것은 어떻게 다른지를 따졌어요. 다른 하나가 오늘 이야기할 윤리학 쪽이에요.

1958년에 앤스컴은 '현대 도덕철학'이라는 짧은 글을 발표해요. 거기서 그는 당시 많은 철학자가 당연하게 여기던 한 가지 생각을 콕 집어내요. 어떤 행동이든 그 자체로 절대 안 되는 건 없고, 결과를 저울에 달아 보면 다 따져 볼 수 있다는 생각이었어요.
그때까지 이 생각에는 마땅한 이름이 없었어요. 앤스컴은 여기에 '결과주의'라는 새 단어를 붙였어요. 무언가에 이름을 붙인다는 건, 흐릿하게 떠다니던 것을 손으로 잡을 수 있는 한 덩어리로 만드는 일이에요. 이름이 생기자 사람들은 비로소 "아, 내가 믿던 게 바로 이거구나" 하고 그것을 마주 볼 수 있게 됐어요.

앤스컴은 이 단어를 칭찬하려고 만든 게 아니었어요. 오히려 경고하려고 만들었어요. 그는 '결과만 좋으면 된다'는 생각이 위험한 문을 연다고 봤어요. 그 문을 열면, 죄 없는 사람을 일부러 해치는 일조차 "더 큰 이익을 위해서라면" 하고 계산해 버릴 수 있으니까요.
실제로 그는 1956년에 자기 학교가 한 정치인에게 명예 학위를 주려 하자 혼자 반대하고 나섰어요. 그 정치인이 전쟁에서 수많은 민간인이 죽은 폭격을 결정했기 때문이에요. 많은 이가 "전쟁을 빨리 끝냈으니 결과적으로 옳다"고 할 때, 앤스컴은 "그래도 해서는 안 되는 일이 있다"고 말한 거예요. '결과주의'라는 단어에는 이런 그의 문제의식이 통째로 담겨 있어요.

앤스컴은 결과가 좋으면 행동도 정당하다는 생각에 '결과주의'라는 이름을 처음 붙인 철학자예요. 그는 이 이름을 자랑이 아니라 경고로 지었고, 어떤 결과로도 정당화될 수 없는 행동이 있다고 믿었어요. 누군가 "결과가 좋으면 됐지"라고 말할 때, 그 말에 이름이 있고 그 이름을 만든 사람에게는 분명한 이유가 있었다는 것, 그 한 가지만 기억해도 충분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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