햇빛 좀 가리지 마라디오게네스
햇빛 좀 가리지 마라디오게네스
그를 교토대학에 불러들인 것은 니시다 기타로 본인이었습니다.
그리고 니시다의 철학에 가장 깊은 칼을 꽂은 것도 바로 그였습니다.
회사에서 사수가 직접 뽑아준 후배가, 전체 회의에서 사수의 업무 방식을 조목조목 반박하는 상황을 떠올려 보십시오.
다나베 하지메가 1930년대에 한 일이 정확히 그것이었습니다.
니시다는 일본 근대철학을 사실상 혼자 세운 인물입니다.
그가 만든 교토학파는 당시 일본에서 철학이라는 학문이 존재한다는 것을 증명한 집단이었습니다.
다나베는 그 니시다의 추천으로 교토제국대학 교수 자리를 얻었습니다.
그런데 자리를 잡자마자 다나베는 니시다의 핵심 사상인 '장소의 논리'를 정면으로 비판하기 시작했습니다.
'장소의 논리'란 쉽게 말해, 모든 존재는 그것이 속한 더 큰 맥락 안에서만 이해될 수 있다는 사유 방식입니다.
다나베는 이것이 너무 추상적이라고 보았습니다.
그가 대신 내세운 것이 '종의 논리'였습니다.
'종(種)'이란 국가나 민족처럼, 개인보다는 크지만 인류 전체보다는 작은 집단을 가리킵니다.
다나베는 개인과 인류 사이에 이 집단이 반드시 매개로 들어와야 한다고 주장했습니다.
두 사람은 수십 년간 같은 학과에서 서로의 철학을 공개적으로 비판하는 이례적인 관계를 이어갔습니다.
은혜를 갚은 것이 아니라, '반역'이 곧 학문적 독립이었습니다.
독일에서 그가 가져온 것은 세계를 보는 새로운 렌즈였습니다.
그런데 귀국 후 그 렌즈는 일본만 비추는 거울이 되었습니다.
1922년부터 1924년까지 다나베는 독일 프라이부르크대학에서 공부했습니다.
그곳에서 그가 만난 사람이 후설과 하이데거였습니다.
후설은 현상학, 즉 "우리가 무언가를 경험한다는 것이 정확히 무슨 의미인가"를 추적하는 철학의 창시자였고, 하이데거는 그 제자이자 20세기 최고의 철학자 중 한 명이었습니다.
유럽 최전선의 사상을 직접 배워온 다나베는, 귀국 후 이를 자신의 '종의 논리'와 결합했습니다.
문제는 그 결과였습니다.
1930~40년대, 그의 논리는 일본 국체(國體)의 특수성을 뒷받침하는 데 활용되었습니다.
국체란 천황을 중심으로 한 일본 특유의 국가 체제를 가리키는 말입니다.
당시 일본 군국주의 정권은 이 개념을 일본이 서구와 근본적으로 다른, 우월한 문명이라는 주장의 근거로 삼았습니다.
다나베의 '종의 논리'는 철학적 언어로 그 주장에 정교함을 더해 주었습니다.
해외 유학을 다녀온 사람이 "글로벌 스탠더드를 배웠다"면서, 돌아와서는 오히려 "우리는 다르다"를 더 세련되게 주장하는 풍경.
다나베의 경로는 그 아이러니를 가장 극단적인 형태로 보여줍니다.
1946년, 다나베 하지메는 철학자로서 가장 이례적인 일을 했습니다.
자기 철학의 사망진단서를 직접 작성한 것입니다.
1945년 일본이 패전했습니다.
대부분의 지식인들은 침묵하거나, 자신의 전시 발언을 조용히 덮었습니다.
다나베는 다른 선택을 했습니다.
그는 『참회도로서의 철학』을 썼습니다.
이 책은 "내가 틀렸다"를 학술서 한 권으로 증명한 작업이었습니다.
그는 이 책에서 이렇게 선언했습니다. "이성은 스스로의 무력함을 깨달을 때만 다시 시작할 수 있습니다."
참회도(懺悔道)란 참회, 즉 자기 잘못을 철저히 인정하는 행위를 철학적 방법론으로 삼겠다는 뜻입니다.
이것은 단순한 사과가 아니었습니다.
그는 자신의 이성이 어디서 어떻게 실패했는지를 추적하는 것 자체를 새로운 철학의 출발점으로 삼았습니다.
10년간 자신 있게 밀어온 프로젝트가 완전히 잘못된 방향이었다는 걸 깨달았을 때, 조용히 이직할 것인가, 아니면 전사 메일로 "제가 틀렸습니다"를 보낼 것인가.
다나베는 후자를 택했습니다.
그것도 책 한 권의 분량으로.
철학사에서 현역 철학자가 자기 체계 전체의 파산을 공식 선언하고, 그 파산 위에 새 철학을 세운 사례는 사실상 그가 유일합니다.
교토학파에서 전쟁에 가장 깊이 협력한 철학자와, 전후에 가장 정직했던 철학자가 같은 사람이라는 사실은 불편하지만 중요합니다.
니시다를 비롯한 다른 교토학파 구성원들은 전시 협력에 대해 명확한 자기비판을 남기지 않았습니다.
침묵은 의심을 낳았고, 그들의 사상은 전후에도 오랫동안 '전쟁 공범'이라는 그림자 속에 놓였습니다.
반면 다나베의 『참회도로서의 철학』은, 출간 당시에는 크게 주목받지 못했으나 시간이 지날수록 전후 일본 사상계의 핵심 텍스트로 떠올랐습니다.
그가 이 책에서 정립한 개념을 서양 학계에서는 '메타노에틱스(metanoetics)'라고 부릅니다.
참회를 통해 사유를 새롭게 시작하는 방법론을 가리키는 말입니다.
오늘날 이 개념은 하버마스의 의사소통 이론, 데리다의 해체론과 나란히 비교 연구될 만큼 독자적인 위치를 얻었습니다.
팀 전체가 실수를 묻으려 할 때 혼자 손을 들고 "제 책임입니다"라고 말한 사람이 결국 가장 신뢰받는 사람이 되는 역학은, 조직에서도 철학사에서도 다르지 않았습니다.
다나베는 가장 문제적인 협력자였지만, 가장 정직한 사상가로 기억됩니다.
실패를 인정한 책 한 권이 그 역전을 만들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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