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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에는 덕이면 충분하다안티스테네스

친구가 갑자기 길에서 손을 번쩍 들었어요. 여러분은 자연스럽게 묻죠. "왜 그래?" 친구가 답해요. "택시 잡으려고." 자, 방금 무슨 일이 일어난 걸까요?
많은 사람이 '의도'를 이렇게 생각해요. 행동하기 전에 머릿속에 먼저 떠오르는 어떤 그림이나 속마음 같은 것이라고요. 손을 들기 0.5초 전에 마음 깊은 곳에서 '택시!'라는 작은 목소리가 울렸고, 그게 진짜 의도라고 말이에요. 그런데 정말 그럴까요? 우리는 보통 그런 속마음을 따로 느끼지도 않고 그냥 손을 들어요. 곰곰이 생각하기도 전에 이미 택시를 잡고 있죠.
이 익숙하면서도 묘한 물음, 그러니까 '의도란 도대체 무엇인가'를 평생 파고든 철학자가 있어요.

엘리자베스 앤스컴은 영국 철학자예요. 1919년에 태어나 2001년에 세상을 떠났어요. 20세기의 가장 이름난 철학자 중 한 명으로 꼽히는 비트겐슈타인의 제자였고, 스승의 글을 영어로 옮긴 사람이기도 해요.
앤스컴은 1957년에 '인텐션', 우리말로 '의도'라는 제목의 얇은 책 한 권을 냈어요. 100쪽 남짓한 작은 책이지만, 이 한 권이 '행동이란 무엇인가'를 다루는 철학의 방향을 크게 바꿨어요. 지금도 대학에서 사람의 행동을 다루는 이론을 배울 때 거의 첫머리에 나오는 책이에요. 작고 어려운 책 한 권이 한 분야의 출발점이 된 셈이에요.

앤스컴의 가장 멋진 생각은 의외로 간단해요. 의도를 머릿속에서 찾지 말고, 한 가지 질문이 통하는지를 보라는 거예요. 바로 "왜 그렇게 해요?"라는 질문이에요.
길을 걷다 돌부리에 걸려 넘어졌어요. 누가 "왜 넘어졌어요?"라고 물으면 "그러게요, 발이 걸렸네요"라고 답하죠. 이건 이유라기보다 그냥 원인이에요. 내가 고른 게 아니라 나에게 벌어진 일이니까요. 반면 가게에 들어가 빵을 집었어요. "왜 빵을 집어요?"라고 물으면 "배고파서요"라고 답해요. 이렇게 '왜'가 말이 되고, 내가 이유를 댈 수 있는 행동, 그게 바로 의도가 담긴 행동이에요.
신기하죠? 의도가 있는지 없는지는 마음속을 몰래 들여다봐서가 아니라, "왜?"라는 질문이 자연스럽게 들어맞느냐로 가려져요. 의도는 숨어 있는 게 아니라, 우리가 매일 주고받는 평범한 물음 속에 이미 드러나 있던 거예요.

앤스컴이 든 유명한 예가 있어요. 한 사람이 마당에서 펌프질을 하고 있어요. 똑같은 팔 동작 하나를 두고 이렇게 여러 가지로 말할 수 있어요. 그는 '팔을 위아래로 움직이는 중'이에요. 동시에 '펌프질하는 중'이고, '물탱크에 물을 채우는 중'이고, '집으로 물을 보내는 중'이기도 해요.
행동은 분명 하나인데 부르는 이름은 여럿이에요. 그러면 의도는 이 여러 이름 중 어디에 있을까요? 앤스컴은 "왜?"라는 질문이 이어지는 만큼이라고 봐요. "왜 팔을 움직여요?" "펌프질하려고요." "왜 펌프질해요?" "물을 채우려고요." "왜 물을 채워요?" "집에 보내려고요." 이렇게 이유가 줄줄이 이어지는 사슬, 그게 바로 의도의 모양이에요. 의도는 머릿속 어딘가에 박혀 있는 그림이 아니라, 이 '왜의 사슬' 안에 펼쳐져 있는 거예요.

한 가지 더 있어요. 지금 여러분 다리가 쭉 펴져 있나요, 굽혀 있나요? 답하려고 다리를 내려다봤나요? 아마 안 봤을 거예요. 그냥 알죠.
앤스컴은 이걸 '관찰 없는 앎'이라고 불렀어요. 우리는 자기가 지금 무엇을 하는지, 눈으로 확인하지 않고도 알아요. 편지를 쓸 때 내 손을 CCTV처럼 지켜보지 않아도 '나는 지금 편지를 쓰는 중'이라는 걸 알죠. 의도가 담긴 행동에는 이렇게 특별한 종류의 앎이 늘 따라와요. 남이 나를 한참 지켜본 뒤에야 아는 것과는 다른, 안에서부터 곧바로 아는 앎이에요. 이 앎이 있느냐 없느냐도 의도가 있는 행동인지를 가르는 중요한 표시가 돼요.

별것 아닌 말장난처럼 보일 수도 있어요. 하지만 이 생각은 옳고 그름을 따지는 윤리학을 크게 흔들었어요.
누군가를 판단할 때 우리는 '무슨 짓을 했나'만 보지 않고 '무슨 의도였나'를 함께 봐요. 똑같이 남을 다치게 해도 일부러 그런 것과 실수로 그런 것은 전혀 다르게 다뤄지죠. 그래서 의도가 정확히 무엇인지 흐릿하면, 사람을 평가하고 책임을 묻는 일까지 같이 흔들려요. 앤스컴은 의도의 정체를 또렷하게 밝혀서, 현대 윤리학이 다시 단단한 바닥 위에 서도록 도왔어요. 참고로 '결과만 좋으면 된다'는 식의 생각을 가리키는 '결과주의'라는 말도 앤스컴이 만들어 낸 말이에요.

의도는 행동하기 전 머릿속에 숨어 있는 그림이 아니에요. 어떤 행동에 "왜 그렇게 해요?"라는 질문이 자연스럽게 들어맞고, 그 이유를 스스로 댈 수 있고, 보지 않고도 자기가 뭘 하는지 알 때, 그 행동에는 의도가 담겨 있어요. 앤스컴은 마음속 깊은 곳을 헤집는 대신, 우리가 매일 주고받는 "왜?"라는 평범한 한 마디 안에 의도의 정체가 들어 있다는 걸 보여 줬어요. 다음에 누가 "왜 그랬어?"라고 물으면, 여러분은 사실 아주 철학적인 질문에 답하고 있는 거예요.
TTS 음성이 없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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