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르미트가 파이 증명을 거부한 이유
에르미트는 자기가 다닌 폴리테크닉에서 1년 만에 쫓겨났다
에르미트는 자기가 합격한 학교에서 1년도 못 버티고 쫓겨났어요.
1842년, 샤를 에르미트는 프랑스 최고의 이공계 학교 에콜 폴리테크닉에 합격했어요.
에콜 폴리테크닉은 오늘날로 치면 카이스트와 MIT를 합쳐놓은 것 같은 곳이에요.
입학 정원 68명 중 그의 순위는 68등이었어요.
꼴찌로 들어간 거예요.
그것도 프랑스 전국에서 가장 들어가기 어려운 학교에.
하지만 그게 문제가 아니었어요.
1년 뒤 학교 측은 에르미트에게 퇴학 통보를 내렸어요.
이유는 성적이 아니라 신체 조건이었어요.
그의 오른쪽 다리는 선천적으로 기형이었고, 평생 지팡이를 짚어야 했거든요.
입사 시험 꼴찌로 들어간 신입사원이, 이듬해 "신체 조건 미달"로 해고당한 상황이에요.
그런데 이 이야기에는 반전이 있어요.
그를 내쫓은 바로 그 학교가, 약 20년 뒤 그를 교수로 직접 모셔와요.
에르미트는 1873년 자연상수 e가 초월수임을 처음 증명했다
1873년 에르미트는 인류가 자연 속에서 발견한 한 수가 어떤 방정식으로도 잡을 수 없다는 것을 처음 증명했어요.
그 수는 자연상수 e, 약 2.71828로 시작하는 수예요.
은행에서 복리 이자를 계산하면 자연스럽게 등장하는 수이고, 자연현상을 설명하는 수식에 빠지지 않고 나타나요.
수학자들은 오래전부터 이 수가 뭔가 특별하다고 느꼈지만, 그 정체를 정확히 말할 수 없었어요.
에르미트가 증명한 건 e가 초월수라는 사실이에요.
초월수란, 어떤 방정식을 세워도 그 수가 해로 딱 떨어지지 않는 수예요.
√2는 x² - 2 = 0이라는 방정식이 잡을 수 있어요.
하지만 e는 달라요.
어떤 방정식을 만들어도 e는 그 방정식의 해로 등장하지 않아요.
그 사실을 수학적으로 완전히 증명한 게 에르미트의 1873년 논문이에요.
이전까지도 초월수의 존재는 알려져 있었어요.
그런데 그건 수학자들이 "초월수가 되도록 인위적으로 만든" 수였어요.
에르미트는 자연에서 등장한 수, 누가 설계한 게 아니라 원래 그냥 있던 수가 초월수라는 걸 처음으로 증명해냈어요.
폴리테크닉에서 쫓겨난 바로 그 사람이, 그 학교의 교수로 돌아와 이 일을 해낸 거예요.
에르미트는 더 큰 상금이 걸린 파이의 증명만은 끝내 거절했다
에르미트는 파이를 풀 수 있는 방법을 손에 쥐고 있었지만, 끝까지 자기가 쓰지 않았어요.
e를 증명하고 나자 수학자들 사이에서 기대감이 번졌어요.
"같은 방법으로 파이(π)도 곧 풀겠구나"라는 기대였어요.
파이의 초월성은 단순한 수학적 호기심이 아니었어요.
그건 원적문제를 끝낼 열쇠였거든요.
원적문제는 자와 컴퍼스만으로 주어진 원과 넓이가 같은 정사각형을 그리는 문제예요.
고대 그리스 시대부터 2000년 동안 수학자들이 달라붙었지만 아무도 풀지 못한 난제였어요.
파이가 초월수라면 이 작도 자체가 원리적으로 불가능하다는 게 증명돼요.
그 말은 2000년간의 탐색이 "처음부터 될 수 없는 일이었다"는 결론으로 끝난다는 거예요.
그런데 에르미트는 친구이자 동료 수학자인 보르샤르트에게 편지를 보내요.
거기에 이렇게 썼어요.
"나는 파이의 초월성을 증명하려는 시도에 어떤 것도 걸지 않을 것이오.
다른 이들이 그 일에 나선다면 나보다 행복한 사람은 없겠지만, 친구여, 그건 그들에게 적잖은 노력의 대가를 치르게 할 거요."
이건 단순한 겸손이 아니에요.
그는 자기 방법이 파이에도 통한다는 걸 알고 있었어요.
그 계산이 얼마나 지독하게 복잡해질지도 알고 있었어요.
결국 그는 의도적으로 멈췄어요.
마라톤에서 결승선 100미터를 남겨두고 "여기서부터는 다음 사람이 뛰는 게 맞다"며 발을 세운 선수 같은 거예요.
9년 뒤 독일 수학자 린데만이 에르미트의 방법으로 파이를 풀었다
에르미트가 거절한 그 증명을, 9년 뒤 한 독일 청년이 그의 방법으로 끝냈어요.
1882년, 독일 수학자 페르디난트 폰 린데만이 논문을 발표해요.
파이가 초월수라는 증명이었어요.
그리고 그가 사용한 기법은 에르미트가 e를 증명할 때 썼던 방법을 거의 그대로 확장한 것이었어요.
에르미트가 편지에서 "다른 이들이 그 일에 나선다면"이라고 썼던 바로 그 일이 일어난 거예요.
그리고 에르미트는 그 결과를 살아서 봤어요.
2000년 묵은 원적문제는 이렇게 종결됐어요.
"불가능하다"는 답으로요.
자와 컴퍼스로 원과 넓이가 같은 정사각형을 그리는 건, 애초에 될 수 없는 일이었어요.
에르미트의 거절은 포기가 아니었어요.
그가 남긴 방법이 파이를 풀고 살아남았으니까요.
결승선을 넘지 않았지만, 결승선을 넘을 도구를 만들어둔 사람.
수학자가 "너무 어렵다"고 멈출 때, 그게 때로는 다음 사람을 위한 자리를 비워두는 일이기도 한 거 아닐까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