곽상, 장자 주석의 표절 의혹과 1700년의 권위
향수의 미완성 원고가 곽상의 서재에서 다시 나타났다
지금 동아시아가 읽는 장자는, 죽은 사람이 쓰다가 중단한 원고에서 시작되었을지도 모른다.
3세기 중국, 향수(向秀)라는 학자가 있었다.
그는 죽림칠현의 한 명으로, 숲속에서 술을 마시며 세속을 거부하던 지식인 모임의 일원이었다.
향수는 말년에 장자 주석을 쓰다가 끝내 완성하지 못하고 세상을 떠났다.
그런데 얼마 후, 곽상(郭象)이라는 인물이 장자 주석을 들고 나타났다.
진서(晉書), 즉 당시 왕조의 공식 역사서는 이렇게 기록한다.
"향수의 원고를 가져다 자신의 이름으로 출판했으며, 곽상이 직접 추가한 것은 「추수」와 「지락」 두 편의 주석뿐이다."
친한 선배가 쓰다 만 논문 원고에 챕터 두 개를 덧붙여 자기 이름으로 출판한 것과 같다.
단, 그 논문이 이후 1700년 동안 동아시아 전체의 표준 교과서가 된 경우다.



