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pyright © Origin Corp. All Rights Reserved.
v1.0.10
로딩 중입니다
행복에는 덕이면 충분하다안티스테네스

"주자의 문장을 고친다."
윤휴(1617-1680)가 책상에 앉아 한 이 한 가지 일이, 200년 뒤 그의 목을 조르는 밧줄이 됐어요.
주자(주희)는 12세기 중국 송나라의 학자예요.
공자와 맹자의 말씀을 체계적으로 정리해서 성리학이라는 사상을 완성했어요.
성리학은 "사람의 본성이 곧 우주의 법칙"이라고 보는 철학인데, 조선 왕조는 이 사상을 국가 이념으로 삼았어요.
오늘날로 치면 주자는 조선 국교의 창시자이자 모든 교과서의 저자예요.
그러니까 그의 해석에 이의를 제기한다는 건, 단순한 학술 논쟁이 아니에요.
국가 이념 전체에 "이거 틀렸을 수도 있어요"라고 말하는 거예요.
윤휴는 《독서기》라는 책을 썼어요.
사서(四書), 즉 성리학의 핵심 경전 네 권 중에서 《중용》과 《대학》을 주자와 다르게 해석했어요.
지금으로 치면 헌법 조항마다 빨간 펜으로 수정 의견을 써넣은 거예요.
신입사원이 회의에서 사장의 결재 문서를 받아 들고 "이 문장은 틀렸습니다"라고 줄 그어 돌려보낸 상황을 생각해보세요.
그런데 그 사장이 사실상 신(神)처럼 떠받들어지고 있다면요.
그 문서를 고쳐 돌려보낸 게, 윤휴가 한 일이에요.

송시열이 "사문난적" 네 글자를 적은 그 순간, 윤휴의 운명은 사실상 결정됐어요.
송시열(1607-1689)은 당대 조선 최고의 권위자였어요.
노론의 정신적 지도자로, 노론은 17세기 조선 최대 정치 세력이에요.
그의 말은 단순한 비평이 아니었어요. 학자들 사이에서 사실상 판결문이었어요.
사문난적(斯文亂賊)은 "유교의 도를 어지럽힌 도적"이라는 뜻이에요.
오늘날로 치면 신성모독죄와 내란죄를 동시에 선고받은 것과 비슷해요.
이 네 글자가 붙으면 학문적 생명이 끝날 뿐 아니라, 실제 목숨도 위태로워졌어요.
아이러니한 건, 두 사람이 한때 함께 학문을 논하던 사이였다는 거예요.
젊은 윤휴의 학식에 감탄한 송시열이 직접 찾아온 적도 있었어요.
"이 사람은 정말 대단하다"고 칭찬하던 사람이, 훗날 "이 사람은 죽어야 한다"는 선언에 서명했어요.
오늘날 학회에서 최고 권위자가 "이 논문은 위험하다"고 공식 선언한다면, 그 학자는 어떻게 될까요.
단, 그 한 마디가 학자의 사회적 생명만이 아니라 실제 생명도 앗아갈 수 있는 세계에서요.
17세기 조선이 그런 곳이었어요.
그런데도 윤휴는 물러서지 않았어요.
"주자가 틀렸을 수도 있잖아"라는 생각을 멈추지 않았어요.
그리고 그 고집은 그를 권력의 정점으로 밀어올렸다가, 끝내 사약 앞에 세웠어요.

1680년 봄, 윤휴는 영의정을 넘보던 자리에서 한 달 만에 사약을 기다리는 죄인으로 떨어졌어요.
숙종 초반, 남인이 정권을 잡았어요.
남인은 송시열의 노론과 대립하던 정치 세력이에요.
윤휴는 그 핵심 인물로 우찬성 등 요직에 올랐어요.
요직에 오른 윤휴는 가만히 있지 않았어요.
북벌론, 즉 청나라를 몰아내고 명나라의 원수를 갚자는 강경한 대외 노선을 밀어붙였어요.
호포제도 추진했는데, 군포세를 양반에게도 부과하자는 개혁안이었어요.
학문으로 미움받은 사람이 정치 권력의 한복판에서 개혁까지 외치고 있었어요.
적은 더 많아졌어요. 그래서 그는 더 위험한 존재가 됐어요.
그리고 경신환국이 터졌어요.
경신환국은 1680년 서인이 남인을 일거에 권력에서 축출한 정변으로, 오늘날로 치면 쿠데타에 가까운 정치적 대격변이에요.
하루아침에 판이 완전히 뒤집혔어요.
어제까지 임원실에 앉아 있던 사람이 오늘 보안요원에게 끌려나가는 장면이에요.
윤휴는 모든 관직을 잃고 죄인이 됐어요.
죄목은 학문 논쟁이 아니었어요. 반역이었어요.

윤휴가 사약을 마신 날로부터 228년이 지나서야, 조선은 마침내 그의 죄목을 지웠어요.
1680년, 윤휴는 사약을 받았어요.
그가 평생 고집한 주장, 주자와 다른 경전 해석이 공식 이유가 된 건 아니에요.
이름은 반역이었지만, 진짜 이유는 모두 알고 있었어요.
복관은 1908년에 이루어졌어요.
복관(復官)이란 박탈당한 관직과 명예를 공식으로 되돌려받는 절차예요.
조선 왕조가 역사에서 사라지기 불과 2년 전이에요.
그가 옳았다는 인정은, 그를 죽인 나라가 거의 사라질 무렵에야 왔어요.
무죄 판결이 사망 후 228년 뒤에 나오는 상황이에요.
명예는 회복됐지만, 받을 사람은 없었어요.
윤휴가 평생 붙들고 있던 질문은 단순했어요.
"주자가 틀렸을 수도 있지 않나요?"
그 질문 하나로 그는 사문난적이 됐고, 죄인이 됐고, 죽었어요.
그리고 228년이 지난 뒤, 조선은 마침내 인정했어요.
그 질문이 그렇게 위험한 건 아니었다고.
하지만 그 인정은, 조선이 사라지기 2년 전에 왔어요.
TTS 음성이 없어요.
아래 버튼으로 나레이션을 생성할 수 있습니다.
2
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