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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에는 덕이면 충분하다안티스테네스

밀라레파가 처음 세상에 이름을 남긴 방식은 기도가 아니라 살인의 주문이에요.
티베트의 성자로 불리는 사람이 출발한 자리는 사원도, 책상도, 조용한 산길도 아니었어요.
아버지가 죽자 친척들이 집과 재산을 빼앗아요.
오늘로 치면 부모가 남긴 집을 친척들이 차지하고, 남은 가족은 쫓겨난 셈이에요.
그래서 어머니는 아들에게 복수를 요구해요.
그 요구는 단순한 원망이 아니에요.
“네가 내 아들이라면, 저들에게 갚아야 해.”
전승 속 밀라레파는 이 말을 등에 업고 흑주술을 배우러 가요.
흑주술은 남을 해치려고 쓰는 주문이에요.
기도가 상처를 달래는 말이라면, 흑주술은 상처를 칼로 바꾸는 말에 가까워요.
결국 그는 결혼 잔치가 열리던 집을 무너뜨렸다고 전해져요.
잔치는 한 집안이 가장 환하게 웃는 날이에요.
그날 지붕이 무너지고 사람들이 죽어요.
성자의 첫 장면이 선행이 아니라 살인이라는 사실이, 밀라레파 이야기를 이상하게 오래 붙잡게 만들어요.

마르파는 죄책감에 무너진 청년에게 위로 대신 돌을 나르게 해요.
보통 우리는 용서를 구하러 온 사람에게 먼저 “괜찮다”는 말을 기대하잖아요.
그런데 마르파는 그렇게 하지 않아요.
전기 문헌은 밀라레파가 주문으로 많은 사람을 죽인 뒤 괴로움에 시달렸다고 전해요.
어떤 전승에서는 그 숫자가 35명으로 나와요.
그래서 그는 자기 죄를 씻어 줄 스승을 찾아가요.
마르파는 번역승이에요.
인도에서 전해진 밀교 경전을 티베트어로 옮기고 가르친 스승을 말해요.
밀교는 비밀스러운 의식과 스승의 가르침을 통해 마음을 바꾸려는 불교의 한 흐름이에요.
그런데 마르파는 밀라레파를 곧장 제자로 품지 않아요.
그에게 탑을 짓게 해요.
그리고 다 지으면 허물게 해요.
이건 벌처럼 보여요.
하지만 그냥 벌만은 아니에요.
돌 하나를 들 때마다 밀라레파는 자기가 무너뜨린 집을 다시 만지는 셈이에요.
“내가 죽인 사람들을 말로만 후회하면 되는 걸까.”
밀라레파는 아마 그 질문에서 도망칠 수 없었을 거예요.
결국 마르파가 요구한 것은 예쁜 반성이 아니라 몸으로 치르는 대가였어요.

밀라레파의 고행은 마음가짐의 문제가 아니라 몸 색깔이 바뀔 만큼 실제적인 일이었어요.
수행이란 말을 듣고 조용히 눈 감는 장면을 떠올리면, 여기서는 너무 약해요.
마르파에게 가르침을 받은 뒤 밀라레파는 히말라야 동굴로 들어가요.
히말라야는 티베트와 인도 북쪽에 이어진 거대한 산맥이에요.
동네 뒷산이 아니라, 숨쉬기조차 낯선 높이의 세계예요.
그곳에서 그는 거의 쐐기풀만 먹고 살았다고 전해져요.
쐐기풀은 잎과 줄기에 따가운 털이 있는 풀입니다.
배부른 음식이 아니라, 살아남기 위해 씹는 거친 풀에 가까워요.
전승은 그의 몸빛이 초록빛으로 변했다고 말해요.
이 대목은 상징처럼 들리지만, 핵심은 더 단순해요.
밀라레파는 편안함을 조금 줄인 게 아니라, 집과 음식과 사람들의 칭찬을 거의 내려놓아요.
우리가 생활비를 아끼려고 커피를 줄이는 정도가 아니에요.
그는 자기 몸의 안전과 안락함 자체를 수행의 재료로 삼아요.
그래서 동굴은 피난처가 아니라, 매일 자기를 다시 만드는 작업장이 돼요.
“나는 어디까지 내려놓을 수 있나.”
그 질문이 밀라레파를 말라가게 만들어요.
그런데 이상하게도, 그 말라감 속에서 그의 이름은 더 선명해져요.

그가 마지막으로 마주한 것은 적이 아니라, 자신이 평생 벗어나려 했던 복수의 논리였어요.
누군가 자신을 해치려 할 때, 예전의 밀라레파라면 주문을 찾았을 거예요.
후기 전승에는 질투한 승려가 독이 든 음식을 바쳤다는 이야기가 나와요.
후기 전승은 밀라레파가 살던 때보다 나중에 정리되고 덧붙은 이야기들을 말해요.
그래서 우리는 이 장면을 역사 기록이라기보다, 사람들이 밀라레파를 어떻게 기억했는지 보여주는 이야기로 읽을 수 있어요.
밀라레파는 그 음식의 위험을 알고도 받아들였다고 전해져요.
그 장면이 무서운 이유는 그가 죽음을 몰라서가 아니에요.
알고도 복수로 되돌아가지 않았기 때문이에요.
그는 제자들에게 마지막 가르침을 노래로 남겨요.
밀라레파에게 노래는 공연이 아니라 가르침의 그릇이에요.
글을 읽지 못하는 사람도 따라 부르면 마음에 남는 방식이니까요.
살인의 주문으로 시작한 사람이 마지막에는 자기 목숨까지 가르침의 장면으로 바꿔요.
이 변화가 밀라레파의 전부를 한 줄로 보여줘요.
그는 죄 없는 사람이 아니라, 죄에서 도망치지 않은 사람이에요.
그래서 밀라레파 이야기는 편안한 성인전처럼 끝나지 않아요.
처음의 그는 무너뜨리는 말을 배웠고, 마지막의 그는 남기는 노래를 택해요.
사람은 정말 이렇게까지 다른 사람이 될 수 있는 걸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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