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pyright © Origin Corp. All Rights Reserved.
v1.0.10
로딩 중입니다
행복에는 덕이면 충분하다안티스테네스

교실 하나를 떠올려 볼게요. 서른 명이 있는데, 그중 한 명이 따돌림을 당하고 있어요. 이때 마음속에서 두 목소리가 다툽니다. 하나는 "내 친한 친구도 아닌데 뭐"라고 하고, 다른 하나는 "그래도 같은 반인데 도와야지"라고 해요.
놀랍게도 약 2400년 전 중국에서 똑같은 다툼이 벌어졌습니다. 다만 규모가 교실이 아니라 나라 전체였어요. 그 시대를 전국시대라고 부르는데, 이름 그대로 온 나라가 전쟁하던 시기예요. 일곱 개의 강한 나라가 서로를 집어삼키려 했고, 작은 나라는 언제 사라질지 모른 채 살았습니다. 전쟁이 한 번 터지면 수만 명이 죽고, 밭은 불타고, 가족은 흩어졌어요.
대부분은 이렇게 생각했어요. "우리나라만 강하면 돼. 남의 나라는 알 바 아니야." 그런데 한 사람이 나타나 이상한 말을 합니다. "남의 나라를 내 나라처럼 사랑하면 전쟁이 사라진다." 사람들은 비웃었지만, 그는 전혀 개의치 않았어요. 그 사람의 이름이 묵자입니다.

묵자를 이해하려면 그가 누구와 맞섰는지 알아야 해요. 당시 가장 영향력 있던 사상가는 공자였습니다. 공자의 가르침을 한마디로 줄이면 "가까운 사람부터 사랑하라"예요. 부모를 먼저, 그다음 형제, 그다음 친척, 그다음 이웃. 사랑이 동심원처럼 안에서 바깥으로 퍼져 나가는 거죠. 솔직히 꽤 자연스럽게 들려요. 우리도 보통 그렇게 사니까요.
그런데 묵자는 여기에 정면으로 반박했어요. 저녁 식탁을 한번 떠올려 보세요. 엄마가 맛있는 반찬을 형한테만 주고 동생한테는 안 줘요. 이유는 "형이 더 가까우니까". 이상하죠? 묵자가 본 세상이 딱 이 모습이었어요. "가까운 사람부터"라는 원칙이 커지면 결국 "우리 가문 먼저, 우리나라 먼저, 남의 나라는 상관없어"가 되고, 그 끝에 전쟁이 있었거든요.
그래서 묵자는 다른 답을 내놓아요. 겸애, 모든 사람을 차별 없이 똑같이 사랑하라는 거예요. 남의 아버지를 내 아버지처럼, 남의 나라를 내 나라처럼. 묵자는 목수 출신이었다고 전해져요. 손에 흙 묻히며 일하던 사람이라 그런지, 그의 논리는 화려한 말 대신 직선처럼 단순합니다. "왜 전쟁이 나는가? 남의 나라를 내 나라처럼 여기지 않아서다. 그럼 해법은? 내 나라처럼 여기면 된다."

"모두 사랑하자"는 말은 예쁘지만 현실에선 문제가 있어요. 당장 내일 적군이 쳐들어오면요? 묵자는 몽상가가 아니라 철저한 실천가였어요. 그에겐 묵가라 불리는 추종자 무리가 있었는데, 놀랍게도 일종의 방어 전문 집단이었습니다. 그들은 거친 삼베옷을 입고 검소하게 살면서, 오직 성을 지키는 기술만 갈고닦았어요. 공격이 아니라 방어만요. 묵자의 원칙이 전쟁 반대였으니까요.
이 원칙이 가장 극적으로 드러난 일이 있어요. 강한 초나라가 작은 송나라를 치려 했어요. 초나라에는 성벽을 부수는 새 무기를 만든 최고의 기술자 공수반이 있었죠. 송나라는 속수무책이었어요. 소식을 들은 묵자는 열흘 밤낮을 걸어 발이 피투성이가 되도록 초나라로 갑니다.
그러고는 왕 앞에서 공수반에게 모의 전쟁을 제안해요. 허리띠를 풀어 성벽으로 삼고 나무 조각을 무기 삼아 탁자 위에서 겨뤘어요. 공수반이 아홉 가지 공격을 꺼냈고, 묵자는 아홉 번 모두 막아냅니다. 공수반의 공격 카드가 바닥났을 때 묵자에겐 방어 전략이 아직 남아 있었어요. 초나라 왕은 결국 공격을 포기했습니다. 말만 한 게 아니라 직접 뛰어가 전쟁을 막은 거예요. 참고로 묵가 사람들은 빛이 곧게 나아간다는 사실을 알아냈고 거울의 원리도 연구했어요. 서양보다 한참 앞선 이야기예요.

