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보가드로가 50년간 무시당한 이유, 분자 개념의 비극
아보가드로는 변호사 출신의 독학 물리학자였다
화학의 기초 단위인 '분자'를 제안한 사람은 화학자가 아니라, 일을 그만둔 변호사였어요.
아메데오 아보가드로는 이탈리아 토리노의 귀족 가문에서 태어났어요.
그는 20세에 교회법 박사 학위를 받았고, 20대 내내 변호사로 살았어요.
그런데 30대가 되자 갑자기 방향을 틀었어요.
혼자서 책을 쌓아놓고 수학과 물리학을 독학하기 시작한 거예요.
요즘으로 치면, 잘 다니던 로펌을 그만두고 혼자 물리학 교과서를 파는 상황이에요.
그리고 결국 1809년 베르첼리 왕립학교의 물리학 교수로 취임했어요.
변호사 출신이, 독학으로, 교수가 됐어요.
이 사람이 나중에 현대 화학의 핵심 개념 하나를 제안하게 됩니다.
아보가드로는 1811년 분자 개념을 처음 제안했다
아보가드로의 1811년 논문은 정답이었어요. 그런데 아무도 읽지 않았어요.
그 논문에서 아보가드로는 이런 가설을 내놓았어요.
"같은 온도, 같은 압력, 같은 부피의 기체 안에는 언제나 같은 수의 입자가 들어 있어요."
아무리 다른 기체라도, 조건만 같으면 입자 수도 같다는 거예요.
그리고 이 과정에서 그는 '분자(molecule)'라는 개념을 처음 도입했어요.
원자가 더 이상 쪼갤 수 없는 최소 단위라면, 분자는 원자 여러 개가 뭉쳐 만들어진 덩어리예요.
산소 원자 두 개가 붙으면 산소 분자(O₂)가 되는 식이에요.
그런데 당시 화학계의 최고 권위자들이 이 아이디어를 완전히 무시했어요.
영국의 존 돌턴은 원자론을 세운 화학자인데, "같은 원소 두 개가 결합한다는 건 말이 안 된다"고 딱 잘랐어요.
스웨덴의 베르첼리우스는 당시 유럽 화학계를 사실상 지배하던 인물인데, 자신의 전기화학 이론과 충돌한다는 이유로 외면했어요.
신입사원이 회의에서 정답을 말했는데 팀장이 "그건 우리 방식이 아니야"라고 끊어버린 상황이에요.
그리고 그 신입사원은 조용히 자기 자리로 돌아갔어요.
아보가드로는 학계의 무시 속에서 50년을 버텼다
아보가드로가 죽을 때까지, 화학자들은 물의 분자식 하나도 합의하지 못하고 있었어요.
지금 우리는 물을 H₂O라고 쓰지만, 당시 화학자들은 누구는 HO, 누구는 H₂O로 달리 썼어요.
같은 물질의 식이 나라마다, 교과서마다 달랐어요.
50년 가까이 유럽 화학계 전체가 이 혼란 속에서 허우적댔어요.
그 혼란의 이유는 단순했어요.
아보가드로의 1811년 논문을 아무도 진지하게 읽지 않았기 때문이에요.
답은 이미 책장에 꽂혀 있었는데, 화학계 전체가 그 페이지를 펼치지 않은 거예요.
하지만 아보가드로는 그렇다고 분노를 표출하거나 논쟁에 뛰어들지 않았어요.
평생 토리노 대학에서 조용히 강의하고 연구하며 살았어요.
그리고 1856년, 유럽 주류 화학계가 그의 이름을 거의 모르는 채로 세상을 떠났어요.
아보가드로의 가설은 죽은 지 4년 뒤 부활했다
아보가드로 수에 자기 이름이 붙는 순간, 정작 아보가드로는 4년째 무덤 속에 있었어요.
1860년, 독일 카를스루에에서 역사상 최초의 국제 화학자 회의가 열렸어요.
유럽 전역의 화학자들이 모여 원자량과 분자식의 혼란을 정리해보려 했어요.
그런데 회의는 결론 없이 끝날 것처럼 보였어요.
그때 이탈리아 화학자 스타니슬라오 칸니차로가 회의장 출구에서 얇은 책자를 한 부씩 나눠줬어요.
칸니차로는 아보가드로와 같은 이탈리아 출신으로, 스승의 가설을 끝까지 붙잡고 있던 후배였어요.
그 책자는 아보가드로의 1811년 논문을 다시 정리한 것이었어요.
책자를 읽은 화학자들은 충격을 받았어요.
50년 동안 풀리지 않던 원자량 문제가 단번에 해결된 거예요.
"이 답이 이미 50년 전에 나와 있었던 거야?"
그리고 훗날, 1몰의 물질 안에 들어 있는 입자의 수를 아보가드로 수(6.022×10²³)라고 부르게 됐어요.
아보가드로 본인은 이 숫자를 한 번도 계산해본 적이 없어요.
그런데도 그의 이름이 붙었어요.
그가 제안한 아이디어가 맞았다는 걸 세상이 확인하는 데 50년이 걸렸고, 그는 그 순간을 4년 앞두고 눈을 감았어요.
과학의 역사에서 가장 유명한 숫자 중 하나에 이름을 남긴 사람이, 그 이름이 쓰이는 걸 끝내 보지 못했어요.
이게 비극인지, 아니면 그것조차 초월한 이야기인지, 읽고 나서도 좀 멍해지는 건 저만 그런 건 아니겠죠?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