여기서 이상한 점이 있어요. 이렇게 대단한 묵자가 왜 공자만큼 유명하지 않을까요? 학교에서 공자는 배워도 묵자는 거의 안 배우잖아요. 사실 묵자가 살아 있을 무렵엔 묵가와 유가가 거의 반반으로 어깨를 나란히 했어요. "세상 학문은 유가 아니면 묵가"라는 말이 있을 정도였죠.
그런데 역사의 흐름이 묵가에 불리하게 돌아갔어요. 첫 번째 타격은 진시황입니다. 자기 생각과 다른 사상을 책을 불태우며 탄압했고, 이때 묵가의 책도 많이 사라졌어요. 두 번째 타격이 더 결정적이었는데, 뒤이은 한나라가 유교를 나라의 공식 사상으로 골랐거든요. 이유는 냉정해요. "가까운 사람부터"라는 유교 원칙은 임금에서 신하로, 신하에서 백성으로 흐르는 위계와 잘 맞았어요. 다스리기 편했던 거죠. 반면 "왕도 거지도 똑같이 사랑하라"는 묵자의 말은 권력자에게 불편했어요.
세 번째 이유는 묵가 조직 자체에 있었어요. 묵가는 거자라는 지도자를 중심으로 명령에 절대복종하는 강한 집단이었어요. 지도자가 뛰어나면 빛났지만, 사라지면 흔들렸죠. 묵자 이후 뛰어난 거자가 이어지지 못하면서 묵가는 서서히 역사 속으로 사라졌습니다. 승리한 쪽이 늘 옳은 건 아니에요. 다만 권력이 어떤 사상을 고르는지는 그 깊이가 아니라 쓸모에 달려 있었던 거예요.

잊혔던 묵자가 다시 주목받은 건 20세기 들어서예요. 서양 학자들이 그의 글을 읽고 깜짝 놀랐어요. "이거 공리주의 아닌가?" 공리주의는 가장 많은 사람에게 가장 큰 행복을 주는 것이 옳다는 생각인데, 18세기 영국 철학자 벤담이 주장한 거예요. 묵자는 그보다 2000년이나 먼저 비슷한 말을 했던 거죠. 침략 전쟁을 반대한 그의 비공 원칙도 오늘날 반전 운동과 놀랍도록 닮아 있어요.
과학적 태도도 그래요. 묵자는 모든 주장에는 증거가 필요하다며 세 가지로 검증하라고 했어요. 역사적 근거가 있는가, 백성이 직접 겪었는가, 실제로 이로운가. 오늘날 과학이 말하는 검증과 꽤 닮았죠. 만약 묵자가 지금 살아 있다면 이렇게 말할지도 몰라요. "여전히 가까운 사람만 사랑하고 먼 사람은 무시하는구나. 여전히 강한 나라가 약한 나라를 괴롭히는구나. 2400년이 지났는데 달라진 게 뭐냐." 불편한 질문이지만, 묵자는 원래 그런 사람이었어요.
묵자는 "가까운 사람부터 사랑하라"는 당시의 상식에 "모두를 차별 없이 사랑하라"고 맞선 사람이에요. 그리고 그 말을 입으로만 외우지 않고, 열흘을 걸어 전쟁을 막으러 갔어요. 그의 사상은 권력에 불편하다는 이유로 역사 뒤편으로 밀려났지만, 틀려서 사라진 게 아니었어요. 다시 처음의 교실로 돌아가 볼게요. 따돌림당하는 친구를 도울지 말지 고민될 때, 묵자라면 망설임 없이 "같은 반이잖아"라고 했을 거예요. 차별 없이 사랑하는 건 분명 어려워요. 하지만 어렵다는 이유로 시도조차 하지 않는 마음, 그게 바로 묵자가 2400년 전에 맞서 싸운 상대였습니다.
TTS 음성이 없어요.
아래 버튼으로 나레이션을 생성할 수 있습니다.
0
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